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표 (후한)

후한 무장,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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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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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무장,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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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무장. 처음에는 도겸을 섬겼고 이후 유비의 휘하로 들어감. 하지만 유비를 배신하고 여포가 하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특히 장비와의 갈등이 여러 기록에서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루어짐.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의 장인이자 장비와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유비를 배신하는 인물로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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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하후돈과의 일기토 (연의)]

(연의) 193년, 조조가 서주성을 공격하자 조표는 선봉장 하후돈과 일기토를 벌였으나 돌풍이 불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삼국지연의 묘사에 따르면, 193년 서주성 전투 당시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자 조조군의 선봉장 하후돈과 일기토를 붙었으나, 돌연 돌풍이 불어 싸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194

[담에서 조조 요격전 참전]

흥평 원년(194년), 도겸을 섬기던 조표는 유비와 함께 조조군을 요격했으나 패배했다. 이 시기 조표는 조조의 퇴각로를 막는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무제기〉, 〈선주전〉 등에 따르면 흥평 원년(194년),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담(郯)에서 유비와 함께 조조를 요격했으나 격파당했다. 다만 《후한서》 기록과는 일부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비성 배신 및 장비에게 죽음 (연의)]

(연의) 194년, 유비가 원술과 싸울 때 하비성을 수비하던 조표는 장비에게 술 강요를 거부하다 채찍을 맞자, 앙심을 품고 사위 여포를 불러들여 장비를 토벌하려 했으나 장비에게 죽었다.

삼국지연의 묘사에 따르면, 194년 유비가 서주 전투에서 원술과 싸울 때 장비와 함께 하비성 수비를 담당했다. 그러나 장비에게 술을 강요당하자 거절해 채찍을 맞았다. 이에 그날 밤 앙심을 품고 사위 여포를 하비성으로 불러들여 장비를 토벌하려 했으나 장비를 추격하던 중 장비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196

[하비 배신 및 사망 (사적)]

건안 원년(196년), 유비가 원술과 대치 중 조표는 하비를 지키던 장비를 배신하고 여포를 성 안으로 불러들여 유비가 거점을 잃게 만들었다. 조표의 죽음에 대해서는 장비에게 살해당했다는 설과 여포와 내응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건안 원년(196년), 유비가 원술과 대치하고 있는 도중 여포가 하비를 습격하자, 조표는 배반하고 여포를 맞아들였다. 《삼국지》에 인용된 《영웅기》는 두 가지 설을 제시한다. 〈선주전〉에 인용된 설은 장비가 조표를 죽이려 하자 조표가 여포를 불러들여 하비가 함락되었고 장비는 패주했다는 것이다. 〈여포전〉에 인용된 설은 유비의 중랑장 허탐이 여포에게 하비상 조표와 장비가 서로 다투다가 장비가 조표를 죽여 성 안이 혼란에 빠졌다고 고했고, 여포는 서문으로 진격하여 단양병의 내응으로 하비를 점령하고 유비의 처자식과 재산을 노획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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