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 (촉한)
정치인, 삼국시대, 촉한, 문인, 인물비평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33
촉한 초기의 정치가 허정은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낸 인물입니다. 뛰어난 인물 비평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동탁 정권 시기에도 중책을 맡았습니다. 혼란기를 피해 여러 지역을 떠돌며 고난을 겪었으나 결국 유비의 등용으로 촉한의 핵심 관료가 됩니다. 유비가 황제에 오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촉한 최고위직인 사도에 임명됩니다. 위나라의 화흠 왕랑 등 당대 명사들과 평생 교유를 이어갔으며 유명한 진지를 양육하기도 했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인품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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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 삼국 시대 촉한 초기의 정치가 허정이 출생했다.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49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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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은 사촌동생 허소와 함께 당대 인물들의 인물비평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허소가 군의 공조가 된 후 허정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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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 유익의 추천으로 효렴에 천거되었고, 상서랑으로 임명되며 중앙 관직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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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사후 하진과 십상시 주살로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자, 동탁은 주비를 이부상서로 임명하고 허정과 함께 인사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순상, 한융, 진기, 한복 등 여러 인재를 중앙 요직이나 지방 장관으로 임명했다.
파군태수에 임명되었지만, 임지로 부임하지 않고 조정에 남아 어사중승을 보좌하는 직책을 수행하며 중앙 정무에 계속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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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비의 죽음과 피신]
반동탁 연합군에 가담한 인재들을 임용했다는 이유로 동료 주비가 살해되자, 허정은 공주에게로 피신하며 난민 생활을 시작했다.
허정 본인이 임용한 관리들이 반동탁 연합군에 가담하자, 동탁은 이부상서 주비를 살해했다. 허정 또한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예주자사 공주에게로 달아났고, 이후 진의, 허공, 왕랑 등 여러 인물에게 몸을 의탁하며 난세를 피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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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에 손책이 세력을 확장하자, 허정은 난세를 피해 남쪽의 교주로 달아났다. 그곳에서 교주를 통치하던 사섭의 예우를 받았고, 원휘 등은 허정의 인물됨을 칭찬하는 편지를 보냈다. 조조가 보낸 사절 장상이 허정을 초빙하려 했으나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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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교주에 보낸 사절 장상의 초빙을 거절한 허정은 이후 유장에게 초빙되어 파군과 광한군의 태수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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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년, 촉군태수 왕상이 사망하자, 허정이 그의 뒤를 이어 촉군태수직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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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군에 항복 시도]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자 성벽을 넘어 항복하려다 발각되어 붙잡혔고, 이로 인해 유비에게 관직 임명을 거부당했다.
214년, 유비가 유장을 공격하여 성도를 포위하자, 허정은 성벽을 넘어 유비군에 항복하려다 발각되어 붙잡혔다. 유장은 그를 해치지 않았으나, 촉 평정 후에도 허정을 관직에 임명하지 않아 한동안 불우한 처지에 놓였다.
215
성도 함락 당시 유비에게 항복하려다 발각된 일로 인해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자, 법정이 유비에게 허정 발탁을 강력히 진언했다. 이에 유비는 허정을 좌장군장사에 임명하여 다시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
219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를 당시 허정은 진군장군을 맡고 있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된 이후에는 태부(太傅)로 봉해지며 그의 통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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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황제 즉위 권유 및 사도 임명]
조비의 위나라 건국 후, 헌제 피살 소문에 유비의 황제 즉위를 권유하고, 유비 즉위 후 사도에 임명되었다.
220년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황제가 되자, 촉에서는 헌제가 살해되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 221년, 허정은 다른 문무백관들과 함께 유비에게 황제에 즉위하도록 강력히 권했고, 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사도(司徒)라는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222
222년, 촉한의 사도 허정이 사망했다. 아들 허흠은 그 이전에 요절했으며, 손자 허유는 후대 상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