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화가, 판화가, 예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2:43:43
1606
[렘브란트 탄생]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방앗간 주인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렘브란트는 개신교 신자로 성장하여 훗날 깊은 신앙심을 작품에 담아내게 됩니다.
1620
[예술가의 길 시작]
14세에 레이던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책상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일에 더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결국 부모님의 지지 아래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3년간 미술 수업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625
[개인 화실 개설]
미술 수업을 마친 후 자신의 개인 화실을 열어 본격적으로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암스테르담의 유명 화가 피터르 라스트만에게 꾸준히 지도를 받으며 예술적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632
[명성 얻은 화가]
활동의 중심지를 번성하던 암스테르담으로 옮겼습니다.
그 해,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으로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제작하며 초상화가로서 단숨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1642
[야경 혹평과 비극]
대작 <야경>을 발표했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인해 기대와 달리 혹독한 비평에 시달려 명성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해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며 개인적으로도 큰 비극과 절망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렘브란트의 삶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656
[파산과 작품 활동]
재정적 어려움이 깊어져 결국 파산 선고를 받고, 유대인 지구에서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끼니마저 거르는 만년의 비참한 삶 속에서도 렘브란트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며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1669
[렘브란트의 마지막]
암스테르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생전 마지막 시기는 고난의 연속이었고, 한때 누렸던 명성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그의 예술적 유산은 후대에 길이 기억될 위대한 걸작들로 남았습니다.
<야경> 이후 무너진 명성은 결국 회복되지 못한 채, 외롭고 비참한 상황에서 그의 생은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