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뒤샹)

미술품, 레디메이드,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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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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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마르셀 뒤샹이 평범한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는 서명을 하여 예술 작품으로 제시한 레디메이드의 대표작입니다. 기성품을 예술로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정의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20세기 미술사에 혁명적인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원본은 소실되었지만 뒤샹 본인이 승인한 16개의 복제품이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여전히 논쟁과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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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뉴욕 다다이즘 운동 창시]

미국으로 건너온 마르셀 뒤샹이 뉴욕에서 프랑시스 피카비아, 맨 레이 등 동료 작가들과 함께 반이성과 반미술을 표방하는 뉴욕 다다이즘 운동을 창시했습니다.

이는 선 페미니즘 문화 운동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1916

[코디, 크로티 작품 혹평]

로버트 J.

코디가 자신의 월간지 <토양>에서 장 크로티의 조각 '마르셀 뒤샹의 초상'을 '배관공이 만들 법한 표현력'이라며 혹평했습니다.

이는 훗날 뒤샹의 <샘> 제작 동기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로 이어졌습니다.

1917

[<샘>, 다다 잡지에도 거절]

전시회에서 내려진 <샘>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스튜디오로 옮겨 촬영을 진행한 뒤, 뒤샹은 다다 전문 잡지 <더 블라인드 맨> 2호에 <샘> 사진과 관련 글들을 보냈으나, 이 잡지마저 <샘> 게재를 거절했습니다.

[레디메이드 <샘> 탄생]

마르셀 뒤샹이 뉴욕 맨해튼 J.L.모트 철공소에서 스탠더드 베드퍼드셔 소변기를 구입, 이를 90도 돌려 세우고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하여 <샘>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평범한 일상용품에 미적 의미를 부여한 세계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리처드 머트 사건> 기사 게재]

뉴욕 다다이즘 운동가들이 <블라인드 맨> 2호에 '리처드 머트 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샘>의 전시 거부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기사는 '머트 씨가 그것을 '선택'했다.

삶의 일상적인 물건을 골라,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붙여 유용성을 제거했고, 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창조했다'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중대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샘> 원본 소실]

첫 전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샘>의 원본은 소실되었습니다.

유력한 설로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쓰레기로 내버렸다는 것이며, 뒤샹의 초창기 레디메이드 작품들이 이 같은 운명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샘> 전시회 출품]

마르셀 뒤샹이 평범한 소변기인 <샘>을 뉴욕 그랜드 센트럴 팰리스에서 열린 미국 독립작가협회 주최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협회는 참가비를 낸 작품은 모두 접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변기' 작품의 전시 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샘> 대리 출품 시사]

마르셀 뒤샹이 여동생 쉬잔에게 '리처드 머트라는 남성적인 가명을 쓰는 내 여자친구 중 한 명이 세라믹 소변기를 조각품으로 보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는 <샘>의 실제 제작자가 뒤샹이 아닐 수도 있다는 '대리 출품설'의 주요 근거가 됩니다.

뒤샹의 여자 분신인 로즈 셀라비, 다다이즘 작가 엘자 폰 프라이타크로링호펜, 시인 루이즈 노턴 등이 대리 출품설의 후보로 거론됩니다. 특히 프라이타크는 <샘>과 비슷한 철학을 지닌 작품 <신>을 제작한 바 있습니다.

[독립작가협회, <샘> 전시 거부]

미국 독립작가협회는 <샘>을 '원래 자리에서는 유용할지언정 미술 전시회에 전시할 수 없으며 미술 작품이라는 정의에도 따르지 않는다'며 전면 전시를 거부했습니다.

뒤샹은 이에 항의하며 협회에서 탈퇴했습니다.

[스티글리츠, <샘> 극찬]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샘>의 사진을 보고 '이 소변기 사진은 정말 경이롭다.

부처와 베일 쓴 여인이 교차된 것처럼 오리엔트적인 모습을 지녔다'며 극찬했습니다.

그는 이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1918

[<샘> 원제 '화장실의 부처'설]

프랑스 평론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는 <샘>의 원제가 '화장실의 부처'였으며 부처의 좌상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주장을 실었습니다.

이는 <샘>에 담긴 동양적인 미학적 관점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1935

[<샘> 소형 복제품 제작 시작]

뒤샹은 잃어버린 <샘>의 원본을 대신해 자신의 유명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복제하여 <여행가방 속의 상자> 작품에 넣을 용도로 소형 복제품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종이반죽으로, 나중에는 세라믹으로 제작했습니다.

1950

[<샘> 실물 크기 복원 착수]

뉴욕 전시회 준비를 앞두고 <샘>의 실물 크기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원본을 대체하기 위한 뒤샹 본인의 의뢰와 승인으로 이루어진 이 복원은 훗날 여러 기관에 소장될 복제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953

[<샘> 복제품 지속 제작]

1950년 실물 크기 복원을 시작한 뒤, 1953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샘> 복제품 2점이 추가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잃어버린 원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메시지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1964

[<샘> 복제품 대량 제작]

1964년, <샘>의 복제품 8점이 추가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복제품들은 유약칠한 세라믹에 검은색 페인트로 서명을 재현하는 등 원본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되어 오늘날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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