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 시대

일본 고대사, 고고학 시대, 야마토 시대, 고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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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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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 시대는 3세기 중반부터 7세기 말까지 일본 열도의 고대 국가가 형성된 시기입니다. 전방후원분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지배자들의 권력이 확립되고 야마토 정권이 성장하며 일본을 통합했습니다. 특히 백제 등 한반도 국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불교 한자 유교 등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 문화와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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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의 4세기]

서기 266년부터 413년에 걸쳐 중국 역사 문헌에서 일본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공백의 4세기'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일본의 상세한 내용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헌에 일본 기록이 없어 일본 학계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당시 일본과 교류하던 대방군이 팔왕의 난으로 쇠퇴한 것이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3

[백제-왜 국교 수립]

백제의 근초고왕 재위 21년인 366년에 백제와 왜의 국교가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양국은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며 백제의 선진 문화를 왜에 전파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일본서기』 진구 황후 46년조에 초고왕(肖古王)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이주갑인상에 따라 366년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에는 해당 기록이 빠져 있습니다. 이 시기 유교경전에 밝은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 태자에게 한자와 유교 경전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야마토 정권 출범]

일본 열도에 호족 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출범하며 본격적인 통일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각지에 거대한 고분(전방후원분)을 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3세기 후반, 나라 분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정치체인 야마토 정권이 형성되었으며, 초기 전방후원분도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이는 열도 각 지역의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성립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신라, 왜군 크게 격파]

신라 내물 마립간 때, 왜군이 대규모로 침입하자, 신라는 토함산 아래 허수아비를 세워 적을 유인하고 복병을 활용하여 왜군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왜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건으로, 신라가 전략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수많은 왜군을 물리친 전투입니다.

[신라, 왜의 금성 포위 격퇴]

왜인이 신라의 금성(金城)을 닷새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내물 마립간은 성문을 닫고 농성하며 적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왜군이 퇴각하자 신라군이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건으로, 신라가 수비와 역공 전략을 통해 왜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사례입니다.

4

[왜의 한반도 진출]

4세기 이후, 왜는 한반도에 진출하여 고구려와 싸웠다는 기록이 광개토대왕릉비에 전해집니다.

이 시기 왜는 말(馬)을 도입하고 군마 사육을 시작하며 군사력을 강화했습니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걸쳐 왜군이 한반도의 백제, 신라, 고구려와 싸운 기록이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도래인 유입 급증]

4세기 말부터 6세기 중기까지, 한반도에서 고구려의 남진 정책으로 인한 백제와 가야의 피난민 등 도래인들이 일본 열도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왕실은 이들에게 특혜를 주며 대륙의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기 도래인들은 각종 기술을 전파하며 일본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실권을 장악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은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백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백제 한성 함락]

고구려 장수왕의 군대가 백제 한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했습니다.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며 위기를 맞았고, 이 사건은 백제와 왜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 사건은 백제의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으며, 백제 왕족과 귀족 일부가 왜로 건너갔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5

[스슌 천황 암살 (592)]

야마토 정권의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소가씨 일족의 수장 소가노 우마코가 스슌 천황을 암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소가씨의 권력 독점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스슌 천황 암살 이후 소가노 이나메, 우마코, 에미시, 이루카 등 소가씨 일족에 의한 정치가 약 반세기 동안 이어졌습니다.

[왜5왕, 중국에 외교 시도]

5세기 초, 왜국은 중국 진(晉)나라에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왜5왕'(찬, 진, 제, 흥, 무)이 연달아 중국에 사자를 보내 외교 관계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왜국의 국제적 지위 확립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특히 왜왕 무(武, 유랴쿠 천황으로 추정)는 478년에 황제에게 상표문을 올려 조상 대대로 왜의 국토를 통일하고 한반도의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등 6국을 지배하는 대장군 자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백제-왜, 친밀한 교류]

백제 무령왕은 왜의 게이타이 천황에게 '스다하치만 동경'을 선물하며 친밀한 우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오경박사 단양이와 고안무를 파견하여 백제의 선진 문화를 왜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스다하치만 동경은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현존하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513년 오경박사 단양이, 516년 고안무가 파견되었습니다.

[이와이의 난 발생 (527)]

쓰쿠시의 국조 이와이가 신라와 내통하며 왜군의 한반도 침공을 저지하려 했던 반란 사건입니다.

이는 야마토 정권의 한반도 출병에 대한 지역 호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사건으로, 이 시대 북부 규슈 세력이 아직 야마토 왕권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백제, 일본에 불교 전파]

백제 성왕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불상과 불경을 전달하며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이는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진 세계 최초의 기록적인 사건이며, 고훈 시대와 아스카 시대를 구분 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조정에서는 불교 수용을 두고 소가노 이나메와 모노노베노 오코시 등 호족들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일부 기록에는 552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제, 불교 물품 대거 전달]

백제 성왕은 달솔 노리사치계 등을 일본에 파견하여 석가불금동상 1구, 번개(장엄한 깃발)와 경론 여러 권을 보냈습니다.

이와 함께 사원 건설을 위한 학자와 기술자, 의사, 음악가까지 대규모로 파견하여 불교 문화 정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538년 불교 전파 이후 일본 내 불교 수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백제가 일본의 불교 발전을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번개는 그 장엄함이 『일본서기』에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6

[전방후원분 시대 종말]

6세기 말, 일본 각지에서 전방후원분 축조가 거의 동시에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야마토 정권의 중앙 및 지방 통치 조직이 확립되어 더욱 강력한 고대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됩니다.

전방후원분 대신 7세기 이후에는 방분(方墳)이나 원분(円墳)이 주로 만들어졌으며, 왕의 무덤은 특별히 팔각분으로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7세기 이후를 '종말기'라고 부릅니다.

[을사의 변, 소가씨 몰락 (645)]

고교쿠 천황 4년, 소가씨 일족이 독점하던 정권을 종식시킨 '을사의 변'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가씨의 약 반세기에 걸친 정치가 막을 내리고, 야마토 정권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을사의 변은 다이카 개신으로 이어지며 일본의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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