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군
중국 관료, 삼국시대 인물, 조위 정치가, 법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17
진군은 후한 말기부터 조위 시대에 걸쳐 활약한 뛰어난 관료입니다. 할아버지 진식 아버지 진기와 함께 학식과 명망이 높았습니다. 특히 위나라의 인재 등용 시스템인 구품관인법을 제정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법률가이자 개혁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조조와 조비 모두에게 신뢰받으며 내정과 법제 정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공정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존경받았던 인물입니다.
194
[유비의 서주 영유에 대한 진언]
유비가 서주를 영유하려 하자, 진군은 원술과 여포의 위협을 경고하며 반대했지만, 유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4년, 서주자사 도겸이 죽자 유비가 서주를 영유하려고 했다. 진군은 남쪽의 원술과 서쪽의 여포가 서주를 노리고 있으니 위험하다며 유비에게 반대 의견을 주청했지만, 유비는 진군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198
[조조에게 등용되어 정치적 기반을 다지다]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후 진군을 등용했으며, 이후 진군은 조조의 핵심 인물인 순욱의 사위가 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98년,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뒤 진군을 등용했다. 진군은 조조 휘하에서 서주 지역의 중요한 인물로 활동했으며, 조조의 핵심 책사였던 순욱의 사위가 되며 정치 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214
214년, 진군은 어사중승 직책에 임명되어 위나라 내정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220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구품관인법 제정]
중국 고대 인재 선발 제도의 중요한 전환점인 '구품관인법'을 제정하여 인재 등용의 자의성을 배제하고 법률로 재정비했다.
220년, 진군은 구품관인법을 제정했다. 이는 당시 채용관이나 지방 호족의 자의성이 강했던 인재 등용 제도를 법률로 재정비하여 공정성을 높이고자 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후한에서 위로 이어지는 역성혁명에 대비하여, 후한의 관료들을 위나라에 효과적으로 재등용하고 재분배하기 위한 계산의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비 즉위 후 핵심 관료로 발탁]
조비가 위의 문제로 즉위하자, 진군은 위제국 성립의 공으로 깊은 신뢰를 받으며 상서령과 녹상서사(220-224)에 임명되었고, 곧이어 진군대장군 관직까지 겸직하며 위나라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되었다.
220년 조비가 위의 문제로 즉위하자, 진군은 위제국 성립에 기여한 공로로 조비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다. 그는 상서령과 녹상서사(220-224)에 임명되어 위나라의 핵심 요직을 맡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진군대장군 관직까지 겸직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26
[조비의 유언, 후대 황제 보좌를 위임받다]
조비가 세상을 떠날 때, 진군은 조진, 사마의와 함께 어린 명제(조예)의 후일을 당부받는 고명대신(顧命大臣)이 되었다.
226년, 조비 황제가 임종을 맞으면서 진군은 조진, 사마의와 더불어 명제(조예)를 보좌하고 위나라의 안정을 책임지는 고명대신으로 지명되었다. 이는 진군에 대한 조비의 깊은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26년 12월, 조비 사후 즉위한 조예 명제 시대에도 진군은 계속해서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으며 활약했다. 그는 삼공 중 하나인 사공(司空)의 높은 관직에 올라 위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다.
236
236년, 후한 말기부터 조위 시대에 걸쳐 위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진군이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위나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