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가)
소설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1:09:03
김훈은 날카롭고 절제된 문체로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입니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과 깊이 있는 통찰은 그의 작품세계에 녹아들어 독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특히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 소설을 통해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48
[소설가 김훈 탄생]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광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6·25 전쟁 후 잿더미 속에서 홀로 높게 솟아있던 소방서 망루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장래 희망으로 ‘소방수’를 적기도 했다.
1960
1963
1966
[휘문고등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무협지 원고를 대필하며 글쓰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1968
[고려대 영문과 편입, 《난중일기》에 매료]
대학교 2학년 때 바이런과 셸리에 심취해 정치외교학과 학업을 중단하고 2년 뒤 고려대학교 영문과 2학년으로 편입했다.
이 시기, 현재의 부인 이연화를 만났고, 도서관에서 《난중일기》를 읽고 이순신의 '사실에 입각한 리얼리스트 정신'에 깊이 매료되었다.
1970
1973
[학업 중단 및 언론인 시작]
군 제대 후 병장 무렵, 아버지의 사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여동생의 학업을 위해 자신은 고려대학교를 중퇴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같은 해 한국일보에 입사하며 사회부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따 임용고사에 전국 2등으로 합격하기도 했다.).
1974
[소설가 황석영 담당 기자]
한국일보 재직 중, 당시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하던 소설가 황석영의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소설 구상에 막히면 잠적하는 황석영을 찾아다니며 연재를 돕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1980
[전두환 미화 기사 작성]
한국일보 재직 시절, 신군부의 언론 탄압 속에서 전두환 대통령 출마를 앞두고 그의 일대기를 미화하는 기사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을 공동 작성했다.
이 일은 훗날 그에게 큰 수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언론사들을 위협하여 신군부에 유리한 편향 보도를 강요했고, 주요 언론사들은 모두 이와 같은 왜곡된 미화 기사를 내보내던 시기였다. 김훈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대엔 내가 그걸 안 하면 누군가가 해야 됐어요. 어느 신문사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내 손목으로 그 짓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 죄는 피할 수가 없는 거죠"라고 자책감을 드러냈고, 이 일에 대한 수치심으로 1989년 한국일보를 퇴사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겨레21》 대담에서는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고 보안사에게 말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986
['문학기행' 연재 시작]
한국일보에서 박래부 기자와 함께 〈문학기행-명작의 무대〉를 3년간 연재하기 시작했다.
작가와 동행하며 작품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기록하는 기획으로,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후에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으로 발간되었다.
1989
[한국일보 퇴사]
마흔두 살의 나이로 한국일보를 퇴사하고 2년간 고정된 직업과 수입 없이 지냈다.
이 기간 동안 《월간미술》 등에 수필을 연재하며 수필집 《선택과 옹호》(1991)와 《풍경과 상처》(1994)의 초석을 다졌다.
1990
[조정래 소송 동행]
소설가 조정래가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소송에 휘말렸을 때, 검찰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러 가는 조정래를 검사실 문 앞까지 동행하며 굳건한 지지를 보낸 유일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1991
1994
[《시사저널》 사회부장]
계열사인 주간지 《시사저널》에 입사하여 사회부장을 역임했으며, 후에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등 요직을 거쳤다.
[문단 데뷔작 발표]
47세의 나이로 문예지 《문학동네》 창간호와 1995년 봄호에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8
1999
[한국일보 재입사 및 '자전거 답사' 연재]
한국일보에 편집위원으로 재입사하여〈김훈의 우리 땅 자전거 답사〉를 연재했다.
이 연재는 후에 수필집 《자전거 여행》으로 발간되어 생태, 지리, 역사를 아우르는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자신의 자전거에 ‘풍륜(風輪)’이라는 애칭을 붙였으며, 《자전거 여행》의 인세로 자전거 할부값을 갚겠다고 공언했다.
2000
[비하 발언 및 조선일보 옹호 논란]
《한겨레21》 대담에서 남성우월주의, 민중예술 경멸, 재벌 세습 옹호, '조선일보 극찬' 등의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안티조선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여서 그의 조선일보 옹호 발언은 더욱 큰 파장을 불렀고, 결국 《시사저널》 편집국장직을 3개월 만에 내려놓게 되었다.
대담에서 "여성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한 것",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 "조선일보는 가장 우수한 신문"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이 논란으로 《시사저널》의 한 기자가 항의성 사직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인터뷰에서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해 "남자라는 종족이 지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그렇게 만들어놨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 퇴사]
《한겨레21》 대담에서 불거진 논란의 여파로, 《시사저널》 편집국장직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2001
[《칼의 노래》 집필 시작]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을 다룬 두 번째 장편소설 《칼의 노래》 집필을 시작하여 단 두 달 만에 탈고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었다.
[《칼의 노래》 출간]
탈고한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인문학상 수상 및 밀리언셀러 기록]
《칼의 노래》로 제3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안티조선 운동으로 여러 작가들이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수상을 택하며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칼의 노래》는 2007년까지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2000년 조선일보 최장집 교수 왜곡보도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안티조선 운동이 펼쳐지던 때, 황석영, 공선옥 등 여러 작가들이 조선일보 주최의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훈은 수상을 받아 논란이 되었다. 그는 수상 인터뷰에서 2000년 <한겨레21> 대담에서의 조선일보 옹호 발언을 "전광석화처럼 결정했다"고 말하며, 타협할 수 없는 것과는 타협하지 않았고 아내와 아이들도 자신을 지지해줬다고 밝혔다.
2002
2003
2004
[이상문학상 수상 및 전업 작가 활동]
단편소설 〈화장〉으로 제2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역량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이 시기 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과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2005
2007
[《남한산성》 발표 및 대산문학상 수상]
청나라 침략과 인조의 치욕을 다룬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제1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역사 소설의 거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8
[소방관 문집 편집 참여]
평소 깊은 애정을 표현해 온 소방공무원들을 위해 경기도 119소방대원 103명의 현장체험기를 엮은 문집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의 편집을 맡아 재능 기부를 했다.
2014
[세월호 사고 비판 및 추모 활동]
세월호 침몰 사고에 큰 충격을 받고, 사고 책임자들과 당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에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3
['조국 사태' 관련 기고 논란]
《중앙일보》 특별기고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내 새끼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로 진단하며, 조국 전 장관 부부를 그 정점에 있는 인물로 지목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훈은 특별기고에서 서이초 교사 죽음을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으로 규정하며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로 조국 전 장관과 부인"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민들레》 등 일부 매체에서는 그를 '이야기꾼'으로 칭하며, 현실 문제, 특히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구경꾼'의 시선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동학대'와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와 그 부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