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탄

정치인, 장군, 삼국 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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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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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장군, 삼국 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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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의 충신이자 강직한 인물로 시작했으나 사마씨의 전횡에 맞서 대규모 반란 회남 3반의 마지막을 장식한 비운의 장군 제갈탄. 그는 수춘성에서 사마소의 26만 대군에 맞서 최후까지 저항하며 강인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충직한 부하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희생 속에서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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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위 명제 사후 복직 및 양주자사 임명]

위 명제가 죽고 정시 원년, 제갈탄은 복직되어 어사중승상서, 양주자사, 소무장군이 되었다.

위 명제가 죽고, 정시 원년 제갈탄과 하후현 등은 복직되었다. 제갈탄은 어사중승상서가 되고, 지방으로 나가 양주자사가 되었으며 소무장군이 더해졌다.

251

[왕릉의 난 진압 후 대오 전선 사령관 임명]

왕릉의 모반 토벌 후, 제갈탄은 진동장군, 도독양주제군사가 되었고 산양정후에 봉해지며 대오 전선 사령관이 되었다.

왕릉이 모반을 일으키려 하고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자, 제갈탄은 진동장군·가절·도독양주제군사가 되었으며 산양정후에 봉해졌다.

252

[오나라 제갈각의 동흥성 축조]

오나라 태부 제갈각이 전략적 요충지인 동흥에 성을 쌓아 위나라와의 국경 방어를 강화했다.

가평 4년(252년) 10월, 오나라 태부 제갈각이 동흥에 성을 쌓았다.

[동흥 전투 패배와 관직 강등]

제갈탄은 사마사의 명령으로 동흥을 공격했으나, 오나라 정봉의 기습 공격에 대패했다. 이 패배로 인해 그는 진남장군으로 관직이 맞바뀌었다.

12월, 위나라 실권자 사마사는 대대적으로 오나라를 공격하여 제갈탄에게 호준 등과 함께 동흥을 공격하게 했다. 23일, 위 군대는 오나라 장수 정봉의 공격을 받아 선두 부대가 격파당했으며, 제갈탄이 패배했다는 말을 듣고 왕창과 관구검은 영채를 불태우고 도주하여 오나라 정벌은 실패로 끝났다. 제갈탄은 이 패배로 인해 관구검과 관직이 맞바뀌어 진남장군·도독예주제군사가 되었다.

255

[관구검·문흠의 난 진압 협력]

관구검과 문흠이 사마씨에 반발하여 모반을 일으키고 제갈탄에게 합류를 요청했으나, 제갈탄은 이를 거부하고 사자를 목 베어 그들의 모반을 천하에 알렸다.

정원 2년(255년) 정월 12일, 관구검과 문흠은 사마씨의 전횡에 분노하여 모반을 일으키고 제갈탄에게 사자를 보내 예주의 선비와 백성을 불렀다. 제갈탄은 사자를 목 베고 관구검과 문흠이 모반하였음을 천하에 알렸다.

[오나라 유찬 격파]

관구검·문흠의 난 진압 과정에서, 오나라의 원군을 추격하여 좌장군 유찬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다.

관구검과 문흠의 난 당시, 제갈탄은 장반을 파견하여 오나라 승상 손준이 이끄는 원군을 추격하여 오나라 좌장군 유찬의 목을 베어 서울로 보냈고, 이로써 인수와 부절을 손에 넣었다.

[오나라 손준의 퇴각]

오나라 승상 손준이 문흠의 투항을 받고 수춘성을 치려 했으나, 제갈탄이 수춘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도주했다.

오나라 승상 손준은 북상하여 19일에 문흠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수춘성을 치려 했으나, 제갈탄이 수춘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도주했다.

[진동대장군 승진 및 고평후 봉작]

관구검·문흠의 난 진압과 오나라 격퇴에 대한 공로로, 진동대장군으로 임명되고 고평후에 봉해져 식읍 3500호를 받았다.

관구검과 문흠이 격파당한 후 제갈탄은 수춘에 도착했는데, 수춘에 있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주했다. 윤달 29일, 진동(대)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고평후에 봉해져 식읍 3500호를 받았으며, 7월에는 정동대장군으로 전임되었다.

[정동대장군 전임]

진동대장군 임명에 이어, 같은 해 7월 정동대장군으로 전임하며 위나라 동부 전선의 핵심 지휘관이 되었다.

고평후에 봉해져 식읍 3500호를 받았고, 7월에는 정동대장군으로 전임되었다.

256

[오나라 침공 대비 병력 증강 요청]

오나라의 침공 기미가 보이자, 제갈탄은 병력 10만 명 증강과 회하에 성을 쌓아 회남을 방어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사마씨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감로 원년(256년), 오나라의 침공 기미가 있었다. 조정에서는 제갈탄의 병마로 막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제갈탄은 10만 명을 더 청했고, 또 회하에 임하여 성을 쌓아 도적을 막기를 구해 회남을 지키고자 했다.

257

[회남 반란 및 악침 살해]

사마씨의 견제 속에서 사공으로 임명되자, 제갈탄은 이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양주자사 악침을 살해하며 회남 3반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감로 2년(257년), 사공으로 임명한다는 문서가 도착했다. 제갈탄은 이에 응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켜 양주자사 악침을 죽였다. 《위진세어》에 따르면, 사마소가 집권한 후 가충이 제갈탄을 분노하게 하여 속히 행동하게 하도록 권했고, 그래서 제갈탄은 사공으로 임명되었다. 제갈탄은 자신이 왕창보다 먼저 삼공에 오른 것을 괴이하게 여겼으며, 악침이 병사를 받게 되었으므로 좌우의 수백 명만 거느리고 바로 양주로 가 악침을 죽였다. 《위말전》에 따르면, 가충은 제갈탄과 만나 당시 선양의 여론을 떠 보았고, 제갈탄은 가충을 매도하며 위 황실을 위해 죽겠다고 답했다.

[반란 준비 및 오나라 구원 요청]

반란 후 둔전병 및 양주 신병 10여 만 명을 모아 수춘성을 지키며 1년분 식량을 확보했다. 아들 제갈정을 오나라에 인질로 보내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다.

제갈탄은 회남, 회북의 둔전병 10여 만 명과, 양주의 신병 4, 5만 명을 모으고, 1년분 식량을 준비하여 성문을 걸어닫고 지켰다. 장사 오강에게 아들 제갈정을 오나라에 인질로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오나라 주이 원군의 실패와 죽음]

오나라는 수춘성 바깥에서 제갈탄을 돕기 위해 장수 주이에게 군사를 주었으나, 주이는 위나라 군대에 여러 번 패배하고 결국 실권자 손침에게 처형당했다.

오나라는 또 주이에게 여러 차례 군사를 주어 바깥에서 돕게 했다. 그러나 주이는 주태, 석포, 호열 등에게 여러 번 지고, 손침에게 이유 없이 죽었다.

[사마소의 대규모 토벌군 출병]

제갈탄의 반란이 커지자, 사마소는 직접 26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수춘성을 포위하고 외부의 오나라 지원군에 대비하는 총공세를 펼쳤다.

6월, 황제는 친히 항성에 이르렀고, 사마소는 직접 중외 26만 명을 거느리고 토벌에 나서 회수에 이르렀다. 사마소는 구두에 주둔하고, 왕기와 진건 등은 수춘성을 포위하게 하고, 감군 석포와 연주자사 주태 등은 유군으로 삼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게 했다. 수춘은 당초 매해 비가 내려 회수가 넘쳐 항상 성이 물에 잠겼으므로, 제갈탄은 사마소가 포위망을 쌓는 것을 비웃었다.

[오나라의 대규모 원군 파견 및 관직 제수]

오나라는 제갈탄을 좌도호, 대사도, 표기장군 등으로 임명하고 문흠, 문앙 부자 등 3만 명의 대규모 원군을 수춘성에 파견하여 위나라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성 안으로 진입시켰다.

당시 오나라 제2대 황제 회계왕 손량과 실권자 손침은 제갈탄을 좌도호·가절·대사도·표기장군·청주목·수춘후로 임명하고, 문흠·문앙 부자와 당자, 전역, 전단 등에게 3만의 원군을 딸려 보냈다. 이 군대는 왕기의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성에 들어갔다.

[제갈탄 진영 내분 및 장반·초이 투항]

제갈탄과 문흠은 수춘성 방어 전략을 두고 불화가 심화되었다. 이에 장반과 초이가 죽을 각오로 공격하기를 권했으나 문흠이 버틸 것을 주장했고, 제갈탄이 장반 등을 죽이려 하자 두 사람은 위나라에 투항했다.

문흠 등은 여러 차례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장반과 초이는 곧 손침은 돌아갈 것이므로 아직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을 지금 죽을 각오로 공격하기를 권했으나, 문흠은 버틸 것을 주장하였다. 장반과 초이가 완강하게 권하여 문흠은 화를 내고 제갈탄은 장반 등을 죽이려 했다. 11월, 두 사람은 투항했다.

[오나라 전씨 일족의 위나라 투항]

사마소는 이간책을 써서 오나라 전역의 일족들이 오나라에게 배신당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고, 이에 전역, 전단 등 전씨 일족 전체가 위나라에 투항하며 수춘성의 방어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2월, 사마소가 종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역의 조카로 과거 위나라에 항복한 전휘와 전의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 오나라가 전역을 죽이려 한다고 전하자 전역, 전단 등 전씨 일족은 모조리 위나라에 항복했다.

258

[수춘성 포위 돌파 실패와 대규모 투항]

전씨 일족의 투항 후, 문흠의 제안으로 제갈탄과 함께 수춘성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실패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식량 부족으로 수만 명이 성문을 나와 위나라에 투항했다.

이듬해 정월, 문흠은 전씨 일족들이 모두 투항했으므로 적이 방비가 굳세지 않을 이때 싸울 만하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제갈탄, 당자 등은 그렇게 여겨, 문흠과 함께 수춘성 남쪽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식량이 떨어져 수만 명이 성문을 나와 투항했다.

[문앙의 위나라 투항 및 심리전]

아버지를 잃은 문앙과 문호는 위나라 사마소에게 투항했고, 문앙은 사마소의 명으로 수춘성 주변에서 항복을 권유하여 제갈탄 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접한 문앙은 동생 문호와 함께 성을 넘어 위나라의 실권자 사마소에게 투항했다. 사마소에게 관내후에 봉해진 문앙은 문호와 함께 수춘성 주변을 돌며 항복을 권유했다. 사마소의 형인 사마사의 병을 악화시켜 죽게 만든 인물임을 알고 있던 제갈탄의 병사들은 그가 벼슬을 받은 것을 보고 크게 동요했다.

[제갈탄, 문흠 살해]

식량난이 심화되자 문흠은 북방 사람들을 내보내자고 제안했으나 제갈탄이 거부했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은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제갈탄이 문흠을 살해했다.

문흠이 북방 사람들을 내보내 식량을 아껴 오나라 사람들과 함께 성을 지키고자 했으나, 제갈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래 제갈탄은 문흠과 사이가 나빴는데, 사태가 위급해지자 둘은 더욱 서로 의심을 품어 제갈탄은 문흠을 죽였다.

[수춘성 함락 및 반란 진압]

문앙의 심리전과 지속적인 식량난으로 제갈탄 군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자, 사마소는 2월 20일 총공격을 감행하여 수춘성을 함락시키고 제갈탄의 난을 진압했다.

사마소의 명령으로 정벌군이 일체의 공격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사기가 크게 꺾여 위나라에 항복하는 자가 늘어났다. 이를 본 사마소는 2월 20일 총공격을 가해 수춘성은 함락됐다. 성이 함락되던 날 큰 비가 내려, 제갈탄이 무너지리라고 여긴 포위망은 비로소 무너졌다.

[제갈탄의 죽음과 삼족 멸족]

수춘성이 함락된 후 도주하던 제갈탄은 사마 호분의 부하에게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고, 그의 삼족은 멸족되었다.

제갈탄은 도주하다 대장군 사마 호분의 부하에게 죽었으며, 제갈탄의 삼족은 멸해졌다. 제갈탄 수하에 있던 수백 명은 투항하지 않았으므로 죽었는데, 제갈탄을 위해 죽기를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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