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
건축가, 모더니즘 건축 선구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7:53
* Less is more 철학으로 현대 건축의 이정표를 세운 건축가. * 산업용 재료와 단순한 구조로 피부와 뼈 건축을 개척. * 바우하우스 교장 역임 미국으로 망명 후에도 건축 혁신을 이어감. *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준 거장.
1886
[위대한 건축가 탄생]
근대 건축의 선구자이자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는 명언으로 유명한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가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루트비히 미하엘 미스였으며, 그의 작업은 드라마틱한 명료함과 단순함으로 20세기 건축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08
[건축 여정의 시작]
베를린으로 이주한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브루노 파울 사무실을 거쳐, 1908년부터 1912년까지 페터 베렌스 스튜디오에서 건축 견습생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독일 문화와 디자인 이론을 접하며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21
[유리 마천루의 파격]
미스는 1921년 설계경기에서 전면이 유리로 된 다면체 마천루(Friedrichstrasse skyscraper)라는 혁신적인 설계안을 선보이며 극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더니즘 건축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22
[곡선 유리 마천루 제안]
전년도 유리 마천루 설계에 이어, 미스는 1922년 곡면을 가진 유리 마천루 설계를 발표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건축 양식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23
[진보 디자인 잡지 참여]
미스는 1923년 7월 시작된 진보적인 디자인 잡지 'G'에 참여하여, 동시대 아방가르드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모더니즘 건축 이론을 발전시켰다.
1929
[바르셀로나 독일관 건립]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 박람회를 위해 임시 건물로 지어진 독일관(현재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미스의 유럽 내 걸작 중 하나로, 철저한 미니멀리즘과 개방적인 공간 구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박람회 후 분해되었으나 1988년 원래 부지에 재건축되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며, 건축 재료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공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강조한 미스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이 건물은 '피부와 뼈' 건축의 대표적인 예시로 평가받는다.
1930
[빌라 투겐트하트 완성]
체코 브르노에 지어진 빌라 투겐트하트는 미스의 또 다른 유럽 걸작으로, 현대적인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여 유연한 내부 공간과 외부와의 조화를 추구했다.
세계 최초로 에어컨 시스템이 적용된 주택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혁신적이었다.
빌라 투겐트하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건축사적 가치가 높으며, 최소한의 구조로 최대의 공간감을 구현하려는 미스의 디자인 철학이 응집된 걸작이다. 이 건물은 특히 '세계 최초'라는 기록적인 의미가 부여될 만하다.
[바우하우스 마지막 교장]
세계 대공황으로 설계 의뢰가 줄어들던 1930년대 초반, 미스는 친구 발터 그로피우스의 요청으로 쇠락해가던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역임하며 학교를 이끌었다.
1933
[바우하우스 나치에 폐교]
1933년, 나치 정권은 사회주의 등 진보적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바우하우스에 정치적 압력을 가했고, 결국 미스는 학교 문을 닫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미스의 건축 양식은 '독일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배척당했다.
1937
[나치 피해 미국 이민]
나치 정권의 억압적인 체제와 설계 의뢰 감소로 실망한 미스는 1937년, 고국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그는 와이오밍 주거 설계 의뢰와 시카고 건축 학교의 교장직 제안을 받아들였다.
1938
[IIT 건축대학 학장 부임]
미국으로 이민 온 미스는 시카고의 아머 공과 대학(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IIT) 건축대학 학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캠퍼스의 새 건물들을 직접 설계하며 자신의 건축 철학을 실제 교육과 건축에 구현하기 시작했다.
Alumni Hall, S.R.
Crown Hall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1944
[미국 시민권 획득]
미국에 정착한 미스는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고 독일 국적을 포기하며,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건축가로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1969
[근대 건축 거장 타계]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위대한 선구자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가 1969년 8월 17일, 미국 시카고에서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을 건축 언어를 탐구하며 현대 건축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