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재난, 화재, 철도 사고, 방화 사건

num_of_likes 62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4:59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재난, 화재, 철도 사고, 방화 사건
report
Edit

2003년 2월 18일 대구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지하철 방화 참사. 사망 192명 부상 151명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철도 인명피해를 기록. 부실한 전동차 내장재 미흡한 초기 대응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대표적인 인재(人災). 사고 이후 전국 지하철 안전 시스템과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을 혁신하는 계기가 됨.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2001

[방화범 김대한의 비극적 서막]

대구 지하철 방화범 김대한은 뇌졸중 발병 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며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키웠다.

이는 훗날 참극의 씨앗이 된다.

2003

[전국 지하철 안전 대전환]

정부는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전동차의 가연성 내장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까지 전국 모든 지하철 및 광역철도 차량의 내장재를 불연재로 교체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국내 철도 안전 시스템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조치였다.

대구 지하철은 2005년 4월 1일 전 차량 불연재 개조를 완료했으며, 중앙로역에는 2009년 5월 29일 완전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는 등 전반적인 안전 시설이 대폭 강화되었다.

[매년 잊지 않는 추모]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2월 18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앙로역 내에는 영구적인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 비극을 기억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성지가 되었다.

[방화 계획 실행]

우울증과 뇌졸중으로 세상을 비관하던 김대한이 휘발유를 구입해 대구 도시철도 1호선 1079열차 1호차에 탑승했다.

이미 그는 열흘 전 '불 지르겠다'며 난동을 부릴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중앙로역 방화 및 초기 대피]

오전 9시 53분, 1079열차가 중앙로역 진입 직전, 김대한이 휘발유에 불을 붙여 방화가 발생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을 집어삼켰으나, 열차 정차와 동시에 출입문이 열려 1079호 승객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1079열차 기관사는 화재를 진압하려다 실패하자,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고 대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사령실의 오판과 참사 확산]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화재를 보고했으나, 사령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후속 열차인 1080열차에 '조심해서 진입하라'는 모호한 지시만 내렸다.

이미 연기로 가득 찬 중앙로역으로 1080열차가 진입하며 걷잡을 수 없는 참사가 시작되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인명 피해가 큰 철도 사고로 기록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대형 지하철 화재 참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인재(人災)에 의한 재난 사고 중에서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비극으로 기억된다.

[기관사의 키 탈취 논란]

오전 10시 10분, 1080열차 기관사는 사령실의 지시를 받고 마스터 키를 뽑은 채 일부 승객과 함께 탈출했다.

이는 이후 출입문 미개방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서는 기관사 책임이 아니라고 밝혔다.

[영웅적 권춘섭 역장]

혼란 속에서 1080호 열차에 타고 있던 금호역장 권춘섭은 기지를 발휘, 비상 개방 장치를 조작하여 출입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더 큰 인명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극의 최종 기록]

오후 1시 38분,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으나, 참혹한 결과가 드러났다.

사망 192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였다.

특히 1080호 열차에서만 142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1079호 열차에서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방화범 김대한 체포]

참사 당일, 방화범 김대한은 조광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혼자 죽기 싫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며 충격을 안겼다.

[참사 책임자에 대한 판결]

법원은 방화범 김대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사고 대처 미흡으로 기소된 1080열차 기관사에게 금고 5년, 1079열차 기관사와 관제사에게는 금고 4년 등 관련자들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이에 유족들은 격렬히 항의하며 법정에서 울분을 토했다.

[중앙로역 운행 완전 정상화]

참사로 인해 10개월간 불통되었던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이 완전히 복구되어 정차 운행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전 구간이 사고 10개월여 만에 비로소 완전 정상화되었다.

2004

[방화범 김대한 사망]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진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방화범 김대한은 지병 악화로 인해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비극적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5

[생존자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참사 2주기를 맞아 진행된 생존자 취재에서 다수의 생존자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호흡기 질환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국 사회에 PTSD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3

[권춘섭 역장, 안전 영웅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비상 개방 장치로 승객들을 구출했던 권춘섭 금호역장이 그의 용기 있는 공로를 인정받아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안전의 중요성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