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카도
경제학자, 정치인, 투자자, 노예 폐지론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5:26
영국 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로 애덤 스미스와 함께 경제학의 거두. 비교 우위론 지대론 등으로 현대 경제학의 기반을 다졌다. 증권 중개인 출신으로 현실 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론을 구축했으며 노예 폐지론을 주장한 진보적인 사상가이자 하원 의원으로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772
[데이비드 리카도 탄생]
영국 고전 경제학의 거두 데이비드 리카도가 런던에서 태어났다.
런던 증권거래소 중개인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증권 거래를 배우며 훗날 그의 경제학적 통찰력에 중요한 밑거름을 쌓았다.
1793
[가족과의 결별]
21세에 퀘이커 교도 프리실라 윌킨슨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결별했다.
이로 인해 가족과 절교하고 유니테리언주의로 개종하는 등 개인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의 굳건한 신념과 독립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1809
[경제학 논문 발표]
통화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금의 가격>과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며, 주식 시장에서 갈고 닦은 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주요 이론 체계의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1817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출간]
리카도의 학문적 정수를 담은 역작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을 뛰어넘어 현대 국제 무역의 기본 원리인 비교 우위론을 제시하며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대론, 노동 가치설 등 시대를 초월하는 이론들을 체계화하여 후대 경제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19
[정치 활동과 사회 참여]
종신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노예 폐지론자로서 동인도 회사 회의에서 노예 제도가 영국의 국격에 해롭다고 역설하는 등, 단순한 학자를 넘어 사회 정의 실현에도 앞장선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친구 맬서스를 유서의 상속인에 포함시킬 만큼 인간적인 유대도 중요시했다.
1823
[데이비드 리카도 서거]
영국 고전 경제학의 기틀을 확고히 다진 데이비드 리카도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비교 우위론과 같은 혁신적인 이론들을 통해 경제학의 지평을 넓혔고,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경제학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