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쟁

전쟁, 유럽사, 중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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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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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유럽사, 중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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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간 이어진 유럽 최장기 분쟁입니다.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발루아 가의 왕위 계승 다툼이 핵심 원인입니다. 기사 중심 봉건제 몰락 장궁병과 화약 무기 부상 등 군사 혁명을 초래했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강력한 국민의식 및 중앙집권 국가 형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잔 다르크의 극적인 활약으로 프랑스 전세가 역전된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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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

[잉글랜드-프랑스 갈등의 씨앗]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잉글랜드 국왕은 프랑스 내 보유 영지로 인해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 되는 복잡한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는 수백 년간 이어질 두 나라 갈등의 뿌리가 됩니다.

1316

[살리카법 도입]

프랑스에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이 도입됩니다.

이는 훗날 카페 왕조 단절 시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명분이 됩니다.

1328

[프랑스 왕위 계승 분쟁]

프랑스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누이인 잉글랜드 이사벨라 왕비는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3세의 왕위 계승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들은 살리카법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왕위 계승 분쟁이 시작됩니다.

1337

[백년 전쟁의 서막]

프랑스 필리프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영지인 아키텐령 몰수를 선언하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이에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도전장을 보내며 무려 116년간 이어질 백년 전쟁의 서막이 오릅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의 모직물 공업 핵심지인 플랑드르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는 제네바, 카스티야의 지원을 받아 외교전이 치열했습니다.

1340

[슬뢰이스 해전 승리]

잉글랜드-플랑드르 연합함대가 슬뢰이스항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며 도버 해협의 제해권을 장악합니다.

이는 116년간 프랑스 본토만 전쟁터가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1346

[크레시 전투: 장궁의 위력]

잉글랜드 장궁병대가 전력이 훨씬 우세한 프랑스 기사군을 크레시 전투에서 대파합니다.

이 전투는 화약 무기 등장 이전에 중장기병의 몰락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되며, 영국 웨일스 사냥꾼들의 장궁이 전술의 판도를 바꾸며 기사 중심의 봉건군 전술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347

[칼레 함락]

크레시 전투의 승세를 몰아 잉글랜드군은 프랑스 요충지 칼레를 포위하고 끈질긴 저항 끝에 함락시킵니다.

이로써 칼레는 잉글랜드의 대륙 거점으로 확정되며 프랑스 왕실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1356

[푸아티에 전투 대승]

흑태자 에드워드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프랑스 국왕 장 2세가 직접 지휘하는 프랑스군을 푸아티에 전투에서 또다시 격파하고, 심지어 장 2세를 포로로 잡는 충격적인 대승을 거둡니다.

이는 잉글랜드 보병 장궁대의 전법이 프랑스 봉건 기사군보다 우수했음을 다시 증명하는 결과였습니다.

1358

[프랑스 농민 반란]

전쟁의 참화와 잉글랜드군의 약탈로 프랑스 농민들의 고통이 극심해지자, '자크리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 반란이 일어납니다.

비록 진압되었지만, 프랑스 왕가를 심각한 궁지로 몰아넣어 브레티니-칼레 조약 체결의 배경이 됩니다.

1360

[브레티니-칼레 조약]

푸아티에 전투의 결과로 체결된 조약으로, 프랑스는 아키텐 지방 전부와 칼레를 잉글랜드에 할양하고 막대한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 왕위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대륙 영토를 획득하는 데 집중했으며, 이로써 백년 전쟁의 1기(에드워드 전쟁)가 마무리됩니다.

1369

[프랑스 전세 역전]

프랑스 샤를 5세는 내정을 정비하고 아키텐 귀족들을 선동하여 잉글랜드에 저항하게 합니다.

곤트의 존이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침입했으나 프랑스군의 분전으로 패배하고, 프랑스 해군 또한 카스티야 해군과 동맹을 맺어 잉글랜드 해군을 격파하며 전세를 뒤집습니다.

이로써 백년 전쟁 2기(캐롤라인 전쟁)가 프랑스에 유리하게 흘러갑니다.

1381

[와트 타일러의 난]

잉글랜드에서도 리처드 2세의 미성년 통치와 전쟁 비용 부담으로 인한 불만으로 와트 타일러의 난이 발생합니다.

국내 혼란으로 인해 양국 간의 전쟁은 오랫동안 중단되는 소강상태를 맞습니다.

1399

[랭커스터 왕조 시작]

프랑스와의 화친 정책을 추진하던 잉글랜드 리처드 2세가 폐위되고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4세가 즉위하며 프랑스와의 전쟁을 재개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샤를 6세의 정신착란과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내전 상태에 빠져 전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을 보입니다.

1415

[아쟁쿠르 전투 대승]

잉글랜드 헨리 5세는 프랑스의 내분을 이용해 노르망디를 침공하고 아쟁쿠르 전투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 있던 프랑스군을 또다시 대패시키며 북프랑스 여러 도시를 탈취합니다.

이는 백년 전쟁 3기(랭커스터 전쟁)의 핵심 사건 중 하나입니다.

1420

[트루아 조약 체결]

헨리 5세는 승리를 배경으로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하며 스스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인정받는 트루아 조약을 체결합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 왕위를 거의 손에 넣는 듯 보였으나, 왕세자 샤를(훗날 샤를 7세)과 그 지지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중남부 프랑스에서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1428

[오를레앙 포위]

잉글랜드군이 샤를 7세의 거점인 오를레앙을 포위하며 프랑스 왕실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샤를 7세는 정식 대관식조차 치르지 못하며 프랑스의 희망은 거의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1429

[잔 다르크의 등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잔 다르크'가 나타나 오를레앙의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며 프랑스 전황을 극적으로 뒤집습니다.

그녀의 활약으로 샤를 7세는 랭스 대성당에서 정식 대관식을 치르고 프랑스 국왕 지위를 확립하며 프랑스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1431

[잔 다르크의 순교]

프랑스 부르고뉴파에게 체포되어 잉글랜드 측에 넘겨진 잔 다르크는 루앙에서 마녀 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희생은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1453

[카스티용 전투: 백년 전쟁의 끝]

프랑스군이 카스티용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잉글랜드는 대륙 영지 대부분을 영구히 상실합니다.

이로써 116년간 이어진 유럽 최장기 분쟁인 백년 전쟁이 마침내 프랑스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카스티용 전투는 백년 전쟁의 마지막 주요 전투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잉글랜드는 프랑스 본토에서 칼레 지역만을 남기게 됩니다.

1455

[장미 전쟁 발발]

백년 전쟁의 막대한 비용과 대륙 영지 상실에 불만을 품은 잉글랜드 귀족들 사이에서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왕위 계승 다툼인 '장미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는 잉글랜드 왕실의 중앙집권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1456

[잔 다르크 명예 회복]

로마 교황청은 잔 다르크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재조사한 끝에, 그녀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하며 잔 다르크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회복시킵니다.

1920

[잔 다르크 성인 시성]

잔 다르크는 이단자이자 마녀라는 누명을 벗고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이는 그녀의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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