샤를 드골

정치인, 군인, 대통령, 저술가, 레지스탕스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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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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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정치인, 군인, 대통령, 저술가, 레지스탕스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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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군인이자 불굴의 레지스탕스 지도자.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유 프랑스를 이끌며 망명 정부를 수립 조국 해방에 결정적 기여.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프랑스 재건. 독자적인 외교 노선과 핵무기 개발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 강화. 세계 최초로 유럽 경제 공동체에 영국 가입 거부 등 대담한 결정. 식민지 정책과 일부 강경책으로 비판도 받았으나 현대 프랑스에 지대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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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프랑스의 별, 드골 탄생]

프랑스 릴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으로, 역사가와 작가들을 배출한 명문가에서 자랐다.

1912

[생시르 사관학교 졸업]

프랑스 최고의 군사 교육기관인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장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14

[1차 대전 참전과 포로 생활]

제1차 세계대전에 중위로 참전, 베르됭 전투에서 최고 훈장을 받으며 용맹을 떨쳤다.

세 차례 부상을 입고 2년 8개월간 포로로 잡혔으나, 5회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는 불굴의 정신을 보였다.

프랑스 육군 수훈보고서에 세 차례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18

[1차 대전 후 군 경력]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감옥에서 풀려나 페탱 참모 총장의 직속 장교, 중동 군사 사절단장, 최고 국방 회의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군사 전문가로 성장했다.

1921

[이본느 벙드루와 결혼]

이본느 벙드루와 결혼하여 필리프, 엘리자베스, 그리고 다운증후군을 앓았던 막내 안느 등 세 자녀를 두었다.

부인은 그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였다.

1924

[첫 저서 '적의 내분' 출간]

첫 저서 《적의 내분(La Discorde chez I'ennemi)》을 출간하며 군사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1932

['칼날' 출간, 리더십 이론]

리더십 이론서인 《칼날(Le Fil de I'epée)》을 출간하며 군사 사상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34

['미래의 군대' 출간]

현대전의 변화에 대한 통찰을 담은 《미래의 군대(Vers l'armée de métier)》를 출간했다.

1940

[2차 대전, 기갑사단 지휘]

제2차 세계대전에 제4기갑사단 지휘관으로 참전하여 독창적인 전차전을 펼쳤다.

아라스 전투에서 에르빈 롬멜의 유령사단에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반격하는 뛰어난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정력적이며 대담하고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런던 망명, 자유 프랑스 결성]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런던으로 망명, '자유 프랑스 민족회의'를 결성하며 나치 치하의 프랑스인들에게 라디오 방송으로 대(對) 독일 항전을 호소했다.

레노 총리 아래서 국방부 육군담당 차관을 지냈으나, 독일과의 휴전을 모색하던 페탱 원수가 레노를 축출하고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망명을 결심했다. 이 방송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 정부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처칠 총리와 여러 차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비시 정부, 드골에 사형 선고]

독일에 항복한 비시 정부는 드골을 궐석재판에 회부하여 계급박탈, 재산몰수와 함께 사형을 선고했다.

1942

['영예로운 소명' 출간]

전쟁 중 자신의 활동과 신념을 담은 저서 《영예로운 소명(L'Appel)》을 출간했다.

1943

[프랑스 국민해방위원회 결성]

자유 프랑스 민족회의를 알제리로 옮겨 '프랑스 국민해방위원회'로 개편하고 앙리 지로 장군과 함께 공동위원장에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국 지도자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총리와 회담을 가졌으며, 처칠은 드골을 '파시스트적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1944

['화합' 출간]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비전을 담은 저서 《화합(L'Unité)》을 출간했다.

[파리 해방, 임시정부 주석]

프랑스 해방과 함께 알제리로부터 파리로 개선하며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했다.

파리 해방 후 샹젤리제 거리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행렬했다.

1945

[과거청산 정책 주도]

국무총리 겸 국방상을 거쳐 프랑스의 과거사를 심판하는 데 주력했다.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언론인 694종을 폐간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자신의 교수였던 페탱 원수 등 협력자들을 재판으로 처벌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건설했던 식민지 통치와 징집, 징발 등에 대한 사과나 보상이 없어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1946

[임시정부 주석직 사퇴]

제정당의 연립내각 형성 움직임에 동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임시정부 주석직에서 사퇴했다.

1947

[프랑스 국민 연합 조직]

반공 단체인 '프랑스 국민 연합'을 조직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1951년 제1당으로 성장했다.

1953

[당 해체 및 정계 은퇴]

조직했던 당을 해체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프랑스 제4공화정의 체제적 결함을 비판하며 신헌법 거부 운동을 펼쳤다.

1958

[회고록 '구원' 출간]

회고록인 《구원(Le Salut)》을 출간하며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기록했다.

[총리로 정계 복귀, 전권 행사]

알제리 전쟁의 여파로 제4공화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총리로 올라 6개월간 전권을 위임받았다.

[제5공화국 수립]

새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되며 프랑스 제5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동시에 프랑스 식민지들은 독립 또는 새 헌법 수용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니는 독립을 선택했고, 다른 식민지들은 새 헌법을 받아들였다.

1959

[제18대 대통령 취임]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62

[알제리 독립과 대통령 직선제]

알제리 독립을 인정하는 에비앙 협정을 국민투표로 가결하며 약 7년간의 알제리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또한, 훗날 대통령들을 직접적인 인기투표로 선출하는 계획을 제의,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관철시켰다.

프랑스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 계획을 반대했으나, 드골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투표로 이를 통과시키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1963

[프랑스-독일 우호 조약 체결]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와 정치, 과학, 문화, 군사적 협력을 위한 조약을 맺으며 역사적인 프랑스-독일 우호를 다졌다.

동시에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 가입을 막는 독자 노선을 보였다.

1964

[세계 최초, 중공 승인]

서방 세력 중 세계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는 과감한 외교 정책을 펼치며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러한 결정은 미국의 대(對) 베트남 정책 반대와 맞물려 미소 양극 체제 하에서 프랑스의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5

[대통령 재선 성공]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 기간을 간신히 이기며 재선에 성공, 강력한 지도력을 이어갔다.

1966

[나토 군사기구 탈퇴]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로부터 프랑스군들을 철수시키고 나토 본부를 프랑스에서 옮기도록 결정하며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안보 노선을 천명했다.

그는 또한 독립적 핵무기 타격 부대를 창조하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비난하며 '프랑스의 위대함'을 지키기 위한 반미 정책을 펼쳤다.

1967

[영국 EC 가입 재차 저지]

다시 한 번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 가입을 저지하며 프랑스 중심의 유럽 질서 구축을 시도했다.

1969

[국민투표 패배와 사임]

지방 제도 및 상원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자 대통령직에서 즉시 사임하며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이후 실시된 이 국민투표의 패배는 그의 정치 생명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70

[샤를 드골, 영면하다]

현대 프랑스의 상징이자 불굴의 정신으로 조국을 이끌었던 샤를 드골이 8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의 무덤은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있다.

그의 저서로는 《칼날》, 《회상록》, 《자서전》 등이 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프랑스 해군 항공모함 샤를 드골함 등 그의 이름은 프랑스 곳곳에 남아 기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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