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

조선 시대 인물, 서예가, 문신, 시인,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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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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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인물, 서예가, 문신, 시인,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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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천재 서예가이자 문신입니다. 명나라 명필가들도 왕희지와 안진경에 견줄 만큼 극찬한 독창적인 석봉체를 완성하여 조선 서예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안평대군 김구 양사언과 함께 조선의 4대 서예가로 꼽히며 어머니와의 유명한 떡 썰기 일화처럼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선조 임금도 그의 글씨를 늘 감상하고 찬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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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

[한호 출생]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한호가 경기도 개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점술가로부터 '옥토끼가 동방에 태어나 낙양의 종이 가격이 높아지겠다'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1543년 11월 15일 경기도 개성부에서 한언공과 백인당 백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자 한 점술가가 '옥토끼가 동방에 태어났으니, 낙양의 종이 가격이 높아지겠다. 이 아이는 반드시 글씨를 잘 쓰는 것으로 이름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1545

[3세에 아버지 한언공을 여읨]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한언공을 여의고 조부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부마저 여의면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습니다.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에게 글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관직이 없었고 사후에 한석봉이 원종공신에 녹훈된 공로로 증 호조 참판 겸 의금부 동지사에 추증되었습니다.

1554

[영계 신희남의 문하에 입문]

열두 살에 영계 신희남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우기 시작하며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2세에 영계 신희남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신희남은 한호를 자신의 스승 청송 성수침, 휴암 백인걸에게 추천했습니다.

1557

[조부 한세관을 여읨]

열다섯 살에 조부 한세관을 여의면서 집안의 살림이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15세에 조부마저 여의었습니다. 조부 한세관은 1557년 12월 21일에 사망했습니다. 이후 집안의 살림이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1562

[성수침과 백인걸의 문하에서 수학]

신희남의 추천으로 성수침과 백인걸의 문하를 드나들며 20세까지 글과 성리학 학문을 익혔습니다.

신희남의 추천으로 청송 성수침, 휴암 백인걸의 문하에 출입하며 20세까지 글과 성리학 학문을 배웠습니다.

1567

[식년과 진사시 3등 합격]

스물다섯 살에 식년과 진사시에 3등으로 합격하며 관직에 나설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567년(명종 22) 25세 때 식년과 진사시(進士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1572

[명나라 원접사 수행원으로 파견]

명나라에 파견되는 원접사 임당 정유길의 수행원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며 외교 경험을 쌓았습니다.

1572년(선조 5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원접사(遠接使)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의 수행원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581

[주청사 수행원으로 명나라 방문]

주청사의 수행원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며 외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1581년 주청사의 수행원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582

[율곡 이이 수행원으로 명나라 재방문]

귀국 후 율곡 이이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다시 수행원으로 선발되어 연경을 방문했습니다.

귀국 후 1582년(선조 15년) 율곡 이이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다시 수행원으로 선발되어 명나라 연경을 다녀왔습니다.

1583

[와서별제 및 사헌부 감찰 역임]

와서별제와 사헌부 감찰을 시작으로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며 명필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1583년(선조 16) 와서별제(瓦署別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고, 통례원 인의, 사포서사포, 북부 사도, 사재감 주부, 사헌부 감찰, 한성부 판관, 호조·형조·공조의 정랑, 종친부 전부, 찬의 등을 역임했습니다.

1588

[주부 역임]

주부 직책을 맡아 관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588년 주부(主簿)를 지냈습니다.

1591

[명나라 사신 접견 및 광국원종공신 녹훈]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 원접사의 사자관이 되어 이들을 접견했으며, 광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1591년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 원접사의 사자관(寫字官)이 되어 이들을 접견했습니다. 같은 해 광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1592

[임진왜란 중 선조 의주 파천 수행 및 사헌부감찰 임명]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의 어가가 의주로 파천할 때 수행했으며, 그해 8월 사헌부감찰에 임명되었습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는 선조의 어가가 의주로 파천할 때 수행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사보로 왕의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문서관계의 일을 맡았으며, 그해 8월 사헌부감찰이 되었습니다.

1593

[명나라 주청사 최립의 수행원으로 연경 방문]

정랑으로 재직 중 명나라에 주청사로 파견되는 최립의 수행원이 되어 연경을 방문했습니다.

정랑으로 재직 중 1593년 11월 10일 명나라에 주청사로 파견되는 최립의 수행원이 되어 명나라 연경을 방문, 이듬해 초 귀국하였습니다.

1599

[세자익위사 사어 및 가평군수 역임]

천거로 세자익위사 사어에 제수되었고, 이후 가평군수로 임명되어 지방 행정을 맡았습니다.

1599년(선조 32년) 천거로 세자익위사 사어(司禦)에 제수되었습니다. 이후 가평군수(加平君守)가 되었습니다.

1600

[경기도 가평군수 임기 시작]

경기도 가평군수로 임명되어 1604년까지 직책을 수행하며 지방 행정에 기여했습니다.

1600년 2월 29일부터 경기도 가평군수 임기가 시작되어 1604년 2월 29일까지 재직했습니다.

1601

[사헌부 탄핵과 명나라 동지사 수행]

차역과 세금 징수 문제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선조의 비호로 무마되었으며, 같은 해 명나라 동지사 수행원으로 연경에 다녀왔습니다.

1601년 차역(差役)과 세금 징수를 잘 처리하지 못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선조 임금이 추고하고 무마시켰습니다. 같은 해 명나라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서장관 이정귀의 수행원으로 연경에 다녀왔습니다.

1604

[경기도 가평군수 임기 만료]

1600년부터 수행하던 경기도 가평군수 임기가 만료되었습니다.

1604년 2월 29일에 경기도 가평군수 임기가 종료되었습니다.

[경기도 흡곡현령 임기 시작]

가평군수 임기 만료와 동시에 경기도 흡곡현령으로 부임했습니다.

1604년 2월 29일 경기도 흡곡현령으로 부임하여 1604년 3월 18일까지 재직했습니다.

[경기도 흡곡현령 임기 만료 및 파직]

흡곡현령 임기를 마쳤으나, 공신 녹권 필사 과정에서 고의로 글씨를 잘못 썼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습니다.

1604년 3월 18일 경기도 흡곡현령 임기가 종료되었습니다. 공신 녹권(錄券)을 필사할 때 한성부로 소환되어 녹권 필사를 맡았으나,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고 고의로 글씨를 잘못썼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습니다.

[존숭도감 서사관 임명 및 아마 하사]

존숭도감 서사관이 되어 존숭 도감의 글씨를 필사한 공로로 어린 말 1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해 11월 존숭도감 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이 되어 존숭 도감(尊崇都監)의 글씨를 필사한 공로로 아마(어린 말) 1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605

[선무 및 호성원종공신 1등 녹훈]

선무원종공신 1등과 호성원종공신 1등에 동시에 녹훈되며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605년 4월 16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같은 날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습니다.

[한호 사망]

조선 중기 문신이자 명필인 한호가 향년 63세로 사망했습니다. 사후 증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습니다.

1605년 7월 1일에 향년 63세로 사망하였습니다. 원종공신에 책록되어 사후 증직으로 증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습니다. 황해도 금천군 안신리 석봉산 해좌원에 매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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