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 교육자,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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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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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교육자,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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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문학의 거장 토속적 서정시의 대가. -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며 한국 현대시의 한 축을 세움. - 섬세한 서정성과 후기 기독교적 신앙을 담은 작품 세계로 깊은 울림을 선사. - 후학 양성에 힘쓴 교육자이자 문학 행정가로서 한국 문단에 기여. - 단순한 서정성을 넘어선 삶의 성찰을 보여준 한국 현대시의 상징적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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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시인 박목월, 세상에 오다]

본명 박영종으로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경주로 이주해 고향의 정취를 흡수하며 성장했다.

후에 그가 즐겨 읽던 변영로의 호에서 '목(木)'을, 김소월의 이름에서 '월(月)'을 따 '박목월'이라는 필명으로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기게 된다.

1933

[어린 문학가의 첫 발걸음]

18세의 나이에 잡지 《어린이》에 동시 「통딱딱 통짝짝」이 당선되고, 같은 해 《신가정》에 시 「제비맞이」가 실리며 동시를 쓰는 시인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딛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였던 그의 행보가 시작된 해이다.

1940

[정식 문단 데뷔]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이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엽이라는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정적인 시 세계는 한국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1945

[교육자의 첫 시작]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시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

1946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 청록집]

광복 직후,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청록집》을 발간했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순수한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며 새로운 문학의 길을 제시, 한국 시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시집을 넘어 한국 문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48

[문학 행정가로 활약]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과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며 문학 행정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그는 무려 10년간 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문학계 발전에 기여하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1950

[전쟁 속에서 문학을 지키다]

이화여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한국문학가협회 별동대를 조직하고 공군종군문인단의 일원으로 군복무에 임했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조국의 현실을 담아냈다.

1953

[전후 문학 교육에 헌신]

전쟁이 끝난 후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중앙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다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전란의 상처를 치유하고 문학적 재능을 꽃피울 새로운 세대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1954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이 가진 깊이와 아름다움이 국내를 넘어 아시아 문학계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이었다.

1959

[한양대 교수로 재직 시작]

한양대학교 조교수로 부임하여 은퇴할 때까지 줄곧 한양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 문학을 가르쳤다.

시인, 문학가로서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스승으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 문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65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정]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며 한국 예술계 최고 권위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문학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1968

[한국 시단의 리더로 우뚝 서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한국 시단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았다.

또한 대한민국 문예상을 수상하고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연작시집 《어머니》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문학적 정점을 찍었다.

1972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수훈하며 국가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평생에 걸친 문학적 업적과 문화예술계에 대한 기여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1973

[시 전문지 발행, 자선집 발간]

시 전문지 『심상』의 발행인으로 취임하여 새로운 시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며 한국 시단의 다양성을 넓혔다.

같은 해 《박목월자선집(전 10권)》을 발간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총망라했다.

1976

[한양대 문리대학 학장 취임]

한양대학교 문리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오랜 시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행정가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시인이자 교육자로서 그의 마지막 봉사였다.

1977

[한양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

평생을 바쳐 봉직한 한양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자로서 그의 헌신과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값진 영광이었다.

1978

[한국 문학의 별이 지다]

출석하던 원효로 효동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은 후, 지병인 고혈압으로 새벽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63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한국 시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 조용히 생을 마감한 날이었다.

그의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은 생전의 깊은 기독교적 신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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