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역사, 고대 국가, 한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17:26
한반도와 만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했던 시기. 불교와 유교를 수용하여 사상을 통일하고 우경법 도입으로 생산력을 증대하며 국력을 키웠다. 특히 백제 고구려 신라가 순차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최종적으로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룩했다.
BC 2C
[고조선 멸망과 한사군 설치]
한나라가 왕검성을 함락시키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옛 고조선 지역에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 등 4개의 군을 설치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조선 사회의 기존 상급 통합조직은 해체되었고,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문화에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왕검성을 함락시키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옛 고조선 지역에 네 개의 군(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을 설치했습니다. 한사군의 지배로 고조선 사회의 기존 상급 통합조직은 해체되었고, 중국계 주민들이 주요 지점에 거주하며 지배층으로 군림했습니다. 고조선인은 촌락 단위로 군현 조직에 예속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한나라의 수탈적인 상거래가 성행하여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문화에 큰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BC 1C
[신라 건국]
경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사로국에서 혁거세 거서간이 추대되며 신라(사로국)가 건국되었습니다. 이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진 국가입니다.
현재의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사로국에서 혁거세 거서간이 추대되어 신라가 건국되었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국가의 틀을 세우는 데는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국호 '신라'에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구려 건국]
주몽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에 정착하며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구려는 초기부터 한족과의 투쟁을 통해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기원전 37년, 주몽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佟佳江) 유역에 정착하여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구려는 초기부터 한족과의 투쟁 과정 속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했으며, 이는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백제 건국]
고구려에서 도주한 온조 집단이 하남 위례성에 정착하여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마한의 여러 부족을 결합하며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고구려에서 도주한 온조 집단이 처음에 미추홀과 위례성에 정착했으며, 비류가 자살하면서 위례로 합쳐졌습니다. 하남 위례성에 백제를 건국했으며, 이후 다루왕, 초고왕 재위 기간을 거쳐 토착 부족 세력을 결합하고 마한의 여러 부족과 마찰을 일으키며 점차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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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진대법 실시]
고구려에서 진대법이 실시되어, 빈민 구휼을 위한 일종의 사회 보장 제도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는 고구려 사회 구조의 변화와 중앙집권 체제 개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고구려 고국천왕 시기에 을파소의 건의로 진대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하는 제도로, 빈민 구휼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사회 보장 제도였습니다. 진대법은 고구려 사회의 안정과 왕권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372
[고구려 불교 수용]
고구려 소수림왕 때 중국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이는 고대 국가의 사상 통일과 왕권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소수림왕은 전진으로부터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지방세력 통합에 힘쓰던 고구려에게 새로운 국가 정신을 확립하고 강화된 왕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제정하여 중앙집권국가 체제를 완성시켰습니다.
375
[백제의 전성기]
백제가 근초고왕의 지휘 아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마한 대부분을 병합하고 고구려 평양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습니다.
4세기 근초고왕 때는 마한 대부분을 병합하여 전라도 지역 대부분을 영토로 하였으며, 북쪽으로 고구려의 평양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기 백제가 중국의 요서 지방, 일본의 규슈 등에 진출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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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류왕 때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불교는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지방세력의 통합에 힘쓰던 백제에 새로운 국가 정신을 확립하고 강화된 왕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427
[고구려 평양 천도]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 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영역 확장을 위한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은 영토 확장에 노력하며, 이를 위해 수도를 평양으로 이전했습니다. 이러한 평양 천도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신라와 백제 간의 나제 동맹 성립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75
[고구려의 백제 한성 함락]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침공하여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전사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백제는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옮겼습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 한성을 침공하여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여 고국원왕의 한을 풀었습니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아산만까지 지배 영역을 확장했으며,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함께 공격받은 신라 역시 죽령 이북의 땅을 잃었습니다.
476
[고구려의 전성기]
고구려가 장수왕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요동에서 한강 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며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5세기, 광개토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 대에 걸쳐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광개토왕은 북으로 만주 일대를, 남으로 백제를 공략했으며,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고 백제의 한성을 함락하는 등 광활한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494
[부여 멸망]
고구려와 백제의 기원이 되는 부여가 멸망했습니다. 이는 삼국 시대의 실제적인 전개 시기를 논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부여는 고구려와 백제의 기원이 되는 국가 중 하나로, 494년에 멸망했습니다. 일부 사학자들은 부여의 멸망 이후부터 삼국이 실질적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527
[신라 불교 공인]
신라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었습니다. 1세기 가까운 민간 전승을 거쳐 이루어진 불교 공인은 신라 왕권 강화와 사상 통일, 삼국 통일 기반 마련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구려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된 신라는 1세기 가까운 민간 전승을 거쳐 법흥왕 때 비로소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했습니다. 불교는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을 통해 왕의 권위를 높여주고,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신라 왕권 강화와 사회 통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551
[나제 동맹의 한강 유역 점령]
백제와 신라 연합군이 왕위 계승 분쟁으로 내분에 시달리던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했습니다. 한강 하류는 백제가, 상류는 신라가 차지했습니다.
551년,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은 고구려의 내분을 틈타 한강 유역을 공격하여 점령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강 하류 지역은 백제가, 상류 지역은 신라가 각각 나누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삼국의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553
[신라의 한강 하류 탈취 및 나제 동맹 파기]
신라가 동맹국이었던 백제를 기습 공격하여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하류 지역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는 나제 동맹의 파기를 의미하며, 백제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553년, 신라는 동맹국이었던 백제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 지역마저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한강 유역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백제와의 나제 동맹은 파기되었습니다. 한강 유역 확보는 신라에게 비옥한 토지,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역로 확보, 고구려-백제 국경 차단이라는 전략적 이점을 제공했습니다.
554
[백제 성왕의 관산성 전사]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백제 성왕이 대가야 및 왜군 연합군을 이끌고 신라에 대한 반격전에 나섰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하고 전사했습니다.
신라에 한강 하류 지역을 빼앗겨 격분한 백제 성왕은 이듬해 백제군과 가야군 및 1천 명의 왜군을 포함한 3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신라에 대한 반격전에 나섰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하고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백제와 연합해 신라와 싸운 가야군은 대가야가 중심이 된 군대였습니다.
562
[가야 연맹 멸망]
가야 연맹체의 중심이었던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가야는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이는 신라의 낙동강 서부 진출 정책 성공을 의미하며, 삼국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에 있었던 여러 작은 나라의 총칭인 가야는 오랫동안 신라, 백제 및 왜의 세력 각축장이었습니다. 6세기 초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후,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국이 되었으나 554년의 전투에 패배한 후 얼마 안 있어 신라에 병탄되면서 562년 가야는 완전 소멸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한반도 남동부의 새로운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576
[신라의 전성기]
신라가 진흥왕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한강 유역을 탈환하고 동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법흥왕대에 불교 공인 등 자체 정비를 서두른 신라는 진흥왕대에 이르러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동북쪽으로 진격하여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대까지 점령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한강 유역을 탈취하여 비옥한 토지와 서해안을 통한 중국과의 접촉이라는 전략적 이점을 얻고, 내부적으로 화랑도를 양성하는 등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612
[살수 대첩]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수나라 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입니다. 이는 수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수나라 멸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589년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를 4차례에 걸쳐 침공했습니다. 고구려는 612년 을지문덕 장군이 이끈 살수 대첩과 같은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수나라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전쟁은 수나라의 멸망의 요인 중 하나가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660
[백제 멸망]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백제가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했습니다. 의자왕의 실정과 귀족간 권력 다툼으로 국력이 약해진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통일에 앞서 삼국은 갈등을 겪었고, 백제는 군사를 총동원하여 신라에게 빼앗긴 옛 영토를 공격하고 있었으나, 의자왕의 실정과 귀족간 권력 쟁탈전으로 민심이 이반되어 국력이 약해졌습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668
[고구려 멸망]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고구려가 수도 평양성이 함락되며 멸망했습니다.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 분열과 민심 혼란이 멸망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수차례 막아냈던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의 세력 분쟁과 민심 이반으로 국력이 크게 약해져 있었습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혼란해진 고구려를 공격하여 수도인 평양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옛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나, 고구려의 공백은 후일 계승국인 발해로 이어집니다.
676
[신라의 삼국 통일 완성]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자 이에 맞서 나당 전쟁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대동강-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차지하며 한반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룩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연합으로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도독부와 주를 설치하며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이에 맞서 싸웠습니다. 문무대왕 16년인 676년에 나당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철거시키고 대동강과 원산만을 연결하는 선 이남의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한반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뤄냈습니다.
892
[견훤의 후백제 건국]
신라 말기에 왕과 귀족의 사치와 정치 부재로 혼란이 가중되자, 견훤이 후백제를 세웠습니다. 이는 후삼국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신라 말기, 왕과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정치의 부재로 인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892년, 견훤이 이를 틈타 후백제를 건국하며 후삼국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901
[궁예의 태봉 건국]
신라 말기 혼란 속에서 궁예가 태봉(처음 이름은 후고구려)을 세웠습니다. 후백제 건국과 함께 후삼국 시대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901년 궁예가 태봉(처음 이름은 후고구려)을 세웠습니다. 이는 견훤의 후백제 건국과 더불어 신라가 쇠락하고 후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935
[신라 멸망]
후백제와 태봉(후고구려)의 공세에 버티지 못한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투항하며 신라는 56대 992년 만에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후삼국 시대는 고려의 주도로 통일되었습니다.
신라 하대에는 계속된 평화와 왕위 계승권 싸움으로 혼란해지며 국력이 기울었습니다. 후백제와 태봉(처음 이름 후고구려)의 공세에 버티지 못한 신라 경순왕은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며 신라는 56대 992년 만에 멸망했습니다. 이는 삼국 시대의 마지막 왕국이자 통일 신라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