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소설가, 교수, 사회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8:48:58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학가 사회운동가. 일제강점기 출생 한국전쟁 후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 후 본격적인 문학 활동 시작. 삶의 허무에서 시대 비판 현실 투쟁으로 문학적 전환을 겪으며 방대한 작품 세계 구축. 특히 연작시 《만인보》는 한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짐.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말년 성추행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1933
[시대의 아픔 속 탄생]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태어났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으며 문학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52
[10년 승려 생활 시작]
한국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일본 조동종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일초'라는 법명을 받고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여러 사찰을 오가며 참선과 방랑을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하며 문학의 기반을 다졌다.
1958
[문단 데뷔와 주필 활동]
조지훈, 장만영, 서정주 등 당대 거장들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폐결핵〉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같은 해 《불교신문》의 초대 주필을 맡으며 언론 활동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시들은 허무와 절망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었다.
1960
1962
[승복 벗고 문학으로]
10년간의 승려 생활을 마무리하고 환속하여 본격적으로 시작(詩作) 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후 그의 문학은 더욱 깊어지고 확장된다.
1964
[《금강고등공민학교》 설립]
단순히 시를 쓰는 것을 넘어, 교육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금강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며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74
[문학적 전환점]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하며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투쟁 의지를 담는 후기 문학 세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점을 맞았다.
같은 해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1983
[이상화 교수와 결혼]
14년 연하의 이상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와 결혼하며 인생의 새로운 동반자를 맞이했다.
이는 그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6
[《만인보》 대장정 시작]
무려 25년간 4001편에 달하는 인물들을 담아낸 대규모 연작시 《만인보》의 간행을 시작했다.
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작업으로, 그의 문학적 역량과 집념을 보여주는 세계최초급 기록적인 사실이다.
이듬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 등을 맡으며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8
1994
[경기대 국문과 교수 부임]
경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도 힘쓰기 시작했다.
이후 단국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단에 서며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2002
2005
[세계적 작가로 부상]
노르웨이 국제문학제에서 비에른손 훈장을 받으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이미 20여 개국에 번역되어 세계 독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었다.
2006
[스웨덴 시카다상 수상]
스웨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시카다상을 수상하며 동아시아 문학계에 대한 기여와 그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7
[그리핀 시인상 평생공로]
아일랜드 그리핀 시인상 평생공로상과 미국 노던 캘리포니아 북 어워즈를 수상하며 그의 평생에 걸친 문학적 업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예를 안았다.
2010
[25년 대작 《만인보》 완간]
무려 25년간의 대장정을 거쳐 총 30권, 4001편의 인물을 담은 기념비적인 연작시 《만인보》를 마침내 완간했다.
이는 그의 문학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성취로 기록될 세계 최대 규모의 시집이다.
2018
[최영미 시인 성추행 폭로]
최영미 시인의 '괴물' 발표 이후, 고은 시인의 과거 성추행 의혹이 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러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이 이어지며 그의 문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최영미 시인은 1993년경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자신의 바지 지퍼를 열고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하며 '만져달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박진성 시인 역시 2008년 대학 강연 뒤풀이에서 고은 시인이 여성의 신체 부위를 더듬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고은 시인은 3월 2일 영국 출판사를 통해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6년 문학 활동 은퇴]
1952년부터 이어져 온 66년간의 문학 활동을 2018년 3월을 기점으로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성추행 의혹 논란과 맞물리며 그의 만년은 불명예로 얼룩졌다.
[명예훼손 소송 제기]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그리고 언론사 등을 상대로 10억 7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 공방에 돌입했다.
2019
[성추행 의혹 1심 패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영미 시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고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최 시인의 글 내용과 법정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제보 동기와 경위 등을 따져보면 허위라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박진성 시인에 대해서는 1천만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2심 항소 기각, 패소]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 역시 고은 시인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를 기각하며, 1심과 동일하게 고은 시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그의 법적 공방은 2심에서도 패소로 이어졌다.
[손배소 대법원 상고 포기]
고은 시인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성추행 의혹 관련 손해배상 소송 패소 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로써 그의 오랜 문학 인생은 불명예스러운 논란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