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
화가, 예술 이론가, 추상미술 선구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2:12:28
바실리 칸딘스키는 20세기 초 예술계에 혁명적인 추상미술을 도입하며 최초의 현대 추상작품을 그린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법학자에서 화가로 전향 음악을 그림으로 옮기는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바우하우스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이론서 점·선·면을 저술하며 단순한 그림을 넘어 정신적 깊이를 담은 예술의 길을 제시한 선구자입니다.
1866
[추상미술 거장의 탄생]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훗날 세계 최초로 현대 추상작품을 그린 작가로 평가받게 될 바실리 칸딘스키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피카소, 마티스와 비견되며 20세기 미술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인물로 성장합니다.
1892
1896
[늦깎이 예술혼 불태우다]
법학과 경제학 교수로 인정받던 30세 칸딘스키는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그림 공부를 시작하며 예술의 길에 발을 들입니다.
같은 해 뮌헨에 정착하여 사립학교와 미술 아카데미에서 데생, 스케치, 해부학 등 미술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910
['로엔그린'의 마법, 추상화를 열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듣던 칸딘스키는 전율을 느낍니다.
음악에서 색채와 선을 감지하는 '공감각'을 경험한 것이죠! 이 신비로운 체험은 그의 그림을 대상을 모방하는 구상미술에서 벗어나, 음악처럼 자유롭고 감각적인 추상화로 이끌었습니다.
회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칸딘스키는 '바그너의 음악에서 바이올린, 베이스, 관악기의 울림, 나의 마음속에서 나의 모든 빛깔을 보았다. 야성적이며 미친 것 같은 선들이 내 앞에 그려졌다. 회화는 음악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그의 작풍에 있어서 1910년~1920년 기간에 색채와 형태의 격렬한 다이너미즘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11
1916
[청기사파 화가와의 이별]
청기사파 창립회원이자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가브리엘레 뮌터와 10여 년간 이어진 칸딘스키의 동거가 1916년에 막을 내립니다.
1917
[니나 안드레옙스카야와 재혼]
칸딘스키는 1917년에 니나 니콜라예브나 안드레옙스카야와 재혼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남은 생애를 함께하며 예술적 여정을 지켜봅니다.
1918
[혁명의 러시아로 돌아오다]
러시아 혁명이 끝난 후, 칸딘스키는 조국 모스크바로 돌아와 모스크바 미술 아카데미 교수직을 맡습니다.
하지만 당시 모스크바의 예술 이론과 방향성에 동의하지 못하며 새로운 예술적 기회를 모색하게 됩니다.
1921
[독일로 돌아와 바우하우스와 인연]
모스크바의 예술 이론에 동의하지 못한 칸딘스키는 교수직을 버리고 1921년 독일로 돌아옵니다.
이곳에서 그는 예술과 건축의 혁신적인 학교인 바우하우스와 인연을 맺게 되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922
[바우하우스의 핵심 교수가 되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 칸딘스키는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벽화 공방을 담당하며 부교장까지 역임했고, 청년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며 바우하우스의 정신적 지주로 깊은 신망을 얻었습니다.
1926
[예술 이론서 《점·선·면》 출판]
바우하우스 강의록을 기반으로 칸딘스키의 두 번째 이론서인 《점·선·면》이 1926년에 출판됩니다.
이 책은 회화의 기본 조형 요소들을 직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방식으로 설명하여, 그의 독창적인 예술 철학을 담아내며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1
[동양의 신비에 매료되다]
1931년, 칸딘스키는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여행하며 동양의 풍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이국적인 인상들은 그의 후기 작품에 다채로운 형태와 색채로 표현되며,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음악적 조화를 이루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3
[바우하우스 폐쇄와 프랑스 이주]
나치의 정치적 압력으로 예술과 건축의 요람이었던 바우하우스가 1933년 폐쇄됩니다.
이후 칸딘스키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으며, 이곳에서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고 만년의 걸작들을 창조했습니다.
1939
[프랑스 시민이 되다]
프랑스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가던 칸딘스키는 1939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며 러시아, 무국적자를 거쳐 프랑스인이 되었습니다.
1944
[추상미술의 대가, 영면하다]
1944년 12월 13일,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가 프랑스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77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는 색채와 형태를 통해 인간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20세기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