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회화, 문화유산, 산수화, 기록유산

num_of_likes 69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30:27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회화, 문화유산, 산수화, 기록유산
report
Edit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의 독보적인 예술혼이 담긴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안평대군의 꿈에서 시작되어 3일 만에 완성된 시·서·화 삼절정의 극치를 이룬 명품입니다. 문학사 서예사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한국 산수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 일본 덴리 대학 소장 중이며 반출 경로에 대한 논란과 함께 귀환의 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418

[성녕대군 묘 옆 대자암 건립]

세종의 동생 성녕대군의 묘지 옆에 태종의 명으로 대자암이 세워졌다.

이후 안평대군의 양아버지인 성녕대군과 관련된 중요한 사찰이 된다.

1447

[안견, 몽유도원도를 빚다]

안평대군이 꿈을 꾼 지 불과 3일 만에 당대 최고 화가 안견이 그 꿈을 생생히 담아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꿈속 도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과 중국 이곽파 화풍을 활용한 안견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림은 왼쪽 하단의 현실 세계에서 오른쪽 상단의 꿈속 세계로 이어지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복사꽃 만발한 기암절벽과 띠풀로 엮은 초막, 폭포수 아래 빈 배가 어우러진 낙원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 양쪽으로는 안평대군의 친필 제서와 시, 그리고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 당대 문인 20여 명의 친필 찬문이 함께 있어 문학, 서예,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안평대군, 무릉도원 꿈을 꾸다]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을 유람하고, 그 내용을 화가 안견에게 설명하여 몽유도원도의 영감이 되었다.

안평대군은 꿈에서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를 보았고, 오솔길 끝에 평화로운 마을과 초막, 그리고 물결에 흔들리는 빈 배를 보며 신선이 사는 곳 같다고 묘사했다.

[안평대군, 무계정사 터를 찾다]

안평대군이 꿈속 도원과 비슷한 자리라고 생각한 곳을 찾아 지리와 복서에 뛰어났던 이현로에게 터를 보게 했다.

이현로는 이곳이 '큰 용이 일어날 땅(旁龍所興)'이라며 별당 건립을 추천했다.

1450

[대자암 중건과 몽유도원도 감상회]

문종 즉위년, 대자암이 소헌왕후의 기신재를 위해 좌참찬 정분과 병조판서 민신에 의해 중건되었다.

같은 해,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지 3년 후 안평대군은 무계정사를 짓고 21명의 문사들을 초대하여 몽유도원도를 감상하며 제서, 발문, 시와 함께 찬문을 남겼다.

이 찬문들은 당대 최고 지성들의 친필로,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안평대군의 발문에는 꿈의 내용과 함께 그림이 완성된 후 비해당 매죽헌에서 글을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무계정사는 태조 5년 숭례문 개축 후 남은 자재로 지어졌으며, 안평대군은 이곳에서 만여 권의 책을 갖추고 선비들과 시화를 즐겼다.

1453

[한명회, 이명민에게 수양대군 청탁]

단종 1년, 수양대군 측 한명회가 선공 부정 이명민에게 수양대군을 위한 건축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명민은 안평대군을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수양대군에게는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계유정난 한 달 전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간의 긴장 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계유정난 발발, 안평대군 실각]

친형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며, 안평대군은 정쟁의 패배자가 되어 실권을 박탈당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실록에는 그가 붕당을 조성하여 모반을 꾀했다고 기록되었다.

안평대군과 가까이 지내던 황보인, 김종서 등 핵심 대신들이 살해되었으며, 안평대군 본인 또한 양아버지 성녕대군 집에 숨어있다가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안평대군, 교동도에서 생을 마감하다]

강화도로 유배되었던 안평대군은 며칠 후 유배지 교동도에서 사사되었다.

그의 아들과 가족들도 유배되거나 노비로 분배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592

[몽유도원도, 일본으로 넘어가다 (추정)]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고양현 대자암에 보관 중이던 안평대군의 유품인 몽유도원도와 장서 등을 약탈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그러나 명확한 기록은 없어 반출 경로는 여전히 미궁이다.

계유정난 이후 안평대군의 별서였던 무계정사가 철거되면서 몽유도원도를 포함한 많은 장서가 대자암으로 황급히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임진왜란 중 대자암이 소실되면서 그림이 약탈당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학계에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작품 가치 등을 미루어 사실상 약탈당한 문화재로 추정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893

[몽유도원도 일본 소장 확인 (추정)]

몽유도원도를 소장했던 일본 소장가 도진구징의 생애와 활동을 미루어 볼 때, 몽유도원도가 1893년 이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정된다.

1939

[몽유도원도, 일본 중요문화재 지정]

몽유도원도가 일본에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는 작품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955

[덴리 대학, 몽유도원도를 품다]

몽유도원도가 1955년경부터 일본 덴리 대학에 소장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상하 두 개의 두루마리로 표구되어 있다.

1996

[호암미술관, 몽유도원도를 선보이다]

몽유도원도가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전기 국보전'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전시되었다.

이는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대중에게 선보인 자리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09

[국립중앙박물관, 몽유도원도 특별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여민해락'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하며 몽유도원도가 13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에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몽유도원도 국내 일반 공개 마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에서 몽유도원도는 본 전시와는 별도로 10월 7일까지만 일반에 공개되어, 짧은 전시 기간에 많은 관람객의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박물관 100주년 특별전 폐막]

몽유도원도가 전시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