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전쟁
전쟁, 로마 공화국, 마케도니아 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9:19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 공화국이 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일련의 대규모 분쟁입니다. 이 전쟁을 통해 로마는 마케도니아 제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그리스 전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립하며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끊임없는 위기 관리 끝에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완전히 병합하며 동방 지배를 확고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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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마케도니아 동맹]
셀레우코스 제국이 마케도니아 제국 부활 야망을 보이며 마케도니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어 소아시아 정세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로마의 개입을 촉발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집트가 셀레우코스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시민 총동원령으로 대응하면서 정세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이는 그리스 세계의 100년간의 안정된 정치 질서를 위협하는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 발발]
포에니 전쟁 중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과 동맹을 맺자, 로마는 한니발 세력 강화 우려로 아드리아해를 넘어 군대를 파견하며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의 목표는 정복이 아닌 한니발과의 전쟁 중 마케도니아를 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원전 211년부터 아이톨리아 연합과 페르가몬 동맹군의 지원을 받은 로마군은 마케도니아군과 소규모 전투를 벌였으며, 아프리카 해안선을 따라 일부 영토를 점령하며 해적들과도 싸웠습니다.
[포이니케 조약 체결]
소규모 충돌만 있었던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포이니케 조약'으로 흐지부지하게 끝났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로마는 마케도니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충돌은 이후의 로마-마케도니아 전쟁(2차~4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별개의 분쟁으로 간주됩니다.
[이집트 내전 및 분할 동맹]
프톨레마이오스 4세 사망 후 이집트가 내전으로 붕괴하자,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는 이집트 전체를 무혈 점령하기 위한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 움직임은 100년간의 그리스 세계 안정에 큰 위협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4세 사후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간신들이 뒤를 이으면서 이집트 내 군벌들이 서로 의심하여 남북에 걸친 내전이 발발했고, 이에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가 동맹을 맺어 이집트 분할을 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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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발발]
페르가몬과 로도스 사절단이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의 불가침 조약 증거를 로마에 가져오자, 로마는 필리포스 5세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필리포스가 로마를 무시하고 도발하자, 로마는 군대를 파병하며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로마를 경멸하고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을 증오했으나, 셀레우코스 제국과 마케도니아의 위협으로 정세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로마는 애초에 외교적 개입만 고려했으나, 필리포스의 도발로 인해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플라미니누스 테살리아 도착]
로마와 그리스 동맹군의 압력에 응전하던 필리포스 군대에 맞서, 집정관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테살리아 평야에 도착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필리포스는 그리스와 로마군에 대한 초기 승리에 기세등등했으나, 플라미니누스의 등장은 전황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승리]
로마는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필리포스 5세를 크게 격파하고,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는 화평을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맺어진 템피 조약으로 필리포스는 그리스 정복을 단념하고 국경 밖 개입이 금지되어 마케도니아는 사실상 멸망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마케도니아는 더 이상 강력한 세력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로마의 영향력이 그리스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그리스 해방 및 철수]
로마는 올림피아드에서 '그리스인들의 해방'을 선포하며 그리스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표명했습니다.
이는 그리스가 안정되었고 로마가 더 이상 그리스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로마는 모든 군대를 철수하고 셀레우코스 제국으로 향했습니다.
로마의 철수 후 그리스 동맹국들은 다시 이전의 중립 상태로 돌아갔지만, 셀레우코스 제국의 확장을 막을 마케도니아가 사라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셀레우코스, 그리스 공격]
이집트 세력이 약해지고 마케도니아가 붕괴하자, 혼자가 된 셀레우코스 제국은 그리스 전체를 점령하려는 공격적인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상황은 한니발이 셀레우코스 황제의 핵심 고문이 되면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로마의 동맹국들은 셀레우코스와 적대 동맹을 추구했고, 심지어 필리포스 5세마저 로마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을 부활시키려는 야심을 보이며 심지어 이탈리아 반도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로마는 이에 스페인과 갈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시칠리아에 주요 수비대를 설치하며 대비했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승리]
초기 전투 후 로마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셀레우코스를 격파하고 그리스 북부로 몰아냈습니다.
이후 로마군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셀레우코스를 추격했는데, 이는 로마군이 아시아에 최초로 진입한 세계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셀레우코스는 수세기 전 300명의 스파르타인이 페르시아 제국에 맞섰듯이 로마의 힘을 되찾으려 했으나 패배했고, 로마의 진격은 계속되었습니다.
[마그네시아 전투 승리]
셀레우코스와의 결정적인 교전인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셀레우코스는 화친을 요청했지만 그리스 정복은 좌절되었고, 이 패배로 셀레우코스 제국의 멸망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동부의 파르티아와 서부의 그리스, 남부의 유대 등 주변 세력의 위협 속에 다음 세기에 걸쳐 조각나 붕괴되었습니다.
[로마, 그리스 재철수]
마그네시아 전투 이후 로마는 또다시 그리스에서 철수했습니다.
주요 세력이 없는 상황이 안정된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리스는 오히려 불안정한 상태로 접어들게 됩니다.
로마의 잦은 개입과 철수는 그리스 지역의 정치적 공백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페르세우스 부활 선포]
필리포스 5세 사망 후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마케도니아 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이웃 나라에 대한 공세를 취했습니다.
이는 로마의 동맹국들을 위협하는 음모로 이어졌습니다.
페르세우스의 야심은 로마의 개입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선언]
페르세우스가 로마 동맹국 공격 음모를 진행하자, 로마 원로원은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마케도니아의 재기를 막기 위한 로마의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로마군이 마케도니아군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피드나 전투 마케도니아 멸망]
로마군은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을 크게 패퇴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마케도니아 왕국은 로마에 의해 4개의 작은 공화국으로 쪼개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마는 최초로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세계에 영구적인 발판을 마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마케도니아 지역은 1991년 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약 2000년 동안 다른 국가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로마는 그리스가 다른 나라에 넘어간다면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의 평화를 담보받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 발발]
마케도니아 왕조의 후손을 참칭하는 평범한 직물공 안드리스쿠스가 등장하여 마케도니아 제국 재건을 외치며 그리스 반도를 다시 불안정하게 만들자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로마는 이미 세 차례의 전쟁과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군사적 우위를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반란은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 필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제2차 피드나 전투 승리]
로마는 안드리스쿠스 주도의 마케도니아군을 크게 격파하며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이 승리는 마케도니아 잔당 세력의 몰락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에 대응하여 아카이아 동맹은 로마에 대한 전쟁 동원령을 내렸는데, 이는 '아카이아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아카이아 지도자들은 로마의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자살적인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아카이아 멸망 코린토스 파괴]
아카이아 동맹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로마는 카르타고가 파괴된 같은 해에 고린도(코린토스)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로마는 그리스의 끊임없는 불안정을 해결하고자 마케도니아를 독립 지역으로 선포하는 대신, 아카이아와 에피루스 두 속령으로 분할 편입하며 아카이아 동맹 또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했습니다.
폴리비우스는 자살 전쟁을 부추긴 아카이아 동맹 지도자들을 "처음부터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한심한 인간들"이라며 크게 비난했습니다. 이로써 지중해 동부는 로마의 명백한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