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작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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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총 7권 200명 이상 등장인물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입니다. - 어린 시절부터 앓은 천식과 허약한 몸은 그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학 세계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 파리 사교계 경험은 작품 속 인간 군상과 사회를 날카롭게 묘사하는 통찰력으로 이어졌습니다. - 독특하고 긴 문체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깊은 성찰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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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허약한 천재의 탄생]

프랑스의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가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허약하여 평생 천식으로 고통받았지만, 이는 훗날 그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문학 세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파리 코뮌 시기 어머니의 궁핍한 생활 탓에 허약하게 태어났다고 여겨지며,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파리 대학교 의학부 교수이자 위생학자였고, 어머니는 깊은 교양을 지닌 유대인 혈통의 여성이었습니다. 두 종교가 결합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프루스트는 자신을 특정 종교로 규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1873

[동생 로베르의 탄생]

마르셀 프루스트의 남동생 로베르가 태어났습니다.

로베르는 후에 외과 의사가 되어 형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프루스트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었습니다.

1880

[생애를 바꾼 천식 발작]

9살 무렵, 불로뉴 숲 산책 중 심각한 천식 발작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프루스트에게 평생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주었으며,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섬세한 감각과 허약한 신체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루스트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발작이 심했으며, 봄마다 찾아오는 꽃가루는 그의 천식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1882

[콩도르세 고등학교 입학]

프루스트가 명문 리세 콩도르세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키우고 여러 친구들과 교류하며 훗날 작가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는 5학년 때 유급하기도 했으나 1884년 12월에는 우등생 명부에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결석이 잦았지만, 빅토르 위고와 뮈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철학 수업에서는 알퐁스 다를뤼의 제자였으며, 자크 비제, 페르낭 그레그 등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1886

[사교계 명사의 첫걸음]

재혼한 주느비에브 알레비의 살롱에 단골로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여러 예술가와 작가들을 만나며 사교계 딜레탕트로 명성을 얻었고, 이는 그의 작품 속 사회 묘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887

[실패한 첫사랑의 아픔]

첫사랑 마리 드 베나르다키와 절교하며 실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 첫사랑의 실패는 훗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잃어버린 첫 소녀'의 모티브가 되어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리 드 베나르다키는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인 외교관의 딸로, 샹젤리제 공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이 사건은 프루스트가 어머니를 제외한 타인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 첫사랑의 실패였습니다.

1889

[군 복무 시절의 추억]

오를레앙의 76 보병연대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로베르 드 빌리, 가스통 아르망 드 케야베 등 중요한 인물들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들은 훗날 그의 소설 등장인물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프루스트가 반했던 가스통 아르망 드 케야베의 약혼녀 잔 푸케를 알게 되었고, 이들이 소설 속 로베르 드 생루와 질베르트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또한 마담 아르망 드 카야베의 살롱에 초대받아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였던 아나톨 프랑스(베르고트의 모델)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92

[문학 잡지 <향연> 참여]

리세 콩도르세 동창들과 함께 소규모 잡지 <향연>을 창간하고 글을 기고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첫 공식적인 문학적 발자취였습니다.

1894

[예술가 친구와의 만남]

작곡가 친구 레날도 안과 파티에서 만나 깊은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프루스트는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의 문학적 영감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프루스트는 1894년 봄에 쥘 마스네의 제자이자 레이날도 안의 부인인 마들렌 르메르와 만났으며, 같은 해 여름 샤토 드 레베이옹 파티에서 레이날도 안을 만났습니다.

1895

[미완의 대작 <장 상퇴유>]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 장편소설 <장 상퇴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1899년까지 시도했으나 미완으로 남았으며, 이 작품은 훗날 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안으로 평가받습니다.

집안의 재산 덕분에 프루스트는 귀족 살롱을 드나들며 사교계 생활을 즐겼고, 1894년부터 1900년 초 사이에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와 같은 유명인사를 만나며 작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장 상퇴유>에는 프루스트가 직접 경험했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환기도 담겨 있습니다.

[문학사 학위 취득]

사립정치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소르본에서 학위를 따기로 결정, 1895년 3월 문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앙리 베르그송의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프루스트는 앙리 베르그송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베르그송의 영향은 그의 작품에서 종종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1896

[첫 작품 <즐거움과 나날들> 출간]

시, 산문, 단편 모음집 <즐거움과 나날들>을 출간하며 공식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혹평을 받았고, 특히 작가 장 로렌과의 결투로 이어지며 사교계 딜레탕트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음집에는 프루스트와 작곡가 친구 레날도 안이 함께 살롱에 드나들던 마들렌 르메르의 삽화가 수록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의 가차 없는 평가와 장 로렌과의 결투 사건은 그의 문학 활동에 대한 첫 시련이었습니다.

1900

[러스킨 연구를 위한 이탈리아 여행]

계획하던 소설 집필을 중단하고 존 러스킨의 발자취를 따라 베네치아와 파도바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러스킨 관련 글을 쓰고 그의 저서 두 권을 번역하며 미학적 시야를 넓혔습니다.

1903

[아버지의 사망]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 박사가 사망했습니다.

이는 프루스트에게 큰 정신적 타격을 주었으며, 이후 그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1904

[러스킨 <아미앵의 성서> 번역]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를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이는 그의 미학적 시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번역본에 실린 풍부한 주석과 서문은 그의 고유한 비평 의식을 보여줍니다.

이 번역본을 지난해 사망한 아버지에게 헌정했습니다. 그는 러스킨의 미학적 태도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예술관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1905

[어머니의 사망]

어머니 잔 클레망스 프루스트가 사망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으며, 신경쇠약으로 요양소에 머무는 등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상실 후 요양소 체류]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1905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빌랑쿠르 요양소에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 창작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1906

[러스킨 <참깨와 백합> 번역]

존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이 번역 작업을 통해 러스킨의 미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학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또한 이 해에 <생트뵈브에 반하여> 집필을 시작했으며, 이는 훗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사상적 기반이 됩니다.

[오스만 대로의 은둔 생활 시작]

부모님 사망 후 파리 오스만 대로의 코르크로 덮인 방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19년까지 13년 동안 이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오직 글쓰기에 몰두하며 대작을 구상하고 집필했습니다.

1907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작]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5년 동안 오스만 대로의 방에 은둔하며 이 방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프루스트는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첨가하며 4세대에 걸친 2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광대한 인간 희곡을 창조했습니다. 이 작품은 '세계최초'로 개인의 기억과 무의식을 탐구하는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19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출간]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자비 출판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는 그의 오랜 집필 노력의 첫 결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베르나르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 출판되었고, 1917년부터 갈리마르 출판사로 옮겨 출간되었습니다.

1918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 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를 NRF(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다음 해 공쿠르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

1919

[공쿠르상 수상 및 <모작과 잡록> 출간]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일약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또한, <모작과 잡록>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모작과 잡록>은 주로 르 피가로에 게재된 기사나 서문의 모음집으로, 가스통 갈리마르의 부탁으로 한 권으로 묶어 출판되었습니다.

[13년간의 은둔 생활 마무리]

1906년 12월부터 이어져 온 오스만 대로에서의 13년간의 은둔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오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에 전념했습니다.

1921

[<게르망트 쪽> 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을 출간했습니다.

그의 생애 말년에 가까워지면서도 끊임없이 작품을 수정하고 추가하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1922

[<소돔과 고모라> 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권 <소돔과 고모라>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기 프루스트는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집필에 지친 상태였습니다.

[프랑스 대문호의 죽음]

기관지염을 치료받지 못한 채 파리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문학 애호가들이 참석하여 거장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그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에 몰두했으며, 그의 작품은 뒤이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최정상 작가'로 평가받으며 '진정한 문학의 신화'로 만들었습니다.

1923

[<갇힌 여자> 사후 출간]

그의 유작 중 하나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권 <갇힌 여자>가 사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작품은 계속해서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1925

[<사라진 알베르틴> 사후 출간]

생전에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 <사라진 알베르틴>이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미완성 원고들이 세상에 공개되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1927

[<되찾은 시간> 사후 출간으로 완결]

마침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이 사후 출간되며 대하소설 전체가 완결되었습니다.

이로써 20세기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여정이 막을 내렸습니다.

같은 해 <시평집>도 사후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프루스트의 생전 문학 활동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52

[미완성작 <장 상퇴유> 사후 출간]

프루스트가 생전에 미완으로 남겼던 소설 <장 상퇴유>가 작가 사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기 구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54

[<생트뵈브에 반하여> 사후 출간]

프루스트 사후에 출판된 모음집 <생트뵈브에 반하여>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생트뵈브의 비평론을 비판하며 프루스트 고유의 시학을 창설한 중요한 저서입니다.

<생트뵈브에 반하여>는 발자크, 플로베르 같은 작가들을 다룬 짧은 수필과 초벌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삶의 반영이라는 비평 방식에 반대하며 새로운 문학 비평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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