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내전
내전, 전쟁, 냉전 분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1:38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그리스를 뒤흔든 처절한 내전. 좌우 이념 대결과 강대국 개입이 낳은 비극적 역사. 냉전 시대 최초의 무력 충돌이자 국제 정치의 시험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공산 세력을 격퇴하며 종식. 이념과 민족의 분열이 빚어낸 아픔 속에서 그리스 현대사의 토대 마련.
1943
[좌우 레지스탕스 갈등]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의 그리스 점령으로 권력 공백이 생기자, 좌파 민족해방전선(EAM)과 우파 레지스탕스 간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다.
특히 9월부터 EAM과 다른 그리스 무장단체들 사이에 여러 차례 충돌이 발생하며 내전의 불씨를 지폈다.
1944
[단일 정부 합의]
격화되던 좌우 대립을 잠재우고 그리스 내 단일 정부 구성을 위한 레바논 회담이 열렸다.
이후 9월 카세르타 합의를 통해 좌파 민족해방전선(EAM) 계열 장관 6명이 포함된 단일 정부 형성이 합의되며 일시적인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강대국의 그리스 분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사이에 비밀리에 지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으로 스탈린은 그리스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며, 이는 냉전 초기 강대국들이 다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비극적인 사례로 남았다.
[데케므브리아나 발발]
독일군 철수 후 아테네에서 무장 해제를 요구받은 좌파 민족해방전선(EAM)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켰다.
친독일 협력자 처벌과 군축 요구가 원인이 되었고, 영국군이 지원하는 그리스 헌병의 발포로 28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며 본격적인 내전의 서막을 알렸다.
이 폭동은 33일간 이어졌으나, 결국 좌파 민족해방전선(EAM)이 패배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외국의 내정에 개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1945
[좌익 무장 해제 조약]
데케므브리아나 폭동 이후, 그리스 정부군과 좌파 민족해방전선(EAM) 간에 바르키자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좌파 인민해방군(ELAS)은 부분적으로 무장 해제되었고, 그리스 공산당이 민족해방전선(EAM)을 장악하며 좌익 세력이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1946
[그리스 내전 재개]
바르키자 조약 이후 잠시 소강상태였던 내전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는 그리스 정부군과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의 지원을 받는 그리스 공산당의 무장조직 그리스 민주군이 대립하며 냉전의 첫 무력 충돌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1948
[티토-스탈린 결렬]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간의 결렬은 그리스 내 공산 반군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소련은 이미 지분 협정으로 지원을 철회한 상태였고, 유고슬라비아마저 지원을 중단하며 반군 세력은 와해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49
[그리스 내전 최종 승리]
미국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계획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 정부군이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의 지원을 받던 공산당의 그리스 민주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하며 3년 7개월간 이어진 내전이 막을 내렸다.
이는 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