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중국 왕조, 통일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5:08
*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황금기를 구가한 통일 왕조. * 초대 황제 이연이 수나라 멸망 후 건국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며 동아시아 문화 중심이 됨. * 실크로드를 장악 국제적인 무역과 교류로 번영을 누림. 이백 두보 등 위대한 문인과 예술가 배출. * 안사의 난 이후 쇠퇴했으나 잠시 중흥기를 맞기도 함. * 황소의 난과 주전충의 후량 건국으로 멸망하며 오대십국 시대를 열었다.
617
[이연의 반란과 장안 함락]
수나라 말기 혼란 속, 이연이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함락하고 수 양제를 태상황으로, 양유를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하며 당나라 건국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 고조 이연은 수나라 말 혼란을 틈타 617년에 반란을 일으켜 아들 이세민과 딸 평양공주의 지휘 아래 장안을 함락했습니다. 당시 수나라 황제 양제를 사실상 폐위시키고 그의 손자인 양유를 수 공제로 즉위시켜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618
[당나라 건국]
수 양제가 살해되자, 이연이 수 공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당나라를 건국하고 고조로 즉위하며 중국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수 양제가 휘하 장수인 우문화급에게 살해당한 후, 이연은 618년 6월 18일 수 공제에게 제위를 선양받아 당나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인 고조로 즉위했습니다. 이연은 62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626
[현무문의 변과 당 태종 즉위]
이세민은 황태자 이건성과 이원길 형제와의 갈등 끝에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제들을 살해하고, 아버지 고조로부터 반강제로 제위를 양위받아 태종으로 즉위했습니다.
당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이세민은 황태자 이건성 및 삼남 이원길과 갈등했습니다. 결국 이세민은 궁궐 내에서 형제들을 살해하는 '현무문의 변'을 일으켰고, 이후 황태자에 봉해졌습니다. 고조는 반강제로 이세민에게 양위하고 황위에서 물러났습니다.
629
[당 태종의 돌궐 정복과 천가한 칭호 획득]
당 태종은 북방의 돌궐을 정복하여 당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한족 황제로서 최초로 북방 민족을 아우르는 '천가한' 칭호를 얻으며 당나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태종은 즉위 초 돌궐의 침략을 받았으나, 군사를 일으켜 돌궐족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통해 태종은 한족 황제인 동시에 모든 북방 민족을 아우르는 '천가한' 칭호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창국과 비단길 일대를 장악하여 당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성장시켰습니다. 조세, 토지,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율령 체제를 완성하고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를 '정관의 치'라 부릅니다.
653
[당률 반포]
당나라는 수나라 법전을 본받아 당률을 반포했습니다. 이 법전은 500개의 법문으로 구성되어 후대 중국 왕조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법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 태종은 이전 왕조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 정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수나라의 법전을 본받아 당률을 반포했으며, 이는 후대 중국 왕조들과 베트남,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당률은 653년에 반포된 것으로, 500개의 법문으로 구성되어 범죄와 처벌 방법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죄자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형벌의 세기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655
[측천무후의 국정 장악 시작]
고종 황제가 쓰러진 후, 측천무후가 황실의 대소사를 거의 전담하며 대리청정을 시작, 권력을 장악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측천무후는 당 태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왔으나, 이후 당 고종의 후궁이 되어 황후가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가 655년에 쓰러지자, 측천무후는 그에게 대부분의 국정을 위임받아 수렴 뒤에서 대리청정을 시작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660
[당-신라 연합군의 백제 멸망]
당 고종은 신라의 요청을 명분으로 군대를 한반도에 출병시켜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 고종은 신라의 요청을 받아 한반도로 군대를 출병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660년 백제가 멸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668
[당의 고구려 멸망]
고구려의 내분을 감지한 당 고종은 병력을 일으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신라의 반발로 한반도 지배 시도는 좌절되었습니다.
당 고종은 연남생의 귀순으로 고구려의 내분을 파악하고 667년에 병력을 일으켜 668년 9월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 옛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나,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힘을 합쳐 나당 전쟁을 벌여 당나라를 쫓아내면서 이러한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690
[측천무후의 무주(周) 건국]
측천무후는 예종에게 선양받아 여황으로 즉위하고 '무주'를 건국하며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로서 공포정치를 펼쳤으나, 능력 있는 재상 등용으로 내치를 안정시켰습니다.
측천무후는 683년 고종 사망 후 중종을 폐위하고 예종을 옹립하는 등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690년 10월 19일, 예종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여황으로 즉위하며 '주(周)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감시와 혹리들을 이용한 고발 제도로 공포정치를 펼치며 정적들을 처벌했지만, 적인걸과 같은 재상들을 등용하여 내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는 등 국정 운영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705
[당나라 복귀와 무주 멸망]
측천무후의 병세가 악화되자, 권력자들의 압박으로 중종이 제위에 복귀하며 무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복귀했습니다.
측천무후의 재위기 말기인 699년경 측근들의 폐단이 심해졌고, 705년에 측천무후가 병이 들어 약해지자 이씨의 당나라에게 제위를 돌려주라는 압박이 강해졌습니다. 결국 705년 2월 23일에 중종이 다시 제위에 올랐으며, 무주는 멸망하고 당나라는 3월 3일에 공식적으로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712
[당 현종의 즉위 및 개원의 치 시작]
위황후와 태평공주 등 여성들의 권력 장악 혼란 끝에 이륭기(현종)가 위황후 세력을 제압하고 즉위하여 당나라 중흥의 서막인 '개원의 치'를 열었습니다.
측천무후 이후 중종 황제의 아내 위황후와 안락공주 모녀가 중종을 독살하고 허수아비 황제를 세우는 등 여성들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에 임치왕 이륭기(현종)가 부하들과 함께 궁으로 들어와 위황후와 측근들을 처단하고 예종을 복위시켰습니다. 이후 태평공주의 반란 실패 후 712년에 예종이 이륭기(현종)에게 제위를 물려주며 당나라 부흥기인 '개원의 치'가 시작되었습니다.
741
[당 현종의 국정 방임 시작]
현종이 며느리였던 양귀비에게 빠지며 국정을 방임하기 시작했고, 재상 이임보에게 권력을 맡기면서 절도사들에게 군권을 부여하는 정책이 후기 대규모 반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종의 태평성대인 '개원의 치'는 741년경부터 현종이 며느리 양귀비에게 빠지며 퇴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종은 국정을 방임하고 737년 이후 오랫동안 집권한 재상 이임보에게 대부분의 국정을 떠맡겼습니다. 이임보는 비한족 인사들에게 막대한 권력과 군권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결국 당나라 후기에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751
[탈라스 전투 대패]
당 현종이 타슈켄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타슈켄트 왕자가 요청한 아랍-투르크 연합군과의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여 서역의 패권을 아랍에 넘겨주었습니다.
750년 현종은 타슈켄트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쟁을 감행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왕을 처형했습니다. 이에 타슈켄트 왕자가 아랍에 도움을 요청했고, 751년 4만 명의 아랍과 투르크 연합군이 탈라스 강에서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와 맞섰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당나라 군대는 아랍군이 다민족 군대인 당의 내분을 일으킨 전략에 대패했으며, 서역의 패권은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게 되었습니다.
755
[안사의 난 발발]
당나라 국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8세기 중반, 소그디아나인과 투르크 혼혈인 안록산이 10만 대군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 쇠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나라 국력이 8세기 중반까지 최고조였으나,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사의 난 주도자 안록산은 744년부터 당나라 장군으로 활동하며 허베이성 인근에서 힘을 모았습니다. 그는 1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고 연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 난으로 인해 당나라의 중앙집권체제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으며, 같은 해 토지 분배제도가 붕괴했습니다.
806
[당 헌종의 원화중흥 시작]
당 헌종은 7번의 군사 원정을 통해 중앙에 반기를 든 세력들을 제압하고 절도사의 세력을 제한하는 등 재정 및 군사 개혁을 단행하며 '원화중흥'을 이끌었습니다.
당나라의 마지막 명군으로 평가받는 헌종은 780년대부터 재정 개혁을 감행하고 수도에 최정예 신책군을 두었습니다. 806년에서 819년 사이에 중앙에 반기를 든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 7번의 군사 원정을 펼쳐 대부분 성공적으로 평정했습니다. 또한 절도사의 세력을 제한하고 후계 승계권을 박탈했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지방을 다스리게 하여 일시적이나마 당나라의 중흥기인 '원화중흥'을 이루었습니다.
858
[대운하 인근 대규모 홍수 발생]
대운하 인근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여 북부 중국 평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1만 명 이상이 익사하면서, 민심이 이반하여 당나라가 천명을 잃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845년경에는 양쯔 강 인근 도시들이 수적들에게 약탈당하기도 했습니다. 858년에는 대운하 인근에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북부 중국 평원의 토지와 논밭을 휩쓸며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익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당나라가 더 이상 천명을 잃었다고 여기며 새로운 왕조가 혼란을 끝내기를 소망하기 시작했습니다.
873
[대규모 흉작 발생]
대규모 흉작이 발생하여 제국의 근간이 흔들렸고, 곡물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며 당나라의 쇠락을 가속화했습니다.
873년 대규모 흉작이 발생하여 제국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평년 수확량의 절반도 안 되는 곡물을 거두어 사람들이 수없이 굶어 죽었습니다. 당나라 초기에 비해 9세기 후반에는 조정이 국가 통치 능력을 상실하여 이러한 자연재해에 제대로 방비할 수 없었습니다.
875
[황소의 난 발발]
당나라 말기 희종 때 황소의 난이 터져 장안과 낙양이 약탈당하며 당나라가 완전히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나라 말기 희종 때 875년부터 884년까지 '황소의 난'이 발발하여 당나라는 수도 장안과 낙양을 모두 빼앗기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난은 결국 당나라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주전충과 같은 군벌들이 성장하여 당나라의 중앙 통제력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907
[당나라 멸망]
황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절도사 지위를 얻은 주전충이 애종을 퇴위시키고 후량을 건국하며 290년간 이어진 당나라가 마침내 멸망했습니다.
황소의 난에 가담했던 소금 밀매업자 출신 주전충은 당나라 관군에 항복하여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절도사가 되어 막강한 군력을 키웠습니다. 903년 조정을 장악하고 소종을 협박해 수도를 낙양으로 옮겼으며, 904년 소종을 암살하고 어린 애종을 세운 뒤 905년 애종의 형제 9명을 참살했습니다. 마침내 907년 주전충은 애종을 퇴위시키고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라 후량을 건국함으로써 당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