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랑
삼국시대 인물, 위나라 정치가, 장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18
조조에게 길러진 특별한 인연의 소유자로 황제 조예의 깊은 신임을 받음. 능력보다 황제의 총애로 승승장구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함. 선비족 격퇴 촉한 제갈량과의 오장원 대치 등 주요 군사 활동에 참여. 정치적 부침을 겪다 말년에 유방과 손자의 참언으로 결국 파면됨. 《삼국지연의》에서는 오장원 전투에서 제갈량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인물로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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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랑의 탄생]
위나라 정치가 진랑이 태어난 시기로, 병주 신흥군 운중현 출신이며 아명은 아소이다.
그의 어머니 두씨는 조조의 측실이 되었기 때문에 진랑은 조조에게 길러지며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226
[명제 총애로 승승장구]
명제 조예 즉위 후, 진랑은 표기장군 겸 급사중이 되어 황제를 가까이서 모셨다.
명제는 그를 아끼고 아명으로 부르며 두둑한 포상과 수도에 대저택까지 하사했다.
능력에 비해 과도한 황제의 신임 덕분에 그의 재산은 공후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진랑은 명제가 다른 사람의 죄상을 들추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작은 죄에도 처형시키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이를 말리지 않았으며,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명제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233
[선비족 격퇴]
청룡 원년(233년), 선비족 가비능과 보도근에 맞서 싸우던 위나라 장군 소상과 동필이 전사하자, 진랑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선비족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북쪽 사막으로 달아난 선비족은 이후 보도근 휘하의 부족 대인이 항복하며 상황이 정리되었다.
겨울 10월, 보도근 휘하의 부족 대인 호아랑니가 병주로 와 항복하자 진랑은 귀환했다.
234
[제갈량과의 대치]
청룡 2년(234년),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이 양주를 공격하는 대규모 원정을 시작했다.
이에 위나라 명제 조예는 진랑에게 2만 명의 병사를 주어 제갈량에 맞서 싸우게 했다.
이 사건은 삼국시대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인 오장원 전투의 일부이다.
[삼국지연의 속 최후]
인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진랑은 234년 전 장군으로서 오장원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거짓 항복한 정문과 함께 촉나라 진영을 야습하려 했으나, 제갈량의 지략에 간파당해 크게 패배하고 결국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237
[조조우 등과 파면]
경초 2년(237년) 12월, 명제의 측근이자 중서감 유방과 중서령 손자가 진랑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황제에게 참언했다.
이로 인해 진랑은 대장군 조우, 영군장군 하후헌 등과 함께 모든 관직에서 파면당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다.
이때 진랑 등은 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