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매클린톡

세포유전학자, 유전학자, 생물학자, 노벨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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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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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유전학자, 유전학자, 생물학자, 노벨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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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보적인 세포유전학자로 점핑 유전자라 불리는 전이성 유전인자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당시 학계의 편견 속에서도 옥수수 연구에 몰두하며 생명 현상의 근원적 조절 원리를 탐구했고 마침내 198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으로 그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녀의 끈기와 통찰은 유전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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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미국의 세포유전학자 탄생]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바버라 매클린톡이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이고 남다른 통찰력을 보이며 미래 유전학의 선구자로 성장할 조짐을 보였습니다.

1908

[브루클린에서의 학창 시절]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높은 학구열로 대학 진학 의사를 강하게 밝혔습니다.

1919

[코넬 대학교 농과대학 입학]

가정 형편을 고려해 등록금 면제가 가능한 코넬 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낮은 여성 대학 진학률 속에서도 활발한 학생 활동과 학구열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27

[코넬 대학교 박사 학위 취득]

코넬 대학교 대학원 식물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에도 코넬에 남아 특별한 일자리 없이 자신의 연구를 열정적으로 이어갔습니다.

1931

[세계 최초! 환상염색체 발견]

유전학자 루이스 스태들러와 옥수수 유전자 돌연변이 연구 중 방사선에 손상된 염색체 끝부분의 융합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환상염색체'를 세계 최초로 식별했습니다.

또한 옥수수 6번 염색체에 인 형성체가 존재함을 발견했습니다.

크레이튼과 함께 옥수수 염색체 내 연관 유전자 표식과 교차 현상의 명확한 증거를 찾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염색체 끝부분에 안정성을 담당하는 구조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1933

[독일 연구 방문]

6개월간 쿠르트 슈테른과 함께 연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슈테른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뒤여서 리차드 베네딕트 골트슈미트와 협력했으며, 유럽의 살벌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 이른 귀국을 결정했습니다.

1936

[미주리 대학교 조교수 부임]

스태들러의 도움으로 미주리 대학교 조교수 자리를 얻어 옥수수 염색체의 동그란 염색체 생성 원리와 조각난 염색체 연결 방식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옥수수 알갱이의 알록달록한 색깔 문양 원인이 염색체 분절-접속 현상 때문임을 밝혀냈습니다.

최초의 정규직이었지만, 타인의 논리를 지적하거나 독특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성격 때문에 다른 연구원들과 융합되기 어려워 고립감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1939

[미국 유전학회 부회장]

미국 유전학회 부회장직을 역임하며 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41

[고립감 속 미주리 대학 사직]

미주리 대학교에서 겪던 고립과 고통 속에서 결국 5년 만에 조교수직을 사직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연구 환경을 찾아야 했습니다.

1942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정착]

밀라슬라프 데메렉의 도움으로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40년 이상 머무르며 자신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찾았고, 위대한 발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44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 선출]

미국 최고의 과학자 단체인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며 학계에서 그 연구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1950

[세계 최초! '점핑 유전자' 발견]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옥수수 제9염색체 연구를 통해 한 세대 안에서도 유전자가 계속 변이하는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이를 염색체의 '자리바꿈', 즉 '전이성 유전인자' 현상으로 규명하고, 이를 제어하는 'Ds-Ac 체계'를 세계 최초로 명명하며 유전학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는 당시 학계의 통념을 뒤엎는 혁명적인 발견이었습니다.

매클린톡은 Ds(분해자)와 Ac(활성자)라는 두 가지 인자가 유전자의 위치를 바꿀 수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같은 모세포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구성을 가진 딸 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원인을 설명하며, 유전자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다는 놀라운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과학계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훗날 박테리아의 'lac 오페론' 발견을 통해 그녀의 통찰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1957

[남아메리카 옥수수 진화 연구]

록펠러재단의 후원으로 옥수수 품종이 풍부한 남아메리카에서 옥수수의 진화 과정과 트랜스포존의 역할을 탐구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유전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0

[미국 국가 과학상 수상]

미국 최고의 과학 명예상 중 하나인 미국 국가 과학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뛰어난 연구 업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77

[로젠스틸상 수상]

생명과학 분야의 주요 업적을 기리는 로젠스틸상을 수상하며 학계에서의 명성을 공고히 했습니다.

1981

[유전학 최고 명예 수상]

미국 유전학회가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토머스 헌트 모건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 생의학 분야 최고 권위의 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도 함께 받으며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82

[루이자 그로스 호르위츠상 수상]

컬럼비아 대학교가 생물학 또는 생화학 분야의 뛰어난 연구에 수여하는 루이자 그로스 호르위츠상을 수상했습니다.

1983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옥수수의 전이성 유전인자(점핑 유전자)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 최초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단독 수상했습니다.

이는 과학계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그녀의 혁명적인 발견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본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매클린톡은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모든 기쁨을 누렸고,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을 드러냈습니다.

1992

[위대한 과학자의 마지막]

미국 뉴욕주 헌팅턴에서 9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녀는 고정관념을 깬 선구적인 연구로 유전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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