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작곡가, 음악가, 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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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8- 15: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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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작곡가, 음악가, 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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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가 낳은 서양 고전 음악의 전설적인 작곡가.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 나이부터 유럽 왕족을 매료시킨 천재. 35년의 짧은 생애에도 교향곡 오페라 협주곡 등 800곡이 넘는 불후의 명작을 남김. 미완성 유작 레퀴엠은 그의 죽음과 얽혀 미스터리로 남아있으며 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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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

[음악 신동의 탄생]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남매 중 다섯은 어린 나이에 죽고,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세례명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였으며, 오늘날 널리 알려진 중간 이름 '아마데우스'는 세례명의 그리스어 어원 테오필루스를 라틴어로 바꾼 것입니다.

1761

[5살, 천재성을 보이다]

불과 다섯 살에 이미 건반악기와 바이올린 연주에 능숙했고, 작곡을 시작했으며, 유럽 왕족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비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모차르트의 작곡을 믿지 못하고 집에서 시험하기도 했지만, 그는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천재성을 입증했습니다.

세계 최초 '음악의 신동'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놀라운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어린 아들의 재주를 알아보고 직접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으며, 이 시기 작곡된 K. 1a, b, c 등의 곡들은 모차르트의 초기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1763

[유럽을 놀라게 한 연주 여행]

6세 때 뮌헨을 시작으로 1766년까지 약 3년간 독일, 파리, 런던 등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연주 여행을 했습니다.

이 서유럽 일주는 모차르트에게 부담과 동시에 엄청난 음악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1764년에서 1765년 사이 영국 런던에서 '대 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나 작곡 등 많은 것을 배우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모차르트는 수차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음악을 공부했는데,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 신부에게서 음악 이론을 배우고 다양한 교향곡과 오페라를 접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여행과 교류는 그의 창작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773

[갈등으로 얼룩진 궁정 생활]

어릴 때부터 여러 대도시와 궁정에서 연주하며 명성을 얻은 모차르트는 고향 잘츠부르크에 머물며 궁정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엄격한 궁정 분위기와 여러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대주교와의 불화가 깊어져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가로 일하던 17세경부터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플루트와 하프 협주곡, 모테트 '환호하라, 기뻐하라', 오페라 '이도메네오' 등 다양한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1781

[빈 정착과 새로운 시작]

1781년 빈을 방문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의 직위를 해고당하고, 이후 죽을 때까지 빈에 머무르며 새로운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달리 재정적으로는 원하는 만큼 안정적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빈에서의 생활은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하이든' 사중주 등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비엔나에 정착한 초기에는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대미사 다단조, '하이든' 사중주와 여러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특히 12개 이상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일부로 평가받습니다.

1782

[콘스탄체와의 결혼]

빈에서 생활하던 중 콘스탄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모차르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782년에 결혼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그는 비엔나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1784

[베토벤과의 만남?]

178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가 14세의 베토벤을 만났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의 뛰어난 즉흥 연주 실력에 감탄하며 교육비를 받지 않고 그를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어머니의 사망 소식으로 한 달 만에 빈을 갑작스럽게 떠나면서 두 거장의 만남은 아쉽게도 짧게 끝났습니다.

이 일화의 유일한 전거는 오토 얀이 저술한 모차르트의 전기이며, 오늘날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실제로 만났는지에 대한 신뢰성은 잘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빈에 찾아온 것은 모차르트가 죽은 지 1년 후인 1792년이었습니다.


[팩트 체크]

1784년 14살의 베토벤은 2월, 베토벤은 쾰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의 궁정에서 정식으로 부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스승이었던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의 보조 역할을 하는 직책으로, 급여를 받는 엄연한 직업이었습니다. 궁정 오르가니스트로서 베토벤은 미사 및 각종 궁정 예배에서 정기적으로 오르간을 연주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고 먼 도시인 빈까지 여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가입]

모차르트는 1784년 12월 14일 프리메이슨 '자선' 지회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프리메이슨 가입은 가입자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의미가 컸으므로, 친목 단체의 특성상 문제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1787

[황실 실내악 작곡가 임명]

요제프 2세가 모차르트를 '황실 실내악 작곡가(k. k. Kammerkomponist)'로 임명했습니다.   

1791

[갑작스러운 죽음과 '레퀴엠']

35세의 젊은 나이로 1791년 12월 5일 오전 0시 55분경 사망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은 수많은 전설과 학설을 낳았으며,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 '레퀴엠'은 그의 죽음과 얽혀 더욱 비극적이고 신비로운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짧고 강렬했던 삶은 서양 음악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사망 원인은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대 의학으로는 명확하게 진단하기 어렵습니다. 선모충병, 중독, 류머티스열 등 여러 추측이 무성합니다. 아내 콘스탄체는 미완성 레퀴엠의 완성을 여러 제자에게 맡겼고, 결국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완성했습니다. 모차르트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만족할 만한 수입이 있었고 다만 방탕한 생활로 돈을 낭비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는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으나, 당시 중산층의 일반적 풍습에 따라 묘비가 나무였고 묘지 이장이 거듭되면서 현재 그의 정확한 무덤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1796

[살리에리가 아들의 교육을 맡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아들 프란츠 크사버의 음악 교육을 살리에리에게 맡겼습니다. 만약 남편과 살리에리가 원수지간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콘스탄체가 살리에리를 신뢰할 만한 동료이자 뛰어난 교육자로 인정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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