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미술관, 박물관, 문화유산 보존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9:18
-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 -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포함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여 한국 문화유산의 보고로 손꼽힘. - 오랜 기간 무료 전시로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며 현재는 DDP에서 간송문화전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있음.
1938
[대한민국 최초 개관]
간송 전형필 선생이 한국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보화각'을 세웠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자 미술관으로, 일제강점기 속에서 민족 정신을 지키려는 그의 굳건한 의지와 함께 우리 문화유산 보존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입니다.
1962
[간송 전형필 선생 서거]
평생을 바쳐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했던 간송 전형필 선생이 갑작스럽게 서거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간송미술관의 운영 방식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66
[미술관 체제 개편]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의 서거 이후, 그의 장남 전성우와 차남 전영우가 주도하고 혜곡 최순우 같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과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체제로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이로써 간송의 방대한 수집품들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영우, 최완수 등이 실무를 맡아 간송의 수집품들을 정리하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971
[일반 대중 공개 시작]
수년간의 정리와 연구 끝에, 간송미술관은 드디어 소장품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전시회는 '겸재전'이었으며, 이후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시민들에게 무료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선보이는 전통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국 문화유산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무료 일반 공개를 2014년도까지 이어갔습니다.
2000
[대중적 인지도 급상승]
2000년대 말부터 우리 문화를 찾는 대중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간송미술관의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주말에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5시간 이상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5
[DDP 간송문화전 시작]
간송미술관 본관의 봄/가을 무료 일반 공개가 2014년을 끝으로 중단된 후, 미술관은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문화전'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관 공간을 넘어 현대적인 전시 환경에서 간송의 위대한 유산을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이자, 대중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