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염
인물, 관료, 후한, 삼국시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26
최염은 후한 말 혼란 속에서도 공명정대함을 잃지 않은 강직한 관료입니다. 젊은 시절 학문을 닦으며 지혜를 쌓았고 원소와 조조라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도 민심을 살피고 원칙을 지키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비의 태자 책봉을 관철시키는 등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의 곧은 성품이 빌미가 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의 바른 인품과 대의명분은 후대에 귀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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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에서 학자로]
젊은 시절 검술을 익혔으나, 23세에 병사로 출사한 후 학문의 길을 택해 《논어》와 《한시》를 탐독하며 문인의 소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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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제자가 되다]
29세가 되던 해, 당시 최고의 학자 정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깊이 있는 학문을 배웠다.
이는 훗날 그가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이 되었다.
[황건적 피해 유랑]
정현에게 배운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황건적이 쳐들어와 피신했으나, 식량난으로 정현은 제자들을 떠나보냈다.
최염은 도적들을 피해 4년간 청주, 서주, 연주, 예주 등을 떠돌며 고난을 겪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독서와 음악으로 심신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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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가신이 되다]
대장군 원소의 초빙으로 그의 가신이 된 최염은, 원소의 병사들이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막아 세우며 그릇된 행동에 대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이후 기도위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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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 앞둔 직언]
조조와의 결전(관도대전)을 앞두고 원소가 남하하자, 최염은 황제가 허도에 있으니 국경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며 강하게 간언했다.
그러나 원소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참패하는 결과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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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사후 투옥되다]
원소 사후, 그의 아들 원담과 원상이 후계 다툼을 벌이며 최염을 초빙했으나, 최염은 병을 핑계로 모두 거절했다.
이에 분노한 원상은 최염을 투옥했으나, 다른 인물들의 간언으로 곧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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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직언가가 되다]
기주를 점령한 조조가 최염을 초빙해 별가로 삼았다.
조조가 기주 인구를 보고 '30만 병사를 모을 수 있겠다!'며 기뻐하자, 최염은 '백성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직언하며 조조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이후 그는 조비의 보좌역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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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 태자 책봉에 기여]
조조가 위공이 된 후, 최염은 상서로서 인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조조가 총애하던 조식을 태자로 삼으려 하자, 그는 적통인 조비를 태자로 세울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조조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이 공로로 중위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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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언으로 생을 마치다]
조조가 위왕이 된 후, 최염이 추천한 자의 글 때문에 참소당해 투옥되었다.
옥중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자, 조조는 결국 그에게 자결을 명했고, 최염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조의 위왕 즉위 후, 최염이 천거한 양훈이 조조를 찬미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글에 최염의 비판적 시각이 담겼다는 참언이 들어왔고, 조조는 이를 빌미로 최염을 투옥했다. 옥중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최염의 모습에 조조가 불쾌감을 느껴 자결을 명하면서, 강직했던 그의 생은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