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턴 협정
평화 협정, 국제 조약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5:28
데이턴 협정은 보스니아 전쟁을 종식시킨 역사적인 평화 조약입니다. * 미국 중재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3국 정상이 참여했습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세르브계 공화국과 보스니아-크로아트계 연방으로 나누는 주요 내용을 담았습니다. * 전쟁 종식에 기여했으나 인종 학살 언급 부재와 불안정한 정치 구조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1992
[평화 협정 기본 제안]
보스니아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국제 사회는 평화로운 해결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이턴 협정의 기본 요소가 되는 내용들이 이 시기에 여러 국제 회담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지만, 당시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평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기에 제안된 내용들은 NATO의 폭격과 폭풍 작전 이후 재개된 협상의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1995
[미국 셔틀 외교 개시]
NATO의 보스니아 폭격과 크로아티아군의 '폭풍 작전' 이후, 미국은 보스니아 전쟁 종식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끄는 팀은 발칸 반도 지도자들과 '셔틀 외교'를 펼치며 강도 높은 평화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데이턴 협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안소니 레이크 국가안보보좌관 팀이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유럽을 순방하며 핵심 사항을 제시한 후, 홀브룩 팀이 이를 이어받아 10월까지 5차례에 걸쳐 발칸 지도자들과 직접 협상하며 합의 원칙을 도출했습니다.
[평화 합의 원칙 채택]
보스니아 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의 끈질긴 셔틀 외교는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와 미국 뉴욕에서 국제 컨택트 그룹 회의를 통해 보스니아 평화 합의의 핵심 원칙들이 차례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데이턴에서 열릴 본격적인 평화 회담의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9월 8일 제네바와 9월 26일 뉴욕에서 각각 합의 원칙이 채택되었습니다.
[데이턴 평화회의 시작]
대망의 데이턴 평화회의가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위치한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등 전쟁의 주요 당사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이 회의는 11월 21일까지 3주간 진행되었으며,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이끌고 리처드 홀브룩이 협상가로 참여했습니다.
[데이턴 협정 초안 완성]
3주간의 치열한 협상 끝에 마침내 보스니아 전쟁을 종식시킬 데이턴 협정의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전쟁 당사국들이 평화에 대한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합의의 첫 단추였습니다.
이 초안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평화를 위한 일반합의문'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집니다.
[파리에서 협정 공식 체결]
역사적인 데이턴 협정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식적으로 체결되면서, 수년간 이어진 참혹한 보스니아 전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 협정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세르브계와 크로아트-보스니아계로 구성된 두 개의 자치 엔티티로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하며, 복잡한 발칸 반도의 평화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체결식에는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정상 외에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유럽 연합 등 주요 국제 인사들이 보증국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