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가, 교수, 추상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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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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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교수, 추상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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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국제화를 이끈 거장이다. 동양적 정서와 서구 모더니즘을 융합한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다.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여러 번 경신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산 론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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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김환기 화가 탄생]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1936

[일본 데뷔 및 첫 개인전]

일본 니혼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한 후 도쿄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화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그가 예술가로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이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1946

[서울대 교수 부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부임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고,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신사실파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예술적 입지를 다졌다.

1952

[홍익대 교수 부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한국 미술 교육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1954

[예술원 회원 위촉]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어 한국 미술계의 주요 인사이자 원로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1956

[프랑스로 건너가다]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탐색했다.

1957

[유럽 순회 개인전]

파리, 니스, 브뤼셀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개최하며 유럽 미술계에 한국의 예술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59

[귀국 후 미술계 리더]

유럽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내 미술계의 핵심 리더로 활발히 활동했다.

1963

[상파울로 비엔날레 수상]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국제전 명예상을 수상하고 작품이 현지 현대미술관에 소장되며, 한국 추상미술의 세계적인 위상을 드높였다.

1964

[미국 뉴욕 활동 시작]

수필가인 부인 김향안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한국의 자연과 정서를 담은 전면 점화(點畵) 등 독자적인 추상화풍을 완성하며 예술적 절정을 맞이했다.

1970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 미술계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세계가 국내에서 다시 한번 크게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1974

[김환기 화가 영면]

미국 뉴욕에서 6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으며, 한국 미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2015

2015.10.07 사후 41년

[국내 작가 경매 최고가]

그의 1971년작 <19-Ⅶ-71#209>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 2100만원에 낙찰되며, 당시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이전 최고가였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2019

2019.11.23 사후 45년

[한국 미술품 100억 돌파]

1971년작 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 36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100억 원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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