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건축물, 유적, 군사 시설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9:21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북방 유목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방어 성곽입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 시기 기존 성곽을 연결하며 시작되어 명나라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확장 및 보수되었으며 총 길이 5 000~6 000k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건축물입니다. 현재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적이자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인류 문명의 위대한 상징입니다. 오랜 역사와 함께 현재까지도 그 보존과 역사적 해석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BC 5C
[춘추전국시대, 장성 축조 본격화]
춘추 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장성 축조는 전국 시대에 초, 위, 연, 조, 진 등 여러 국가가 북방 이민족 방어를 위해 국경에 장성을 쌓으며 본격화되었다.
춘추 시대 제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장성 축조는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었다. 특히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초, 위, 연, 조, 진 등 여러 국가들이 국경 방어를 위해 장성을 건설했다. 이 시기에 한나라, 제나라 등은 초나라를 막기 위해 중국 본토 안에 장성을 건설하기도 했다.
BC 3C
[진시황, 중국 통일 후 장성 재편 시작]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기존의 중국 내 장성들을 파괴하고 흉노 방어를 위해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곽을 보수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원전 221년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그는 중국 안에 있던 장성들을 파괴했다. 대신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곽들을 보수하고 서로 연결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만리장성의 중요한 시작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몽염 장군 지휘, 진나라 만리장성 완성]
진시황의 명으로 몽염 장군이 지휘하여 동쪽 요동부터 서쪽 임조에 이르는 진나라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 이는 현재 만리장성보다 북쪽에 위치했고 주로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진시황의 명에 따라 몽염 장군이 장성 축조를 지휘하여 기원전 214년경 완성되었다. 동쪽으로는 요동, 서쪽으로는 임조에 이르렀다. 최근 발견된 유적으로 볼 때 당시의 장성은 현재보다 더 북쪽에 위치했으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토성 형태로 현재의 만리장성과는 높이나 구조가 달랐다. 긴 성벽 외에도 국경 초소, 보루, 요새 등으로 이루어진 구간이 많았고, 성벽이 끊긴 곳도 있었다.
BC 1C
한나라 무제는 흉노를 북방으로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장성을 서쪽 끝인 옥문관까지 확장시켰다. 연혁에는 우웨이와 주취안에 장성을 연장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450
[남북조 시대, 장성 남하 및 대규모 축조]
남북조 시대, 화북을 통일한 북위는 유연 방어를 위해 기존 장성보다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아 현재 만리장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북주와 북제도 성벽을 대규모로 축조했다.
남북조 시대에 화북을 통일한 북위는 북방의 유연족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기존의 장성 위치보다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이 시기에 축조된 장성이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북주와 북제도 성벽을 대규모로 축조하여 방어력을 강화했다. 후한 시기 이후 장성의 개축이 없다가 이 시기에 다시 활발해졌다.
600
수나라는 통일 이후에 기존의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수 양제는 특히 오르도스 지방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아 북방 방어 체계를 강화했다.
700
[당나라 시대 장성 기능 약화]
당나라는 북방 이민족을 직접 경영하며 만리장성의 군사적 필요성이 줄어들어 유명무실해졌고, 이후 장성은 무력화되고 방치되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북방을 직접 경영하고 이민족을 지배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만리장성의 방어 기능이 크게 약화되어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거란, 여진, 몽골 등 이민족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장성 너머에 영토를 가지게 되면서 만리장성은 무력화되고 방치되었다.
1150
[금나라의 새로운 장성 수축]
이민족 왕조인 금나라는 타타르족 등 다른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싱안링 산맥에 대규모로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당나라 이후 만리장성이 방치되었지만, 오히려 이민족 왕조인 거란의 요나라나 여진의 금나라는 자신들 또한 다른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싱안링산맥 등지에 새로운 장성을 수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금나라는 타타르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싱안링 산맥에 대규모로 장성을 쌓았다.
1410
[명 영락제의 만리장성 강화 및 산해관 설치]
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 영락제는 원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을 기초로 현재 형태의 만리장성을 강화하고 신축하기 시작했으며, 동쪽 끝에 산해관을 설치했다.
원나라를 북방으로 몰아내고 명이 건국된 후, 영락제는 원의 재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장성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신축하기 시작했다. 주로 북경 인근의 동단을 중심으로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을 기초로 삼았으며, 오르도스 남쪽의 수나라 장성도 활용했다. 이 시기에 동쪽 끝에 산해관이 설치되었다.
1450
명나라 정통제 시기에 북경 정면의 방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해당 구간에 장성을 이중으로 축조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1540
[명 가정제의 만리장성 대대적 개축]
명나라 가정제 연간에 몽골의 침입이 가속화되자, 장성을 더욱 견고하게 대대적으로 개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명나라 가정제 연간에는 몽골의 침입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장성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장성을 더욱 견고하고 대규모로 개축하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1590
[현재 형태의 만리장성 최종 완성]
16세기 말, 명나라 시대에 걸쳐 서쪽 장성들까지 지속적으로 개축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의 견고한 모습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명나라 시대에 영락제부터 시작된 장성 축조와 강화 작업이 가정제 시기를 거쳐 16세기 말에 이르러 서쪽의 장성들까지 지속적으로 개축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벽돌로 쌓인 견고한 만리장성의 모든 형태가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1987
만리장성은 198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만리장성이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임을 공인받은 사건이다.
2004
[달에서 만리장성 관측 불가 공식 발표]
과거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로 알려졌던 만리장성에 대해, 중국과학원이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관측할 수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랫동안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며 신비감을 더했던 만리장성에 대해, 2004년 12월 8일 중국과학원이 공식적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만리장성을 관측할 수 없다고 밝히며 대중의 오랜 통념을 바로잡았다.
2006
[만리장성 훼손 심각성 보고]
중국장성학회 조사에 따르면, 만리장성 전체의 20% 이하만이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고, 50% 이상은 이미 그 모습이 사라졌다고 보고되어 보존의 시급성을 알렸다.
2006년 4월에 열린 중국의 학술단체 중국장성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리장성이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의 20% 이하이며, 일부 현재 존재하는 지역도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50% 이상은 이미 그 모습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어 훼손의 심각성을 알렸다. 지역 주민의 벽돌 가져가기, 댐 공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09
[중국 정부의 만리장성 발표로 역사 왜곡 논란 발생]
중국 정부가 진장성과 명장성의 전체 길이와 위치를 발표했으나, 한국에서는 단둥시 호산산성이 고구려 박작성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2009년, 중국 정부는 진장성과 명장성으로 대표되는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와 위치를 확정하여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발표한 단둥시의 ‘호산산성’이 실제로는 고구려의 박작성이라는 사실에 언론이 주목하며 역사 왜곡 논란이 촉발되었다. 이는 만리장성 동단 문제로 동북아시아 역사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2012
[중국의 역대 장성 조사 발표, 길이 연장 오해로 논란]
중국 정부가 역대 왕조들의 장성 유적을 모두 조사해 발표했으나, 한국 언론이 이를 기존 만리장성 길이 연장으로 왜곡 보도하여 대중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에 중국은 만리장성으로 대표되는 진나라 및 한나라, 명나라의 장성 유적뿐만 아니라 그 외 다른 역대 왕조에서 건설된 다양한 장성들을 모두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기존의 만리장성 길이를 인위적으로 연장한 것이라고 왜곡하여 보도했고, 이로 인해 대중의 논란이 발생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정확한 사실 확인 없는 언론 보도를 지적하며 전문가 토론회를 통해 오해를 해명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