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재난, 붕괴 사고, 대한민국 현대사, 안전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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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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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붕괴 사고, 대한민국 현대사, 안전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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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발생한 대한민국 최악의 도시 시설물 붕괴 사고. 부실 공사 불법 구조 변경 안전 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5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대규모 인명 피해 발생. 한국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과 비리 문제를 고발하며 사회적 경종을 울림.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건물 안전 기준 강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사고의 원인과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의 안전 의식을 논하는 중요한 사례로 회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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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삼풍백화점 최초 설계]

'삼풍 랜드'라는 종합 상가로 지하 4층, 지상 4층 규모로 설계되었다.

준공 직전 이준 회장이 백화점 용도 변경을 요구했으나, 우성건설이 거부하며 계약이 파기됐다.

이준 회장은 건물 구조 전문가의 검토 없이 삼풍건설산업에 백화점 설계 및 공사를 강행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건물의 구조가 상당히 바뀌는 중대한 변경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1989

[백화점 부지 불법 변경]

아파트 부지에 백화점 공사를 시작했다가 무허가로 제재받아 중단되었다.

이후 삼풍 그룹은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를 백화점 용도로 불법 변경했다.

본래 백화점을 지을 수 없는 아파트용 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스포츠센터 이용권 뇌물을 제공하여 불법적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비리를 저질렀다.

1993

[옥상 냉각탑 불법 이전]

삼풍아파트 주민 소음 민원 때문에 옥상 냉각탑 3개를 북관 서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크레인 대신 굴림대를 사용해 옥상 바닥 전체에 심각한 균열을 발생시켰다.

본래 지하 설치 계획이었으나 지하 공간 확보를 이유로 옥상에 무리하게 설치되었고, 이때 평방 미터 당 610kg/m²의 과도한 하중이 추가되었다. 굴림대 이동 과정에서 옥상 바닥이 깨지고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며 건물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994

[삼풍문고 개점]

레포츠 센터의 금융동을 1층으로 옮긴 뒤, 내부 공사를 거쳐 '삼풍문고' 서점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중앙홀 지역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서적 무게로 인해 레포츠 센터와 중앙홀 지역에서 사고 시점까지 1년 넘게 수많은 균열이 늘어나는 등 건물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며 붕괴의 전조를 보였다.

[지하 1층 구조 변경]

백화점 기초 부분인 지하 1층에서 불법 구조 변경 공사를 진행했다.

지하 1층에 대한 구조 변경 공사가 법적 절차 없이 진행되었으며, 이는 건물 전체의 안정성을 더욱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위법 건축물 판정]

삼풍백화점이 위법 건축물로 공식 판정을 받았다.

건물에 대한 위법 건축물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측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영업을 강행했다.

1995

[삼풍문고 철수]

건물 내 균열이 점점 심화되자 삼풍백화점 총관리부가 삼풍문고를 철수시켰다.

서점 철수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생한 균열은 계속 늘어났고, 중앙홀과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균열 및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나타나며 건물 전체가 기울기 시작, 붕괴 당일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건물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리는 명확한 경고였다.

[5층 천장 균열]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최초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생긴 균열은 이후 모래 유출과 바닥 침하로 이어지며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5층 천장 모래 유출]

5층 북관 식당가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건물의 심각한 부실 시공과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위험한 징후였지만, 경영진은 이를 방치하고 근본적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시점부터 붕괴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5층 식당가 이상 징후 보고]

오전 9시, 5층 식당 '춘원' 주인이 바닥 돌출과 천장 침하를 보고했다.

현장 확인 결과 기둥에 20cm 균열, 천장 뒤틀림이 발견되었고, 해당 식당은 휴업에 들어갔다.

오전 10시에는 4층 직원이 4~5층에서 '뚝뚝,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약 3분간 무거운 진동을 느꼈다. 5층의 다른 식당들도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침하되는 등 붕괴 전조가 뚜렷해지며 심각한 상황을 알렸다.

[5층 영업 중단 및 회의]

오전 11시, 이한상 사장 등 경영진이 5층 현장을 확인한 후 5층 식당가 영업이 전면 중지되고 출입이 통제되었다.

옥상 에어컨 가동 및 5층 가스 공급도 중단되었다.

오후 3시, 우원건축 전문가들이 도착하여 오후 4시에 이준 회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즉시 영업 중단 및 고객 대피를 강력히 권고했으나, 이준 회장은 이를 묵살하고 영업을 계속하며 보수 공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삼풍백화점 대규모 붕괴]

오후 5시 57분, 5층 바닥의 약한 기둥 2개가 무너지며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약 20초 만에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완전히 매몰되었고, 1,500여 명의 고객과 종업원들이 잔해 속에 갇히는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붕괴 직전인 오후 5시 40분, 시설부장의 붕괴 진행 보고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보수 계획을 논의 중이었다. 붕괴 직후 현장은 뿌연 먼지와 회오리바람으로 뒤덮였고, 건물 잔해가 주변 지역으로 날아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희생자의 소지품이나 매몰된 상품을 훔치는 절도 행위가 발생했으며, 이준 회장은 붕괴 후 "백화점이 무너진 건 회사 재산도 망가지는 것"이라는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17일 만의 생환 기적]

붕괴 사고 17일 만인 7월 15일, 박승현 씨가 잔해 속에서 극적으로 구조되며 전 세계에 희망을 안겼다.

최명석 씨는 11일, 유지환 씨는 13일 만에 구조되었다.

사고로 총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 6명이 실종되었으며, 약 2,70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비극 속에서 생존자들의 기적적인 구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박승현 씨의 17일 생존은 최장기 생존 기록 중 하나로 남아있다.

[비리 연루자 공개수배]

MBC '경찰청 사람들'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비리에 연루된 관련자 일체가 공개 수배되었다.

이 방송은 전국적인 국민적 관심을 모았으며, 이 사건은 이후 건물 안전 기준 강화와 비리 척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국회의원 안상수에게 정계 진출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

[대법원 최종 판결]

대법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최종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준 전 회장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징역 7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이충우, 황철민 전 서초구청장에게는 뇌물수수죄로 각각 징역 10개월과 추징금이 확정되었으며,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 등 12명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총 25명이 기소된 대규모 사건으로, 부실 공사와 비리에 대한 단호한 법의 심판이 내려졌다.

2001

[아크로비스타 착공]

삼풍백화점 부지에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크로비스타'와 한울빌딩이 착공되었다.

붕괴 사고 이후 6년 만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비극적인 역사의 터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알렸다.

2003

[이준 전 회장 별세]

삼풍건설 이준 전 회장이 출소 후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81세로 별세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책임자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준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은 사건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과거의 아픔을 상기시켰다.

2004

[아크로비스타 완공]

삼풍백화점 부지에 건설된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와 한울빌딩이 완공되었다.

삼풍백화점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은 아크로비스타는 현대 서울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되었다.

[이한상 몽골 선교사 활동]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이 출소 후 몽골로 건너가 선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며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한상 전 사장의 소식은 대중에게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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