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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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3: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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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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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의 아버지이자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계몽사상의 근본 원리를 최초로 확립하여 서양 사상의 지평을 열었다. 세계 최초 직교 좌표계를 고안하고 미지수 x와 지수 표현법을 도입 수학의 혁명을 이끌었다. 물리학 생리학 등 과학 전반에 걸쳐 현대적 의미의 시초를 제공하며 시대를 앞선 거장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이원론과 방법적 회의는 오늘날까지 인류에게 이성의 권리를 탐구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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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꼬마 철학가의 탄생]

프랑스 투렌 지방의 법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데카르트는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지만 주변 사물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부친은 이런 그에게 '꼬마 철학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607

[수학 재능 발견]

허약한 체질 탓에 조금 늦은 나이에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주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수학과 과학을 처음 배웠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론까지 접하며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학교의 구시대적 교육방식에 불만을 가질 정도로 뛰어났다.

1614

[중세식 교육 수료]

8년간 라틴어, 수사학, 고전 작가 수업과 변증론, 자연철학, 형이상학, 윤리학을 포괄하는 철학 수업을 받았다.

이 교육은 훗날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616

[세상 속 지식 탐구]

아버지의 뜻을 따라 푸아티에 대학 법학과에 입학, 리상스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에서 실질적인 지식을 얻고자 제도권 교육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617

[수학 천재성 깨닫다]

아버지가 식견을 높이기 위해 보낸 파리에서 그는 수학과 관련한 도박에 흥미를 느꼈다.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단 몇 시간 만에 풀어내며 자신에게 수학적 재능이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1618

[베크만과의 조우]

네덜란드 여행 중 첫 작품인 짧은 《음악 개론》을 썼다.

또한 이삭 베크만을 만나 수학을 여러 문제에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주며 수학적, 과학적 흥미를 더욱 발전시켰다.

1619

[직교 좌표계 착안]

독일 바이에른 막시밀리안 군대에 입대해 백산 전투를 겪었다.

병영 침대에 누워 천장 파리를 보고 그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다 세계 최초로 직교 좌표계를 착안하는 위대한 순간을 맞이했다.

이는 후대 수학과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철학의 영감]

울름 근교 병영에서 심한 감기로 잠에 들었다가 세 가지 신비로운 꿈을 꾸었다.

그는 이를 성령이 자신에게 새로운 철학의 영감을 주었으며, 모든 과학의 가치와 참된 지식의 길을 열라는 명령이라고 믿게 되었다.

첫 번째 꿈은 과거의 오류에 대한 경고, 두 번째 꿈은 진실의 정신이 내습한다는 것, 마지막 꿈은 모든 과학의 가치와 참된 지기에의 길을 열 것을 명령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두 번째 꿈은 현대의학적으로 폭발머리증후군으로 이해된다.

1620

[파리 과학 연구]

군에서 제대하고 프랑스로 귀환하여 1626년부터 파리에서 수학, 자연 과학, 특히 광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그의 학자로서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626

[미완성 논문 집필]

2년 동안 수학과 굴절광학을 연구하며 미완성 논문인 <정신지도의 규칙>을 썼다.

이 시기에 자신의 방법론 체계를 세우려 노력했다.

1628

[네덜란드 망명]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이 강했던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가 지배적인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약 20년간 저술 활동에 몰두하며 주요 저서들을 집필하게 된다.

[세계론 출판]

네덜란드 이주 후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세계론》(Traite du monde)을 프랑스어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1630

[세계론 집필 시작]

네덜란드 체류 중 자연과학에 관한 책 《세계론》(Le Monde)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바탕으로 데카르트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1637

[방법서설 출판]

익명으로 《방법서설》에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부분을 덧붙여 출판했다가 후에 프랑스어로 완성했다.

이 해부터 존재론과 인식론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641

[성찰 출판]

존재론과 인식론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제1 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의 철학적 사상의 정수를 보여준다.

1644

[철학 원리 출판]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를 계승,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라틴어로 《철학 원리》를 출판했다.

1649

[마지막 저서 정념론]

보헤미아의 왕 프리드리히 5세의 딸 팔츠의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책인 《정념론》(Les passions de l'ame)으로 출판되었다.

[스웨덴 여왕의 초대]

학문에 대한 열정이 깊었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황궁으로 초대받았다.

여왕은 매주 세 번, 새벽 5시에 그에게 철학 강의를 들을 것을 명했다.

1650

[새벽 강의, 폐렴의 시작]

스웨덴 여왕의 새벽 강의 명령에 따라 한밤중에 찬 공기를 가르며 이동하던 데카르트는 감기에 걸렸고, 이는 곧 폐렴으로 악화되었다.

[위대한 철학자의 죽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폐렴으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골은 1667년 파리로 돌아왔고, 1819년 이후 생 제르맹 데프레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의 묘비에는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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