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중국 왕조,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55
북송 멸망 후 강왕 조구가 남쪽으로 천도하여 재건한 중국 왕조(1127년 건국). 1127년부터 1279년까지 약 150년간 존속했습니다. 금나라 및 몽골 제국과의 대립 속에서도 강남 경제의 눈부신 활성화와 고도의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화폐 발행 해상 무역 발전 등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했으며 선종 불교가 일본으로 전파되는 등 주변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44년에 걸친 몽골과의 전쟁 끝에 1279년 최종 멸망했습니다.
1126
[정강의 변 발생 및 북송 멸망]
여진족 금나라에 의해 북송의 수도 개봉부가 함락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가 사로잡히며 북송이 멸망했습니다. 이는 남송 건국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126년, 여진족 금나라 군대에 의해 북송의 수도 개봉부가 함락되었습니다. 북송의 휘종과 흠종 두 황제는 금나라로 끌려가는 '정강의 변'을 겪었고, 이로 인해 북송 왕조는 멸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남송이 강남으로 천도하여 재건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127
[남송 건국 및 송 고종 즉위]
북송 멸망 후, 흠종의 동생 강왕 조구가 남쪽으로 피신하여 강녕부(임안)에서 황제(고종)로 즉위하며 송나라를 재흥하고 남송을 건국했습니다.
1127년,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흠종의 동생 강왕 조구가 남쪽으로 도피하여 강녕부(훗날의 임안, 현 항저우)에서 황제에 올라 송나라를 재건했습니다. 이로써 장강 이남을 기반으로 하는 남송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1140
[진회 집권과 악비 피살]
재상 진회가 주전론을 누르고 금나라와 화평을 맺었으며, 권력을 장악한 후 주전론자들을 탄압하여 악비 장군을 살해하고 한세충을 은거시켰습니다.
송 고종 재위 중 진회가 재상으로 취임하며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금나라와의 전쟁 대신 화평을 주장하며 이를 관철시켰고, 전쟁을 주장하던 악비, 한세충 등의 군벌 세력을 탄압했습니다. 특히, 애국적인 장군 악비를 살해하고 한세충을 강제로 은거시켜 군의 지휘권을 조정으로 되돌렸습니다.
1161
[금 해릉왕의 남송 침공과 피살]
금나라 해릉왕이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으나, 그의 폭정으로 인해 금나라 황족 완안옹이 반란을 일으켜 해릉왕은 군중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진회 사후, 금나라의 제4대 황제 해릉왕이 남송을 대대적으로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해릉왕은 권력 확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여 민심을 잃었고, 금나라 황족 완안옹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해릉왕은 군중에서 살해되었고, 완안옹이 금 세종으로 즉위하며 남송과 화평을 맺었습니다.
1162
[송 고종 퇴위 및 효종 즉위]
송 고종이 퇴위하고 양자인 조신이 황제(효종)로 즉위했습니다. 효종은 금 세종과 더불어 당대 명군으로 꼽혔습니다.
1162년, 송 고종이 스스로 물러나 태상황이 되었고, 그의 양자인 조신이 황제(송 효종)로 즉위했습니다. 효종은 북쪽의 금나라 세종과 함께 각자의 왕조에서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며 평화와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1175
[효종의 개혁정치와 남송의 번영]
효종은 불필요한 관리를 줄이고 지폐 남발을 억제했으며, 농촌 경제 회복과 강남 경제 활성화 등 여러 개혁을 추진하여 남송의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송 효종은 재위 기간 동안 국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불필요한 관리 수를 줄이고, 당시 남발 조짐을 보이던 지폐(회자) 발행을 절제했습니다. 또한 농촌 체력 회복과 강남 경제의 활성화를 목표로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남송이 번영을 구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189
[송 효종 퇴위 및 광종 즉위]
효종이 퇴위하고 조돈이 황제(광종)로 즉위했으나, 광종은 황후 이씨의 말에 좌우되는 우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189년, 송 효종이 상황으로 물러나고 그의 아들 조돈이 황제(송 광종)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광종은 선대 황제와 달리 우둔한 성품으로 황후 이씨의 말에만 귀 기울여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1194
[송 광종 퇴위와 한탁주 부상]
광종의 무능에 불만을 품은 조여우와 한탁주 등에 의해 광종이 강제로 퇴위당했고, 이를 계기로 한탁주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1194년, 송 광종의 우둔한 통치에 불만을 품은 종실 재상 조여우와 한탁주 등의 주도로 광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태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탁주가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196
[한탁주의 경원의 당금]
권력을 장악한 한탁주가 자신을 반대하는 조여우 등을 축출하고,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을 위학으로 탄압하는 '경원의 당금'을 일으켰습니다.
광종 퇴위 이후 권력을 장악한 한탁주는 1195년 자신에게 비협조적이던 조여우를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이듬해인 1196년에는 조여우 편에 섰던 주필대, 주희(주자) 등 59명을 금고형에 처하고 성리학(도학)을 위학으로 규정하여 탄압하는 '경원의 당금'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1207
[개희북벌 실패와 한탁주 피살]
권력을 유지하던 한탁주가 금나라를 공격하는 개희북벌을 감행했으나 참패했고, 금나라의 요구에 의해 사미원에 의해 살해되어 그의 머리가 금나라로 보내졌습니다.
10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던 한탁주는 금나라의 약화를 보고 권력 강화를 위해 '개희북벌'을 감행했으나, 남송군의 약체화로 인해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금나라가 화평 조건으로 한탁주의 머리를 요구하자, 예부시랑 사미원에 의해 1207년 한탁주는 살해되었고, 그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져 금나라로 보내졌습니다.
1233
[몽골 제국의 금나라 수도 개봉부 함락]
사미원이 사망한 해, 북쪽의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개봉부를 함락시키며 금나라의 멸망을 임박하게 만들었습니다.
1233년, 사미원이 사망한 직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던 북쪽의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개봉부를 함락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금나라는 사실상 존속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최후의 황제 애종은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1234
[금나라 완전 멸망]
몽골군과 송나라군이 협력하여 남쪽으로 도망친 금나라 최후의 황제 애종을 자결로 몰고 가면서 금나라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1234년 2월, 몽골 제국은 송나라군과 협력하여 남쪽으로 피신한 금나라의 최후 황제 애종을 자결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금나라 왕조는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단평의 입락과 몽골-남송 전쟁 발발]
송나라군이 몽골과의 조약을 위반하고 북상하여 낙양과 개봉을 점령(단평의 입락)했고, 이에 몽골이 남송 침공을 결정하며 44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234년 6월, 금나라 멸망 후 송나라군이 몽골과의 조약을 어기고 북상하여 옛 수도인 낙양과 개봉을 점령하는 '단평의 입락'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몽골은 1235년 2월 쿠릴타이에서 남송 침공을 결정하며, 1279년 남송 멸망까지 44년간 이어지는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세계적인 제국이던 몽골과의 가장 길고 치열한 전쟁 중 하나였습니다.
1241
[몽골 1차 침공과 오고타이 칸 사망]
1235년 몽골의 1차 침공으로 성도, 양양성, 황주 등이 함락되었으나, 남송 맹공의 반격과 몽골 오고타이 칸 사망으로 전쟁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1235년 10월 성도, 이듬해 3월 양양성, 1237년 황주까지 몽골군이 진출하며 남송은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남송의 명장 맹공이 양양성 등을 탈환하며 반격했고, 1241년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자 몽골과 송나라 사이의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1259
[몽골 2차 침공과 몽케 칸 사망]
1258년 몽케 칸이 남송을 2차 침공했으나, 조어성을 5개월간 포위하던 중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전쟁이 다시 중단되었습니다.
1253년 운남 지역의 대리국을 점령한 몽골 제국은 1258년 몽케 칸이 직접 남송을 2차 침공했습니다. 몽케 칸은 오늘날의 중경시에 있었던 조어성을 5개월 동안 포위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고 1259년 전염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로 인해 몽골군의 공격은 다시 중단되었고, 쿠빌라이 칸 역시 가사도와의 밀약 후 퇴각했습니다.
1260
[재상 가사도의 집권]
몽골군을 격퇴한 영웅으로 환영받던 가사도가 재상이 되어 15년간 남송 정권을 장악하며 교묘한 정치수완과 농정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몽케 칸 사망 이후 무창을 공격하던 쿠빌라이 칸을 밀약으로 퇴각시킨 가사도는 몽골 격퇴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재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이후 15년에 걸쳐 남송 정권의 전권을 장악하고 공전법 등의 농정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교묘한 정치 수완으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1276
1276년, 몽골 제국의 장군 바얀에 의해 남송의 수도 임안이 점령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남송은 사실상 멸망 상태에 이르렀으며, 일부 군인과 관료들은 어린 황자를 데리고 남쪽으로 도피하여 철저 항전을 계속했습니다.
1279
[애산 전투와 남송 완전 멸망]
광주만 애산에서 장세걸, 육수부 등 남송 잔존 세력이 원나라군에게 격멸되었고, 이로써 남송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1279년, 남송의 잔존 세력이 광주만 애산에서 원나라군에게 최후의 격멸을 당했습니다. 장세걸, 육수부 등의 군인과 관료들은 어린 황자를 옹립하고 철저히 항전했으나 결국 패배했으며, 이로써 송나라는 몽골 제국(원나라)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