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회화, 낭만주의, 프랑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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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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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낭만주의, 프랑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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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7월 혁명의 정신을 영원히 새긴 낭만주의 대표작이다. - 혁명군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통해 민중의 강인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 들라크루아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세계 최초 에어버스 벨루가로 운송되는 등 국제적인 순회 전시를 통해 대중과 만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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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자유의 여신 탄생]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7월 혁명의 열기를 담아 이 작품을 그렸다.

조국을 위해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혁명의 정신을 전하려는 들라크루아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시 아카데믹 미술의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붓질로 혁명의 생동감을 표현했다.

들라크루아는 1830년 10월 21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쁜 기분을 없애보려 하고 있어. 그림 소재는 현대적인 소재, 바리케이드에 손대어 보려고 한단다.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면 최소한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겠지"라며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밝혔다.

1831

[대중에게 첫 공개]

들라크루아의 신작은 파리 살롱에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고, 프랑스 정부가 3,000프랑에 그림을 사들였다.

7월 혁명으로 즉위한 루이 필리프 1세의 혁명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왕좌실에 걸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몇 개월간 뤽상부르궁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그림은 뤽상부르궁의 왕좌실에 걸리지는 못한 채, 수 개월 동안 뤽상부르궁의 박물관 갤러리에 걸려 있었다.

1832

[그림의 정치적 수난]

1832년 6월 봉기 이후, 그림 속에 담긴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가 또 다른 혁명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로 정부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원작자 들라크루아에게 반환되어 그의 이모에게 맡겨지는 등 대중의 눈을 피해 보관되었다.

당시 알베르 부아메는 "1848년 8월 샹플뢰리는 '혁명적인 느낌이 과하다는 이유로 다락방에 숨겨졌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기록했다. 루이 필리프 국왕의 내무부가 좌파의 상징으로서 구입하였지만서도, 1832년 6월 라마르크의 장례식에서 봉기가 벌어진 이래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공개적으로 전시되지 못했던 것이다.

1848

[짧은 부활]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제2공화국이 수립된 것을 기념하여 잠깐 동안 다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는 그림의 메시지가 다시금 시대정신과 맞닿았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1855

[제2제국의 재조명]

프랑스 제2제국 시기인 1855년 파리 살롱에서 다시 한번 전시되며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림은 격동의 프랑스 역사 속에서 여러 번의 부침을 겪으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1874

[루브르 박물관 영구 소장]

프랑스 제3공화국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어,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걸작으로서 수많은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정치적 논란과 수난을 겪었던 그림이 영구적인 안식처를 찾은 순간이었다.

1974

[미국 독립 기념 특별전]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기획한 특별전 '프랑스 회화 1774-1830: 혁명의 시대'에 대여 전시되어 이듬해 1975년까지 미국 관람객들을 만났다.

들라크루아의 작품과 함께 희귀 회화작품 148점이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대규모 전시였다.

전시는 총 3차례에 걸친 순회전시로 기획되었으며 1974년 11월 16일~1975년 2월 3일 파리의 그랑팔레, 1975년 3월 5일~5월 4일 미국 디트로이트, 1975년 6월 12일~9월 7일 미국 뉴욕에서 전시가 열렸다.

1999

[세계 최초 전용기 운송]

일본에서 '프랑스의 해'를 맞이하여 도쿄 국립 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다시 한번 대여 전시가 성사되었다.

이 그림은 그 거대한 크기로 인해 세계 최초로 보잉 747 수용 공간을 넘어 전용기인 에어버스 벨루가를 동원, 특수 가압 용기에 포장되어 일본으로 운송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바레인과 인도 캘커타를 거쳐 일본 도쿄로 건너왔으며, 운송 과정에서 보호장치와 진동방지 처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한 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

2012

[새로운 보금자리, 루브르랑스]

파드칼레주 랑스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인 루브르랑스로 이전되어, 더욱 많은 대중이 이 걸작을 감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는 루브르 박물관의 지역 분산화 정책의 일환으로,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2013

[훼손 사건과 빠른 복원]

루브르랑스에서 한 28세 여성 방문객이 그림에 'AE911'이라는 글귀를 쓰는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즉시 체포되었으며, 다음 날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들은 원화 손상 없이 글귀를 제거하여 당일 아침 전시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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