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헨델)

오라토리오, 클래식 음악, 합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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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5: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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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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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클래식 음악, 합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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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델이 1741년에 작곡한 전설적인 영어 오라토리오. - 예수의 탄생 수난 부활을 담은 3부 53곡의 웅장한 구성. - 특히 할렐루야 합창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연말연시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클래식 명곡. - 작곡가 헨델의 깊은 신앙심과 비범한 음악성이 응집된 불후의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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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

[헨델의 탄생]

《메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할레에서 태어났다.

헨델은 훗날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1700

[찰스 제넨스 탄생]

《메시아》의 대본을 작성한 찰스 제넨스가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지주 가문 출신으로 문학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제넨스는 독실한 성공회 신자이자 성경의 권위를 신봉했으며, 후에 헨델과 함께 위대한 오라토리오를 탄생시키는 주역이 된다.

1707

[헨델의 오라토리오 첫 경험]

로마에서 오페라 공연이 일시적으로 금지되자, 헨델은 두 편의 이탈리아어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며 이 장르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이 경험은 훗날 《메시아》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1711

[이탈리아 오페라 런던 상륙]

헨델이 오페라 《리날도》를 통해 이탈리아 오페라를 런던에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 런던 극장에서 40편 이상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작곡하며 명성을 쌓았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헨델의 뛰어난 재능은 그를 영국 음악계의 거장으로 만들었다.

1712

[헨델의 런던 정착]

헨델이 영국 런던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예술적 전성기를 맞이한다.

런던에서 헨델은 조지 2세 왕의 궁정에서 연금을 받고, 왕실 예배당의 작곡가직을 맡는 등 여러 영예를 누렸다.

1718

[첫 영어 오라토리오 《에스더》]

헨델이 개인 후원을 위해 첫 번째 영어 오라토리오 《에스더》를 선보이며 영어 오라토리오 장르에 발을 들였다.

이 작품은 헨델이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영어 오라토리오로 음악적 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

1727

[헨델, 영국 시민권 취득]

헨델이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영국 음악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 그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728

[이탈리아 오페라 인기 하락]

존 게이의 풍자적인 영어 발라드 오페라 《거지 오페라》가 크게 인기를 끌며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취향 변화는 헨델에게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요구했다.

1730

[헨델의 장르 전환 시작]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 하락에 직면한 헨델이 대중의 취향 변화에 맞춰 영어 오라토리오 작곡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 중요한 전환은 훗날 《메시아》와 같은 걸작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1732

[《에스더》 성공적 재연]

대폭 수정된 헨델의 영어 오라토리오 《에스더》가 왕립극장에서 왕가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은 헨델이 《데보라》와 《아탈리아》라는 두 편의 오라토리오를 추가로 작곡하는 계기가 되었다.

1733

[옥스퍼드 오라토리오 공연]

헨델의 세 편의 오라토리오 《에스더》, 《데보라》, 《아탈리아》가 옥스퍼드의 셸도니언 극장에서 공연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학생들이 5실링짜리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가구를 팔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1735

[《사울》 대본 전달]

찰스 제넨스가 헨델에게 새로운 오라토리오 《사울》의 대본을 전달했다.

이는 두 사람의 긴밀한 협력의 시작이었다.

제넨스는 음악과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부유한 지주였으며, 헨델의 음악적 후원자였다.

1738

[《사울》 작곡]

헨델이 1738–39년 시즌 초연을 목표로 오라토리오 《사울》을 작곡했다.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주력하고 있었지만, 제넨스의 대본에 깊은 영감을 받아 오라토리오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1739

[《사울》 성공적 초연]

헨델의 오라토리오 《사울》이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어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 성공은 헨델이 영어 오라토리오 작곡에 대한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1741

[이탈리아 오페라 시대의 끝]

헨델의 마지막 이탈리아 오페라 《데이다미아》가 세 차례 공연된 후,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을 완전히 중단하며 새로운 음악적 전환을 예고했다.

이는 헨델이 대중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춰 영어 오라토리오에 전념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메시아》 대본 전달]

찰스 제넨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헨델에게 새로운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대본을 보냈다고 언급하며, 이 작품이 헨델의 모든 이전 작품을 능가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넨스는 이 주제가 다른 어떤 주제보다 위대하기 때문에, 헨델이 모든 천재성과 기술을 쏟아부어 대작을 완성하기를 염원했다.

[《메시아》 작곡 시작]

헨델이 불후의 명작 《메시아》 작곡에 돌입했다.

그는 이 작품을 놀라운 속도로 완성해나갔다.

대본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헨델은 영감에 사로잡혀 거침없이 악보를 써내려갔다.

[《메시아》 최종 완성]

헨델이 단 24일이라는 놀라운 세계 최고 속도로 《메시아》 전곡의 작곡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빠른 완성 속도는 종종 신적 영감의 결과로 여겨졌으며, 특히 '할렐루야' 합창 작곡 시 '하늘의 모든 영광이 펼쳐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헨델은 악보 끝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새겨 넣었다.

1742

[악장 지속적 수정]

헨델은 솔로이스트들의 요구에 맞춰 《메시아》의 개별 악장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거나 다시 작곡했다.

이러한 수정 작업은 1754년까지 이어졌으며, 오늘날 여러 버전의 《메시아》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메시아》 세계 초연]

헨델의 기념비적인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세계 최초로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대중의 반응은 다소 미미했으나,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자주 연주되는 합창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헨델은 더블린 공연을 위해 자필 악보에 많은 수정을 가했다.

1743

[《메시아》 런던 공연]

《메시아》가 이듬해 영국 런던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을 계기로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더블린 초연 이후 런던에서 열린 공연은 《메시아》가 영국 전역으로 명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767

[《메시아》 첫 출판]

헨델 사후 8년이 지난 뒤에야 《메시아》의 첫 출판 악보가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초기 원고를 기반으로 하여 헨델이 생전에 가했던 후기 수정 사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완벽한 버전은 아니었지만, 이 출판은 《메시아》가 널리 보급되는 데 기여했다.

1928

[첫 완벽한 녹음 시도]

《메시아》가 78rpm 디스크로 거의 완전한 버전으로 출시되며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이후 수차례 녹음되면서 《메시아》는 세계 각지의 청중들에게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명곡이 되었다.

1980

[원작에 충실한 공연의 부활]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걸쳐 헨델의 원작 의도에 충실한 《메시아》 공연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웅장함을 추구하는 대편성 공연도 활발히 이루어지며, 다양한 해석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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