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지 전투
군사 작전, 제2차 세계 대전, 전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2:58
제2차 세계 대전 서부전선에서 독일이 감행한 최후의 대반격 작전. 연합군의 허를 찌르는 기습으로 전선이 돌출되는 벌지(Bulge) 현상이 발생했으나 연합군의 예상 밖 빠른 대응과 병사들의 영웅적인 저항으로 독일군의 공세는 좌절되었다. 전쟁 종결을 가속화시킨 결정적인 전투이다.
1944
[그라이프 작전 개시]
오토 스코르체니가 이끄는 독일 제150 기갑여단이 미군복을 입고 연합군 차량으로 위장하여 후방에 침투하는 '그라이프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연합군에 큰 혼란을 야기하며, 아이젠하워 유괴설까지 나돌아 그의 경호가 대폭 강화되는 등 전례 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전으로 인해 연합군 후방에 검문소가 대거 설치되었고, 오마 브래들리 장군조차 일리노이주 주도에 대한 질문에 '스프링필드'라고 정확히 답했음에도 헌병이 '시카고'를 정답으로 여겨 잠시 억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스코르체니는 작전이 실패했다고 평가했으나, 연합군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다.
[독일군 대공세 개시]
독일군이 벨기에 아르덴 숲을 통과해 대규모 공세를 개시하며 연합군의 허를 찔렀다.
끊이지 않는 악천후로 연합군 항공기가 뜨지 못해 독일군은 큰 도움을 받았으며,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독일의 공세 여력을 과소평가하여 약체화된 부대를 배치했던 상황이었다.
[슈퇴서 작전 개시]
연합군 후방 교란을 노린 '슈퇴서 작전'이 새벽 3시에 개시되었다.
악천후와 연료 부족으로 강하가 지연되었고, 짙은 구름과 강한 눈보라로 인해 1,300여 명의 팔슈름예거 병사들이 광범위하게 분산 낙하하며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연합군 사령부는 이를 대규모 공수작전으로 오인, 후방 병력 재배치로 전선 증원이 늦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파이퍼 전투단 진격]
SS 6기갑군의 주력인 요아힘 파이퍼 SS중령이 이끄는 파이퍼 전투단이 벨기에 서부로 진출하여 뷰리겐의 미군 연료보급기지를 확보하고 연료를 재보급했다.
이는 전투단이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는 데 필수적인 발판이 되었다.
[말메디 학살 발생]
파이퍼 전투단이 285 포병관측대대와 조우한 후, 항복한 미군 포로 약 150명 중 최소 84명이 기관총 사격으로 살해당하는 '말메디 학살'이 발생했다.
이 잔혹한 사건은 전후 요아힘 파이퍼 SS중령을 포함한 친위대원들이 사형 선고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장교 명령으로 포로들이 총살당했지만,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도망을 준비한 포로에 대한 위협발포가 패닉으로 이어져 총격이 발생했을 가능성, 미군 폭격으로 희생된 벨기에 민간인 시체를 처리한 병사들의 복수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숨이 붙어있던 자들을 돌며 살해한 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이퍼 전투단 진격 좌절]
파이퍼 전투단이 스타벨롯에 진입했으나 미군 방어부대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트로와퐁의 다리를 통해 진격하려 했으나 퇴각하는 연합군에 의해 다리가 파괴된 뒤였다.
결국 라 그레즈로 후퇴해 구원부대를 기다려야 했다.
[연합군 지휘관 긴급 회의]
연합군 상급 지휘관들이 베르됭 요새 지하기지에서 긴급 회의를 가졌다.
아이젠하워가 패튼에게 북부 반격 가능성을 묻자, 패튼은 이미 회의 전 반격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려 48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답하며 연합군의 신속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었다.
[바스토뉴 포위 및 항전]
독일군이 바스토뉴를 완전히 포위했다.
이곳을 방어하던 미 제101 공정사단장 대리 안소니 맥컬리프 준장은 독일군의 항복 권고에 “NUTS!(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하며 항전을 선언, 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독일군은 바스토뉴 공략에 실패하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생 비트 확보 지연]
독일군이 중요한 도로 교차지점인 생 비트를 확보했지만, 미군 방어부대의 완강한 저항으로 계획된 12월 17일 목표보다 훨씬 늦게 점령했다.
이 지연은 독일군의 전체 작전 진행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연합군 공중 작전 재개]
악천후가 회복되면서 연합군은 공중폭격과 공중보급을 재개했다.
항공폭격은 독일군 보급기지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었고, 포위된 바스토뉴 수비대에는 의약품, 식료, 탄약 등이 공급되어 전세를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이퍼 전투단 퇴각]
독일군 주력과의 단절과 연합군의 반격, 보급의 어려움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파이퍼 전투단은 결국 귀중한 차량 및 전차 등 장비를 버리고 도보로 탈출하는 퇴각을 결정했다.
[독일군 진격 한계 봉착]
보급선의 한계를 넘어선 독일군의 진격은 뮤즈강 근처에서 연료와 탄약 고갈로 속력을 잃었다.
하소 폰 만토이펠 장군은 작전 중단과 철수를 진언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무리한 공세를 지속시켰다.
[바스토뉴 포위 해제]
패튼 장군의 미 3군이 바스토뉴 구원을 위해 전투를 계속한 끝에, 제4기갑사단의 일부가 오후 4시 50분 바스토뉴에 도달하여 독일군의 포위를 깨뜨렸다.
이는 연합군 반격의 결정적인 순간이자 전세 역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45
[독일군 바스토뉴 퇴각]
독일군이 바스토뉴에서 퇴각했다.
오랜 공방 끝에 주요 거점인 바스토뉴를 장악하는 데 실패하며, 독일군의 공세는 한계에 봉착했음이 명확해졌다.
[독일군 작전 중지 결정]
독일군 사령부가 벌지 전투 작전 중지를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이는 독일의 최후 대반격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며, 서부전선에서의 독일군 공세 능력이 사실상 소멸되었음을 시사했다.
[벌지 전투 공식 종료]
독일군 최후의 대반격이었던 벌지 전투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전투로 연합군은 다수의 전력을 잃었으나 보충이 가능했고, 독일군은 핵심 병력의 궤멸적인 손실로 전쟁 종결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결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