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시대
일본 역사 시대, 고대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3:01
- 헤이조쿄 천도와 함께 시작된 일본의 고대 역사 시대. - 천황 중심의 율령국가와 중앙집권 체제 확립을 지향. - 후지와라 씨의 정치적 부침과 황권의 동요가 지속됨. - 불교 기반의 화려한 덴표 문화가 번성 도다이지 대불 조성. - 신라 당 발해 등 주변국과의 활발한 대외 교류와 갈등을 겪음.
- 헤이조쿄 천도
- 신라-일본 외교 관계 악화
- 신라, 모벌군성 축조
- 쇼무 천황 즉위
- 발해와 국교 수립
- 나가야 왕의 변
- 신라, 일본 해군 격퇴
- 후지와라 4형제 천연두 사망
- 후지와라 히로쓰구의 난
- 전국 고쿠분지 건립 칙명
- 도다이지 대불 주조 시작
- 도다이지 대불 개안공양
- 나카마로, 모로에 실각
- 일본, 이토 성 축조
- 나카마로 독재 정권 수립 및 견발해사 파견
- 일본, 신라 정벌용 전함 건조 명령
- 발해,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거절
-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난
- 승려 도쿄, 법왕에 오름
- 도쿄 실각과 고닌 천황 즉위
- 나가오카쿄 천도 시도
- 헤이안쿄 천도와 나라 시대 종언
710
[헤이조쿄 천도]
겐메이 천황이 나라의 헤이조쿄로 천도하며 일본 고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주도한 이 천도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율령국가 체제를 확립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이로써 84년간의 나라 시대가 시작되었다.
716
[견당사 파견 시작]
당나라에 아베 나카마로, 기비 마키비, 겐보 등의 견당사가 파견되어 선진 문물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덴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720
[신라-일본 외교 관계 악화]
아스카 시대부터 이어진 신라와 일본의 우호 관계가 꺾이며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일본은 다자이후에 온 신라 사신을 돌려보내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722
[신라, 모벌군성 축조]
신라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경주 동남쪽 요충지에 모벌군성을 축조했다.
둘레 약 6.8km에 3만 9천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방어 시설로, 일본의 위협에 대한 신라의 단호한 대응을 보여준다.
723
[삼세일신법 시행]
전대부터 누적된 농민 부담과 사회 불안을 해소하고 재원을 확보하고자, 개간을 장려하는 삼세일신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율령국가 기반 강화를 위한 시도였다.
724
[쇼무 천황 즉위]
몬무 천황의 아들 쇼무 천황이 즉위하며 새로운 황실의 시대가 열렸다.
이와 함께 후지와라 후히토의 네 아들이 정계에 진출하며 후지와라 씨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727
[발해와 국교 수립]
일본이 신라, 당나라와 통교를 긴밀히 하던 중,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발해와도 국교를 수립했다.
이는 동북아시아 외교 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729
[나가야 왕의 변]
후지와라 4형제가 정계 최고직에 오른 나가야 왕을 참소하여 자결로 몰아넣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후히토의 딸 고묘시를 신하 최초의 황후로 추대하여 후지와라 씨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731
[신라, 일본 해군 격퇴]
신라가 동쪽 해안을 습격한 일본 병선 300척을 격퇴하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백관에게 수레 쇠뇌 사격 훈련을 관람하게 하는 등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737
[후지와라 4형제 천연두 사망]
정권을 쥐었던 후지와라 4형제가 천연두로 모두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황족 출신의 다치바나 모로에가 새로운 정권의 중심이 되었다.
740
[후지와라 히로쓰구의 난]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에 불만을 품은 후지와라 히로쓰구가 규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중앙 정권의 동요가 심해져 쇼무 천황이 여러 곳으로 천도를 반복하는 결과를 낳았다.
741
[전국 고쿠분지 건립 칙명]
잦은 천도와 역병, 천재지변으로 사회 불안이 고조되자, 쇼무 천황은 진호국가 사상에 따라 전국에 고쿠분지를 건립하라는 칙명을 내려 불교의 힘으로 국가의 안정을 기원했다.
742
[신라, 일본 사신 불수용]
경덕왕 원년, 일본에서 사신이 왔으나 신라는 오만하고 무례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양국 간의 외교적 긴장 상태를 더욱 분명히 보여주었다.
743
[도다이지 대불 주조 시작]
쇼무 천황의 명령으로 국가 안정을 위한 불교적 염원이 담긴 도다이지 대불 주조가 시작되었다.
이 대불은 후일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 중 하나로 기록될 대역사였다.
752
[도다이지 대불 개안공양]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도다이지 대불이 마침내 완성되어, 고켄 천황과 쇼무 상황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개안공양식이 거행되었다.
이는 나라 시대 불교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753
[신라, 일본 사신 재차 거부]
신라는 오만하고 무례한 일본 사신을 또다시 접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일본 사신들은 자신들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신라 왕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755
[나카마로, 모로에 실각]
고묘 황후의 신임을 얻은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강력한 시비추타이를 조직하여, 기존 정권의 다치바나 모로에를 실각시키며 후지와라 씨의 재집권 기반을 다졌다.
756
[일본, 이토 성 축조]
일본은 신라 정벌을 목적으로 기타큐슈에 견고한 이토 성을 축조했다.
주선사와 무기 제조 공장까지 갖춘 이곳은 대규모 병참기지로서 신라 침공 계획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다.
757
[나카마로 독재 정권 수립 및 견발해사 파견]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다치바나 나라마로를 배제하고 준닌 천황을 옹립하여 독재적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는 신라 견제를 위해 발해에 첫 견발해사를 파견하며 외교적 다변화를 꾀했다.
759
[일본, 신라 정벌용 전함 건조 명령]
일본은 3년 후인 762년을 목표로 4개 지역에 걸쳐 500척의 전함을 건조하도록 명령하며 신라 정벌 계획을 본격화했다.
동시에 발해에도 사신을 추가 파견하여 협력을 모색했다.
761
[일본, 신라어 교육 소년 징발]
일본은 신라 정벌에 대비하여 미노국과 무사시국에서 20명씩, 총 40명의 소년을 징발하여 신라어 교육을 시작했다.
이는 침공 계획의 세부적인 준비 단계를 보여준다.
762
[발해,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거절]
일본은 고구려 왕실 후손을 단장으로 발해에 견발해사를 보냈으나, 발해는 무관 대신 문관을 파견하는 것으로 일본의 신라 침공 협력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이로써 일본의 신라 정벌 계획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
764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난]
승려 도쿄의 부상에 반발한 후지와라 나카마로(에미 오시카쓰)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사했다.
이 사건으로 준닌 천황이 폐위되고 고켄 상황이 쇼토쿠 천황으로 다시 즉위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765
[도쿄, 다이조다이진선사 임명]
쇼토쿠 천황의 총애를 받던 승려 도쿄가 다이조다이진선사(太政大臣禅師)에 임명되며, 조정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766
[승려 도쿄, 법왕에 오름]
도쿄는 법왕(法王)의 지위에 오르고 일족을 고위 관직에 임명하는 등 불교적 기반 위에서 권세를 휘둘렀다.
사이다이지를 조영하며 불교 정치의 정점을 찍었다.
770
[도쿄 실각과 고닌 천황 즉위]
우사 하치만 궁 신탁 조작 시도가 실패하고 쇼토쿠 천황이 사망하자, 승려 도쿄는 실각했다.
이후 덴무 천황계가 아닌 덴지 천황계의 고닌 천황이 즉위하며 황실 계보에 큰 변화가 생겼다.
780
[무쓰국 에미시 반란]
고닌 천황의 제정 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무쓰국에서 고레하리 아자마로가 반란을 일으키는 등 도호쿠 지방의 에미시 저항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중앙의 통치에 어려움을 주었다.
784
[나가오카쿄 천도 시도]
간무 천황은 지나치게 강대해진 사원·신사 세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야마시로국 나가오카에 새로운 도성을 축성하려 했다.
그러나 공사 책임자 암살과 친동생의 자결 사건 등 불길한 징조가 잇따랐다.
794
[헤이안쿄 천도와 나라 시대 종언]
간무 천황이 나가오카쿄의 불운한 사건들을 뒤로하고 야마시로국 헤이안쿄에 새로운 도성을 축조하며 천도했다.
이로써 84년간 지속된 나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일본은 새로운 헤이안 시대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