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즈 파스칼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 발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3:53:57
블레즈 파스칼은 17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파스칼의 삼각형 정리 등을 발견하고 19세에 세계 최초의 계산기 파스칼라인을 발명했습니다. 유체정역학의 기초를 다져 파스칼의 법칙을 정립하고 압력 단위 파스칼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마차 사고 이후 종교에 깊이 귀의해 팡세 시골 벗에게 부치는 편지 같은 위대한 철학 및 신학 저작을 남겼으나 39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짧은 삶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에서 인류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멸의 천재입니다.
1623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지방에서 루앙의 세무공무원 에티엔 파스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비상한 면모를 보였지만 몸이 허약하여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1635
[삼각형 내각의 합 자체 발견]
12세에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을 접하며 기하학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어린 파스칼은 12세에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독자적으로 발견하여 신동으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아버지 에티엔은 이 발견을 계기로 그에게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을 주어 기하학 공부를 계속하도록 격려했고, 파스칼은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636
[블레즈 파스칼의 삼각형 발견]
13세에 현재 '파스칼의 삼각형'으로 알려진 개념을 발견하며 수학적 재능을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파스칼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오늘날 '블레즈 파스칼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중요한 수학적 개념을 발견하여 신동으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1637
[프랑스 수학자 단체 정기 회동 참여]
14세에 현재 프랑스 학술원이 된 프랑스 수학자 단체의 주요 정기 회동에 참가하여 당시 저명한 수학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스칼은 14세에 이미 프랑스 수학자 단체의 정기 회동에 참여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단체는 훗날 프랑스 학술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639
[사영기하학의 기초 '파스칼의 정리' 증명]
16세에 사영기하학의 기초가 되는 '블레즈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했으며, 이어서 정리를 이용하여 400개의 명제를 유도해냈습니다.
파스칼은 16세에 사영기하학의 핵심 개념인 '블레즈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하여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이는 <원뿔곡선의 시론>을 통해 발표되었는데, 당시 데카르트가 파스칼의 아버지가 썼을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1640
[파스칼의 정리 응용 및 명제 유도]
17세에 자신이 증명한 파스칼의 정리를 활용하여 무려 400개의 명제를 유도해내는 놀라운 수학적 역량을 선보였습니다.
17세에 파스칼은 자신이 발견하고 증명한 파스칼의 정리를 기반으로 400개에 달하는 명제를 유도하며, 그의 수학적 사고력과 응용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642
[세계 최초의 계산기, 파스칼라인 발명]
19세에 회계사인 아버지의 업무를 돕기 위해 덧셈과 뺄셈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기계식 수동 계산기인 '파스칼 계산기'(파스칼라인)를 발명했습니다.
파스칼은 19세에 회계사인 아버지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자 톱니바퀴로 연결된 바퀴판들을 이용해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기계식 수동 계산기, '파스칼라인'을 발명했습니다. 이 장치는 초기에는 '산술기기' 또는 '파스칼의 계산기'로 불렸습니다.
1644
[유체정역학의 기초 '파스칼의 법칙' 정립]
21세에 수은 기둥을 활용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유체정역학의 기초가 되는 '파스칼의 법칙'을 정립하며 과학 분야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파스칼은 21세에 수은 기둥 실험을 통해 유체정역학의 핵심 원리인 '파스칼의 법칙'을 정립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훗날 압력의 SI 단위가 '파스칼(Pa)'로 명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646
파스칼은 23세 되던 해,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이 엉덩이뼈를 다쳐 치료를 위해 집에 머물던 기독교 신자 접골사 데상 형제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1647
[토리첼리 실험 재현 및 진공 연구 시작]
토리첼리의 책을 읽고 기압에 관심을 가지게 된 파스칼은 1월과 2월에 루앙에서 다양한 모양의 관, 심지어 12미터 길이의 관을 이용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파스칼은 토리첼리의 기압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1647년 1월과 2월, 루앙의 뛰어난 유리 제작 기술 덕분에 여러 가지 모양의 관을 활용하여 토리첼리의 실험을 재현하고 진공의 존재와 유체정역학 문제들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12미터 길이의 관을 배의 돛대에 고정시켜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진공 연구 논문 《진공에 관한 견해》 출간]
루앙에서 수행한 일련의 실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1647년 8월 자신의 진공에 대한 견해를 담은 《진공에 관한 견해》를 출간했습니다.
파스칼이 루앙에서 진행했던 진공 관련 실험들은 1647년 봄 파리에 알려져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 결과를 정리한 《진공에 관한 견해》(Discours sur le vide)가 1647년 8월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데카르트와 진공의 존재 유무 논쟁]
루앙에서 파리로 이사한 후, 9월 23일부터 24일까지 데카르트와 진공의 존재 유무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1647년 여름 건강 악화로 루앙을 떠나 파리로 이사한 파스칼은 그 해 9월 23일과 24일, 저명한 철학자인 데카르트와 진공의 존재 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펼쳤습니다.
[진공에 대한 새로운 실험 논문 발표]
데카르트와의 논쟁 후, 10월에 32페이지 분량의 《진공에 대한 새 실험》 논문을 작성하며 진공의 존재를 더욱 명확히 주장했습니다.
1647년 10월, 파스칼은 진공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진공에 대한 새 실험》(Experiences nouvelles touchant le vide)이라는 32쪽짜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파스칼의 잇따른 반론으로 노엘 등의 반대 의견이 수정되면서 논쟁은 파스칼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648
[퓌드돔 실험 결과 논문 작성]
퓌드돔 산에서의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논문을 작성했으며, 이는 진공과 기압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1648년 가을, 파스칼은 퓌드돔 산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고도에 따른 수은 기둥 높이 변화가 공기의 무게와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퓌드돔 산에서 '파스칼의 실험' 성공]
친척 페리에와 함께 퓌드돔 산에 올라가 고도에 따른 수은 기둥의 높이 변화를 관찰하는 유명한 '파스칼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1648년 9월 19일, 파스칼은 그의 친척인 페리에와 함께 퓌드돔 산을 오르며 수은 기압계를 통해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은 기둥의 높이가 낮아지는 현상을 관찰하는 '파스칼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 실험은 공기가 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진공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1650
[3년간의 수학·과학 연구 중단 선언]
27세에 종교적 고찰에 집중하기 위해 3년 동안 수학과 과학 연구를 중단했으며, 이로 인해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파스칼은 27세에 종교적 성찰에 몰두하고자 수학과 과학 연구를 3년간 중단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결정은 훗날 그가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653
[압력의 법칙 '파스칼의 원리' 정립]
《액체의 평형에 관한 논문집》에서 '파스칼의 원리'라 불리는 압력의 법칙을 설명했으며, 이는 밀폐 용기 내 유체에 가해진 압력이 모든 곳에 균일하게 전달된다는 내용입니다.
파스칼은 1653년 자신의 논문집에서 '파스칼의 원리'라고 알려진 압력의 법칙을 설명했습니다. 이 원리는 밀폐된 용기 안의 움직이지 않는 유체에 압력을 가하면 그 압력이 유체 내의 모든 부분에 같은 크기로 전달된다는 것으로, 파스칼은 이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수압 프레스를 고안했습니다.
1654
[마차 사고 후 신학에 전념 및 확률론 기초 마련]
마차 사고를 겪은 후 이를 계기로 지독한 신도였던 그는 신학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팡세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저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도박꾼의 문제 해결을 돕는 과정에서 페르마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확률론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1654년 말, 파스칼은 마차 사고를 당했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에게 깊은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었고, 그는 점점 더 신학에 몰두하여 유명한 《팡세》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저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노련한 도박꾼 슈발리에 드 메레의 문제 제기를 해결하기 위해 당대 천재 수학자 페르마와 서신을 교환하며 확률론의 기초를 공동으로 다지는 중요한 수학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를 들었다며 신앙 고백 글을 썼습니다.
1658
[심한 두통 발병 및 사이클로이드 연구]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사이클로이드'를 연구하여 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658년부터 파스칼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이를 잊기 위해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연구하며 수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1662
[천연두 환자 가족 돕기 위해 이사]
자기 부정 행위로서 천연두에 걸린 가난한 가족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누이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1662년 6월, 파스칼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 의미로 천연두에 걸린 가난한 가족에게 자신의 집을 내주었으며, 자신은 누이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했습니다.
1662년 8월 19일, 블레즈 파스칼은 경련 발작으로 사망했습니다. 사후 해부 결과 위장과 중요 기관들이 정상이 아니었고 뇌에도 심각한 외상이 발견되는 등 그의 생애가 고통스러웠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63
[유고작 《액체의 평형에 관한 논문집》 출간]
파스칼 사후, 친척 페리에에 의해 그의 유체정역학 및 기압 연구를 집대성한 《액체의 평형에 관한 논문집》이 출간되었습니다.
파스칼의 유체정역학 및 기압에 대한 중요한 연구들은 그가 사망한 후 1663년, 친척 페리에에 의해 《액체의 평형에 관한 논문집》(Traitez de l'equilibre des liqueur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논문에는 '파스칼의 원리'를 비롯한 유체정역학의 핵심 법칙들, '진공 안의 진공' 실험, 그리고 퓌드돔 산에서의 파스칼의 실험 결과가 정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