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

무장, 군인, 강하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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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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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군인, 강하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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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는 후한 말 형주 유표 휘하의 강하태수로 삼국시대 주요 인물인 손견을 전사시키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입니다. 약 10년간 손책과 손권 삼부자의 끈질긴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뛰어난 방어 능력을 지녔지만 잔혹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부하 감녕을 냉대하고 예형을 죽여 악명을 떨쳤습니다. 결국 감녕의 배신과 손권의 대규모 공격에 맞서다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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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손견의 최후를 맞이한 황조]

유표의 명을 받고 형주로 침공한 손견을 막아섰으나 패배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손견이 황조를 쫓아 현산으로 올라오자 매복한 궁수의 화살에 손견이 맞아 사망하며 황조는 손견의 형주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최초 손견을 전사시킨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반동탁 연합군이 분열하여 원술과 원소가 서로 싸웠다. 유표는 원소와 손잡은 탓에 원술이 손견을 시켜 형주로 쳐들어왔다. 황조가 요격했지만 번성과 등성 사이에서 격파당하고 현산으로 달아났다. 손견이 한수를 건너 유표의 거점인 양양성을 포위한 채 황조를 쫓아 현산으로 올라왔다가 매복한 궁수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양양 전투).

198

[폭언으로 살해당한 예형]

황조는 글을 잘 쓰는 예형을 우대했지만, 몽충 선상 파티에서 예형이 황조에게 심한 쌍욕을 날리자 격노하여 그를 즉시 살해하라는 명을 내렸다.

아들 황역이 말렸으나 이미 늦었고, 황조는 뒤늦게 후회했다.

이 사건은 후세에도 널리 회자되며 황조에게 악명을 안겨주었다.

황조의 신세를 지고 있던 예형을 죽였다. 원래 예형은 조조에서 유표를 거쳐 하구에 주둔하던 황조에게 와있었는데 글을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는 등 정갈하게 잘 썼으므로 황조가 그 손을 잡으며 ‘황조가 말하고 싶은 마음 속의 생각을 정확히 그대로 쓴다’고 말할 정도로 우대하였다. 어느 날 몽충(蒙衝)에서 선상 파티를 크게 열어 예형도 참석했는데 그 말이 불손하였다. 황조가 부끄러워 나무라자 되레 주시하며 “노인 시체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라고 쌍욕을 날렸다. 황조가 크게 노하여 편형을 부과하려하자 예형은 더 욕을 퍼부었다. 완전히 뚜껑이 열린 황조가 사형을 명하니 평소 예형을 싫어하던 주부가 즉시 형을 집행하였다. 이전부터 예형과 친했던 큰아들 황역이 황급히 맨발로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황조 역시 후회하여 후하게 장사지냈다.

199

[손책의 복수전, 강하 유린]

손책이 거짓 동맹으로 유훈의 여강을 빼앗은 후, 강하까지 침공해 들어왔다.

황조의 아들 황역이 5,000명의 병력으로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황조의 처자식이 인질로 잡히고, 유표가 증원한 군대 또한 큰 피해를 입는 등 강하가 심하게 유린당했다.

여강태수 유훈이 양주를 잠식해가던 손책의 거짓 동맹에 속아 여강을 뺏기고 서새산의 유기까지 밀려나 유표에게 급히 원병을 청하였다. 황역이 5,000명을 데리고 달려갔지만 반전하지 못하고 강하군 사이현까지 손책에게 유린당하였다. 황조의 처자식이 붙잡히고 유표가 증원한 한희와 조카 유호 등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때 손분, 주유, 여범, 정보, 손권, 한당, 황개, 동습 등이 참전하였다.

203

[손권의 첫 침공, 감녕의 활약]

손책의 뒤를 이은 손권이 강하를 침범했다.

황조의 수군은 큰 피해를 입고 추격당했으나, 부하 감녕이 오나라 장수 능조를 활로 쏴 죽이는 맹활약으로 더 큰 위기를 면했다.

결국 손권은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손책 사후 그 뒤를 이은 손권이 강하를 침범하였다. 황조의 수군이 깨지고 추격당했는데 부하 감녕이 파적교위였던 오나라 장수 능조를 활로 쏴 죽이는 등 분전하여 더 큰 위기를 면하였다. 손권은 성은 정복하지 못하고 산월 문제로 인해 돌아갔다.

207

[손권의 2차 침공 격퇴]

손권이 다시 강하를 침공했으나, 황조는 이번에도 손권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손권은 강하를 점령하지 못하고 단지 주민들을 사로잡아가는 데 그쳤다.

그동안 황조도 시상을 몇 번 찔렀으며 손권군의 서성과 주유가 공을 올렸다.

207년 손권이 또 넘어왔는데 이번에도 황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람들만 잡아갔다. 그동안 황조도 시상(柴桑, 지금의 장시성 주장시)을 몇 번 찔렀으며 손권군의 서성과 주유가 공을 올렸다.

208

[황조의 최후, 손권에게 효수되다]

황조에게 냉대받아 손권에게 귀순한 감녕의 건의에 따라 손권이 대규모 병력으로 강하를 침공했다.

황조는 몽충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동습과 능통의 결사대가 닻줄을 끊어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진취의 수군마저 여몽에게 격파당하자 황조는 도주했으나, 결국 손권의 기병 풍칙에게 붙잡혀 효수당했다.

이로써 황조와 손씨 가문의 악연은 막을 내렸다.

208년 봄 손권이 감녕의 건의에 따라 또 침입하였다. 앞서 감녕은 황조가 자신을 보통 사람으로 대하는 데에 불만을 품고 동오로 귀순했었다. 황조는 몽충을 쌍으로 면구에 배치하여 수비하였다. 종려나무로 만든 큰 밧줄로 맨 돌을 닻으로 삼아 고정시키고 그 위에서 1,000명의 노수가 화살을 비처럼 쏟아부으니 손권군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편장군 동습과 별부사마 능통이 각각 결사대 100인을 이끌고 갑옷을 껴입은 채 큰 배를 몰아 돌진하였다. 능통이 황조의 장수 장석을 베고 동습이 양 닻줄을 끊어 대오를 흩트리는 바람에 손권의 대군이 수륙병진해왔다. 황조가 진취의 수군을 출전시켰으나 선두에서 돌격하던 평북도위 여몽에게 머리를 베였다. 손권군이 그 기세로 성까지 맹렬하게 공격하였다. 황조가 밤을 타 도주하다가 손권의 기병 풍칙에게 잡혀 효수당했다. 후임 태수로는 유종과의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난 유표의 장남 유기가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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