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역사가, 작가, 태사령, 중서령, 환관

num_of_likes 46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6:08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역사가, 작가, 태사령, 중서령, 환관
report
Edit

- 중국 전한 시대의 위대한 역사가이자 중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 동양 최고의 역사서 중 하나인 《사기》를 저술하며 기전체라는 혁신적인 서술 방식을 개척. - 이릉 사건으로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음에도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이겨내고 《사기》를 완성한 불굴의 정신의 상징.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BC 2C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탄생]

중국 전한 시대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산시성 용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태사령 사마담이었다.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이 기원전 145년경 산시성 용문(현재 위남시 한청시)에서 태어났다. 자는 자장이며, 주나라 역사가 집안의 후손이다. 아버지 사마담은 전한의 태사령으로 천문과 달력, 고전에 통달했다.

[낭중이 되어 중국 각지 여행]

20세경 낭중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며 강남, 산둥, 허난 등 중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20세경(기원전 125년경) 낭중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시기 광범위한 여행을 통해 훗날 사기 편찬의 기반이 될 많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받들다]

36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태산 봉선 의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분하여 병으로 사망하며, 편찬하던 역사서 완성을 사마천에게 부탁했다.

사마천이 36살 때인 기원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은 태산에서 거행된 무제의 봉선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병이 나서 죽었다. 임종 시 아들 사마천에게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줄 것을 유언으로 부탁하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에 오르다]

아버지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자, 사마천은 그의 뒤를 이어 전한의 태사령이 되었다.

기원전 108년, 아버지 사마담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사마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한의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이 되었다.

[역법 개정, 태초력 완성]

42세쯤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을 완성했고, 이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 편찬에 본격 착수했다.

사마천의 나이 42살쯤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을 기원전 104년 무제 (태초 원년)에 완성하였다. 이로써 정확한 시간 기록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그 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BC 1C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당하다]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사형 대신 가문의 명예를 버리고 《사기》 완성을 위해 궁형을 받아들이는 비극을 겪었다.

기원전 99년, 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이 패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무제는 진노했고, 신하들은 모두 이릉을 비난했으나, 사마천은 이릉의 충절과 용맹을 찬양하고 두둔했다. 이로 인해 이광리의 모함을 받아 무제의 노여움을 사 태사령 직책에서 파면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사형을 면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벌금을 낼 수 없었던 사마천은 시대적 풍조에도 불구하고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거세)을 받아들이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동양 최고의 역사서 《사기》를 완성하다]

비극적인 궁형을 감내하며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황제에서 무제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사기》 130권을 마침내 완성했다.

궁형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오직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역사서 편찬을 완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사기》 편찬에 매진했다. 마침내 황제(黃帝)에서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별로 나누어 기록한 130권의 방대한 《사기》를 완성하였다. 이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획기적인 역사책으로, 연대순 편년체와 함께 역사 기록 방법의 하나인 '기전체'의 시초가 되었다.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고 중서령에 임명되다]

이광리의 반역이 진압된 후, 무제는 사마천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를 환관 최고의 관직인 중서령에 임명하며 신임을 회복했다.

궁형을 당한 이후 이광리가 무제를 폐하고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서자를 천자에 제위시키려다 무제에게 진압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통해 무제는 이광리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고, 사마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그 후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 최고의 관직인 중서령에 임명되었다.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 별세]

중국 역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기원전 86년경 세상을 떠났다.

동양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받으며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 불린 사마천이 기원전 86년경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극적인 생애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에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