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그로피우스
건축가, 교육자, 모더니스트, 바우하우스 창립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2:23
- 독일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 바우하우스를 창립하여 건축과 예술 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근대 건축의 핵심 원칙을 정립. - 파구스 공장 설계로 세계 최초 유리 커튼월을 선보이며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음. - 단순함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인터내셔널 스타일을 주도하며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1883
[위대한 건축가의 탄생]
독일 베를린에서 부유한 건축가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건축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발터 아돌프 게오르크 그로피우스는 1883년 5월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발터 아돌프 그로피우스와 마논 아우구스테 파울리네 샤른베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7
[베렌스 문하에서 성장]
독일 전자회사 AEG의 수석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 입사하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적 언어를 익혔다.
훗날 거장이 되는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와 동료로 일했다.
1907년 실용주의 학파의 선구자 중 하나인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다. 이 당시 그의 직장 동료 중에는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등이 있었다.
1910
[동료와 사무소 개설]
동료 건축가 아돌프 메이어와 함께 베를린에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그로피우스의 뛰어난 설계 능력과 메이어의 탁월한 언변술이 시너지를 내며 다양한 공장 설계를 맡았다.
1910년 동료 건축가 아돌프 메이어와 함께 건축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로피우스는 메이어보다 설계에 능력이 있었고, 메이어는 탁월한 언변술을 통해 일거리를 받아왔다. 베렌스의 영향으로 공장 설계를 많이 진행했다.
1911
[세계 최초 커튼월 건축]
동료 메이어와 함께 독일 알펠트에 '파구스 공장'을 설계하며, 세계 최초로 유리 커튼월을 적용했다.
이는 근대 건축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능과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그의 건축 철학을 동시에 구현했다.
1911년 파트너 메이어와 함께 독일 알펠트-안-더-라이네에 '파구스 공장'을 설계하였다. 이 건물의 유리로 만든 커튼월은 기능을 반영한 형태라는 근대적인 원칙과 노동자 계층에 건강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 했던 그로피우스의 관심 모두를 실현한 것이었다. 당시 장식이 없는 모습과 커튼월의 사용, 프레임이 보여주는 열주들의 고전적인 느낌이 회자되었다.
[실용주의 건축의 기수]
독일공작연맹 회원으로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티피지룽(Typisierung)' 진영에서 활동하며 건축에 논리와 타당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11년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의 회원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독일공작연맹에는 두 가지 진영이 있었고, 그로피우스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며 건축 설계에 있어 그만의 논리와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티피지룽' 진영에 서서 활동했다. 피터 베렌스도 함께 활동했다.
1914
[건축적 가능성 제시]
베르크분트 전시회에서 '모델 공장 및 사무소'를 선보이며, 커튼월과 전면 유리로 덮인 나선형 계단을 통해 건축 입면과 계단의 기능적·디자인적 가능성을 혁신적으로 제시했다.
그로피우스와 파트너 메이어는 베르크분트에서 개최된 쾰른 전시회에서 '모델 공장 및 사무소'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파구스 공장'과 같이 커튼월을 사용하여 건축적 입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전면 유리로 덮인 나선형 계단을 설계하여 계단이 기능적 역할과 동시에 디자인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916
[첫 딸 마논의 탄생]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였던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여 딸 마논을 얻었다.
훗날 마논은 알반 베르크의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의 헌정 대상이 된다.
그로피우스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였던 알마 쉰들러와 결혼했다. 발터와 알마 사이의 딸인 마논은 1916년에 태어났다. 마논은 열여덟 살에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그녀를 기억하면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이 곡은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라는 부제가 있다.)
1918
[예술로 세상을 바꾸다]
'예술을 위한 노동자평의회' 활동에 참여하며, 표현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의 "건축과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지향점에 매료되었다.
1918년부터 '예술을 위한 노동자평의회(Arbeitsrat fur Kunst)'에서 활동하게 된다. 당시 글라스 파빌리온을 작업한 브루노 타우트와 함께 활동하며, 건축적 진영에 국한되지 않고 '건축과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표현주의자들의 지향점에 동조되었다.
1919
[바우하우스의 탄생]
독일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창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
"모든 예술의 결합이 건축이다"라는 철학 아래, 순수 예술과 공예를 통합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며 현대 디자인 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그로피우스는 1919년 교장으로서 독일의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창립하게 된다. '짓다'라는 뜻의 '바우(Bau)'와 '집'이라는 '하우스(Haus)'의 합성어인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궁극의 목표로 하고 창립되었다. 당시에는 건축과가 없었는데, 이는 '모든 예술의 결합이 건축이다'라는 발상에서 각 예술적 요소들을 통달하면 자연적으로 건축적 능력이 오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를 창립하며 교수들을 초빙하고 선언문을 작성했는데, 당시 그의 표현주의적 활동에 따라 교수진과 선언문 모두 표현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1920
그로피우스와 알마는 1920년에 이혼했다. 당시 알마는 그녀가 나중에 결혼하는 프란츠 베르펠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23
[이세 프랭크와 재혼]
이세 프랭크와 결혼하여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
두 사람은 베아테 그로피우스(아티)를 입양하며 가정을 꾸렸다.
1923년에 그로피우스는 이세 프랭크와 결혼했고, 그들은 그로피우스가 죽는 날까지 함께 살았다. 그들 부부는 베아테 그로피우스를 입양했으며, 그녀는 이름이 '아티'로 알려지기도 했다.
1925
[바우하우스, 데사우 시대]
바우하우스가 정치적 압력으로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그로피우스는 상징적인 새 건물을 설계했다.
커튼월과 러시아 구성주의 폰트를 활용하여 기능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현대 건축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 건물은 1926년 완공되었다.
그로피우스는 1925년 독일의 데사우에 바우하우스 빌딩을 설계했다. 바이마르에 있던 바우하우스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데사우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바우하우스 빌딩에는 커튼월이 사용되었고, 러시아 구성주의자인 엘 리시츠키의 폰트를 따왔다. 또한 평면적으로는 그로피우스의 이전 작품인 '파구스 공장'을 늘려놓은 느낌을 주며, 건축 평면이 전체를 나누는 방식이 아닌 중심에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기둥과 벽이 분리되어 자유로운 입면 구성이 가능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59
[건축계 최고 영예 수상]
미국건축가협회(AIA)로부터 건축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메달을 수상하며 그의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1959년 AIA 금메달을 수상했다.
1969
1969년 7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