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예술 사조, 문학 사조, 미술 사조, 지적 운동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3:26
18세기 말 서유럽에서 시작된 미술 문학 지적 사조. 이성과 합리에 반발 감성 개성 비현실적 요소를 강조하며 1800~1850년 정점을 찍었다. 산업혁명 시대 사회 변화에 맞서 공동체와 과거 이상을 추구했다. 문학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가져온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1790
[버크, 프랑스혁명 비판]
에드먼드 버크가 저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혁명의 과격함을 비판하며 낭만적 보수주의 사상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국가 체제와 질서는 인민 간의 조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함부로 파괴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점진적 개혁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격변의 시대에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대변했다.
1798
[슐레겔 형제, 잡지 창간]
독일 예나에서 A.W.
슐레겔과 W.
슐레겔 형제가 낭만주의의 중요한 기관지인 《아테네움》지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고 사상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들의 활동은 내면 세계와 자아에 대한 탐구를 강조하며, 당대 지성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영국 낭만주의 시작]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공동으로 《서정가요집》(Lyrical Ballads)을 출간하며 영국 낭만주의의 세계 최초 효시를 알렸다.
이 시집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상상력을 통해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하며, 기존 계몽주의 원리에 강하게 반발하는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제시했다.
1818
[프리드리히 대표작 완성]
독일 낭만주의 미술의 거장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광활하고 숭고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고독과 사색을 표현하며, 낭만주의의 핵심적인 시각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성찰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820
[바이런 사망, 英 낭만주의 쇠퇴]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상징이었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사망하면서 영국의 낭만주의는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바이런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보수화에 반발,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지로 떠나 이상주의를 지키려 했으며,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전하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1827
[들라크루아 대표작 완성]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가 대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격정적인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 극적인 서사로 낭만주의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고전주의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감정과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이 작품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887
[일본 낭만주의 태동]
일본에서 메이지 20년대(1887년경)에 낭만주의가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계몽주의에 이어 인간의 자아를 강조하고 주관적, 이상적, 심정적인 사조를 추구하는 움직임이었다.
인간성 해방과 사상·감정의 자유를 찾으며 현실보다 관념과 감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1888
[모리 오가이, 낭만 문학 개척]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모리 오가이가 낭만적인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며 일본 초기 낭만주의의 맹아를 틔웠다.
그의 작품들은 일본 문학에 새로운 감수성과 사상적 깊이를 불어넣으며, 주관적인 감정과 이상을 탐구하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3
[일본 '분가쿠카이' 활동 시작]
'분가쿠카이(文學界)' 동인들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일본에서 낭만주의가 하나의 확고한 사조로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초기 낭만주의를 이끌며 인간성의 해방과 감정의 자유를 추구하는 문학 운동을 펼쳤다.
이들의 영향은 이후 일본 문학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97
[일본 중기 낭만주의 개화]
'메이지 30년대'에 접어들며 잡지 <묘죠(明星)>를 중심으로 요사노 뎃칸과 아키코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는 일본 낭만주의의 중기를 대표하며, 더욱 심화된 감수성과 독창적인 표현으로 일본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다카야마 조규의 평론 또한 이 시기 낭만주의를 풍성하게 했다.
1907
[일본 후기 낭만주의 형성]
메이지 40년대(1907년경)에 나가이 가후와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새로운 경향의 작가들이 등장하며 일본 낭만주의의 후기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이전 낭만주의의 토대 위에서 더욱 개성적이고 복합적인 내면 세계를 탐구하며, 일본 근대 문학의 다채로운 발전을 이끌었다.
1920
[한국 낭만주의 대두]
1920년대에 한국에서 낭만주의가 대두했다.
동인지 《백조》를 중심으로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 등이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반발하며 개인의 가능성과 창조적 잠재력에 주목했다.
이들은 당시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며 한국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들의 추구는 낭만적 정열이기보다는 낭만적 허무에 빠졌으며,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