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시앵 페브르
역사가, 아날학파 창시자, 신 역사학 개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3:38:45
20세기 프랑스 역사학을 대표하는 거장.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학파를 창설 현대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물질적 구조주의와 대비되는 정신적 구조주의 역사학을 개척. 당대 정신적 한계 속에서 인물과 사회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새로운 역사의 선구자.
1878
[뤼시앵 페브르 탄생]
프랑스 동부의 낭시에서 태어나 프랑슈콩테 지방의 주도인 브장송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훗날 역사학의 거장으로 불릴 그의 삶이 시작된 날입니다.
1899
[파리 고등사범 입학]
파리의 고등사범에 입학하여 학문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여정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1911
[소르본 박사 학위]
소르본 대학교에서 <펠리페 2세와 프랑슈콩테>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논문은 그의 첫 주요 저서로 출간되며 학문적 재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20
[아날학파의 탄생]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평생의 학문적 동지 마르크 블로크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함께 <경제사회사 아날>을 창간하며, 훗날 '아날학파'로 불릴 새로운 역사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경제사회사 아날(An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은 기존의 정치사 중심 역사학에서 벗어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역사학'을 추구하며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33
[지적 종합의 실천]
프랑스 최고 권위 교육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었고, ≪프랑스 백과사전≫의 편집자가 되어 철학자 앙리 베르와 함께 꿈꾸었던 학문적 '종합'을 실천했습니다.
1942
[시대의 한계를 탐구하다]
주요 저서 ≪16세기의 무신앙 문제≫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프랑수아 라블레 같은 인물조차도 자기 시대의 정신적 한계("믿기를 원하던 시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며, '정신적 구조주의' 역사학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1956
[역사가의 별이 지다]
현대 역사학의 흐름을 선도한 위대한 역사가 뤼시앵 페브르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아날학파'의 창시자이자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