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초상화가, 종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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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4: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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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초상화가, 종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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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 비너스의 탄생과 봄 같은 신화적 주제를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선으로 표현 당대 최고 수준의 예술을 선보였다. *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고 시스티나 성당 벽화 작업에도 참여했다. * 그의 독창적인 양식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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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

[르네상스 화가 탄생]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

'작은 술통'이라는 뜻의 '보티첼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훗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이다. 피렌체의 제혁업자 마리아노 디 반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출생 연도는 1444년에서 1445년 사이로 추정된다.

1464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의 공방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거장의 가르침 아래 보티첼리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프라 필리포 리피는 당시 피렌체에서 명망 높은 화가로, 보티첼리는 그의 밑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기본적인 기법과 예술 철학을 익혔다.

1467

[베로키오 공방 합류]

프라 필리포 리피의 문하를 떠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다.

이곳에서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동료들과 교류하며 예술적 시야를 넓혔다.

베로키오는 당대 피렌체의 주요 예술가이자 교사였으며, 보티첼리는 그의 지도 아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등의 작품을 그리며 실력을 다졌다.

1470

[독립 공방 설립]

스승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공방을 열었다.

이제 그는 어엿한 독립 화가로서 피렌체 예술계에 발자취를 남길 준비를 마쳤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기 위해 독립 공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개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475

[메디치 가문의 후원]

피렌체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 시기 그린 수많은 초상화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고용되어 가문 사람들과 그 추종자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이는 보티첼리가 피렌체 사회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동방박사의 경배'(1475)에는 보티첼리 자신의 자화상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1481

[성모 마리아 연작 발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대표작들을 선보였다.

특히 〈찬가의 성모〉와 다른 성모 마돈나 작품들은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깊은 신앙심을 예술로 승화시킨 보티첼리의 섬세한 감각을 보여준다.

대표작 중 하나인 〈찬가의 성모〉를 포함해 여러 성모 마돈나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원형 구도와 부드러운 색채, 인물들의 경건한 표정이 특징으로, 보티첼리의 종교화 역량을 잘 나타낸다.

1482

[시스티나 성당 벽화 작업]

로마 교황의 부름을 받아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작업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그는 페루지노, 기를란다요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의뢰로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특히 〈모세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유혹〉, 〈코라 일당의 처벌〉 등을 그렸다. 이는 그의 명성을 이탈리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명작 〈봄〉 탄생]

신화적 주제를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대표작 〈봄(프리마베라)〉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적인 회화로 손꼽히며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봄〉은 큐피드, 비너스, 삼미신 등 고대 신화 속 인물들을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 특유의 시적이고 장식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1486

[〈비너스의 탄생〉 걸작]

조개껍질 위에 서 있는 비너스의 모습을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완성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정점을 찍었다.

사실적 묘사를 넘어선 상징과 장식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세계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고대 신화 속 미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에서 태어나 키테라 섬으로 상륙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섬세한 인체 묘사와 우아한 구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메디치 가문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티첼리 특유의 시적 감수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1500

[신비로운 후기 작품들]

만년에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렌체를 휩쓴 종교적 격변 속에서 그의 예술 또한 깊은 사색과 영적인 탐구로 나아갔다.

특히 〈신비의 십자가〉와 같은 작품들에서 보티첼리는 강렬한 감정 표현과 고딕 양식의 재수용을 보여주었다. 이는 당시 피렌체에 영향을 미친 종교 개혁 운동과 예언자 사보나롤라의 영향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510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의 죽음]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가 피렌체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후대에 끊임없이 영감을 주며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64세 또는 65세의 나이로 피렌체에서 생을 마감했다. 보티첼리는 생전 명성을 누렸으나, 사후 약 300년간 잊혔다가 19세기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 의해 재조명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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