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참
군인, 정치가, 공신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21
한나라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넘버 투 공신 조참! 그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습니다. 전장에서 칠십여 군데 부상을 입을 정도로 용맹했지만 나라를 다스릴 때는 소하의 기틀을 그대로 따르는 소규조수의 지혜를 발휘했죠. 황로지학을 통해 백성들에게 안정을 선사하며 혼란했던 한나라 초기를 안정시킨 숨은 영웅입니다.
BC 3C
[고조 유방 거병 동참]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패현의 관리였던 조참은 소하와 함께 패령에게 망명자들을 모으도록 조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망탕산에 숨어있던 유방이 패현으로 내려왔고, 패령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패현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유방이 패령 직책을 사양하자, 조참과 소하는 그를 설득하여 결국 패령의 자리를 맡게 했고, 조참은 중연으로서 유방의 거병에 합류했습니다.
[반진 전쟁 초기 활약]
유방의 거병 후, 조참은 호릉과 방여를 공격하고 진나라 장수들을 격파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원척과 항보를 공격할 때는 성벽에 '가장 먼저 성에 올라' 오대부로 승진하는 등, 유방 군대의 선봉에서 맹활약하며 진나라 정벌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진나라 수도 함락 기여]
조참은 진나라의 주요 장수 삼천수 이유를 격파하고, 고조 유방을 따라 무관과 요관을 돌파하며 진나라 수도 함양까지 진격했습니다.
마침내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진나라 멸망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한왕 책봉과 삼진 평정]
고조 유방이 항우에게서 한왕으로 봉해지자, 조참은 건성후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삼진 정벌에 나서 옹나라와의 싸움에서 맹활약하며 옹왕 장함을 속이고 하변, 고도, 옹, 태 등 요충지를 공격했습니다.
장함의 아우 장평을 격파하고 함양을 함몰시키는 등, 한나라의 삼진 평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공로로 영진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팽성 함락전 참여]
고조 유방을 따라 임진을 건넌 조참은 서초의 장수 용저와 항타를 정도에서 무찌르며 진격했습니다.
이어서 탕과 소를 함락시키고, 마침내 서초의 수도 팽성까지 함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팽성 대패 이후 수습]
팽성 대회전에서 한나라가 대패한 후, 조참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반을 일으킨 왕무, 정처, 주천후 등을 무찌르며 한나라 군의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이후 고조 유방이 항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던 형양으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신의 북벌 동행]
팽성 대회전 후 한신의 북벌에 종군하여, 서위왕 위표 공격의 선봉에 섰습니다.
위장 손속을 무찌르고 안읍에서 왕양을 사로잡았으며, 위표를 곡양에서 격파하고 동원까지 추격하여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위나라의 서울 평양을 점령하고 위표의 가족까지 사로잡아 서위나라를 완전히 평정했습니다.
이 공로로 평양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한신과 조·대나라 평정]
한신의 조나라 공격에 종군하여, 대나라의 상국 하열의 군대를 격파하고 하열을 죽였습니다.
또한 조나라의 별장 척 장군을 포위하여 죽이는 등, 한신이 조나라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용저 격파 및 제나라 평정]
한신이 제나라 공격을 준비하자 우승상으로서 그에게 배속되어 역하에서 제나라 군을 무찌르고 수도 임치까지 진입했습니다.
제북군과 그 속현들을 평정하는 중, 초나라의 구원군으로 온 용저의 군대를 상가밀에서 격파하고 용저를 직접 베었으며, 제나라 왕 전광과 주요 장수들을 사로잡아 제나라 평정을 완료했습니다.
[한나라 건국과 귀환]
항우가 패망하고 고조 유방이 황제가 되자, 조참은 한나라로 돌아와 재상 인수를 반납했습니다.
그는 전장에서 '칠십여 군데 창상'을 입을 정도로 큰 공을 세워 '공신 서열 2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고조 6년(기원전 201년)에는 제나라가 복국되자 다시 제나라의 상국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해에 공신들을 후작으로 봉하면서 평양에 1만 630호를 받아 새로 하동군의 평양 땅을 영토로 삼는 평양후가 되었고, 이전의 봉읍은 제했습니다.
[반란 진압 공헌]
제나라 상국으로 재직 중, 진희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진희의 장수 장춘을 무찔렀습니다.
이어서 영포의 난이 발발하자 제도혜왕을 따라 보병, 기병, 전차병 12만 명을 이끌고 고조 유방과 합류하여 영포를 무찌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남쪽으로 기 지역까지 진군한 후, 돌아와 죽읍, 상, 소, 유 등 여러 지역을 평정하는 등 한나라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BC 2C
[제나라 어진 재상 재임]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 조참은 제후국의 상국 직위가 폐지되면서 제나라 승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제도혜왕과 혼란한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혜로운 이들을 찾았고, 교서의 갑공이 황로지학에 능하다는 소식을 듣자 그를 청하여 모셨습니다.
갑공의 조언에 따라 '청정(淸靜)'의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들이 스스로 안정되도록 이끌었고, 9년간 재임하며 제나라에서 '어진 재상'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소하의 후임 상국 발탁]
혜제 2년(기원전 193년), 한나라의 상국 소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조참은 자신이 그 후임이 될 것을 직감하고 짐을 꾸려 준비했습니다.
예상대로 황제의 사자가 찾아와 상국으로 임명되었고, 그는 떠나기 전 후임 승상에게 감옥과 형장을 함부로 요란하게 다루지 말 것을 당부하며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소규조수’의 지혜 발휘]
한나라 상국으로 부임한 조참은 전임 소하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법을 일절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는 군과 제후국의 관리 중 어눌해도 중후한 인물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고, 잔꾀를 부리거나 말이 많은 자들을 멀리했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며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백성들이 스스로 안정되도록 간섭을 최소화하는 '청정(淸靜)'의 도를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혜제가 이를 의아하게 여기자, 그는 소하의 법이 이미 완벽하므로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고, 혜제도 그의 깊은 지혜에 수긍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소하가 법을 만들고 조참이 이를 따른다는 뜻의 '소규조수'(簫規曹隨)라는 고사가 유래했습니다.
[조참의 서거]
상국으로 재임한 지 3년 만인 기원전 190년, 조참은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시호는 '의'(懿)로 정해졌으며, 그는 한나라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백성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준 현명한 재상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