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패

인물, 장수, 관료,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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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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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패는 후한 말부터 조위 시대까지 활약한 용맹한 장수이자 지략가입니다. 독립 군벌에서 시작해 조조에게 귀순 후 그의 깊은 신임을 얻어 동방 지역 평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조조 조비 조예 삼대에 걸쳐 고위 관직에 오르며 국가의 중요 군사 업무에 자문했고 말년에는 태위를 대행할 정도로 존경받았습니다. 그의 일생은 난세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신념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인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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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아버지 구출 및 동해국 망명]

현의 옥연이던 아버지가 부당한 사형 위기에 처하자, 식객들과 함께 아버지를 구출하고 동해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장패의 아버지 장계는 현의 옥연(獄掾, 죄수를 다루는 관리)이었는데, 태수가 사사로이 사형을 내리는 것에 저항하다가 사로잡혀 관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에 장패는 식객 수십 명을 이끌고 아버지를 구출한 뒤, 함께 동해국으로 망명하여 관의 추적을 피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의협심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초기 일화입니다.

184

[황건적의 난 진압과 관직 임명]

황건적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기도위에 임명되며 군사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장계의 구출 후 동해국으로 망명했던 장패는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자 서주자사 도겸을 따라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공로로 기도위에 임명되어 본격적인 군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89

[서주 지역의 소규모 군벌 형성]

서주 지역에서 소규모 군벌들을 규합하여 총수가 되었고, 계양에 주둔하며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도겸 휘하에서 활약한 후, 장패는 서주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손관, 오돈, 윤례 등 다른 소규모 군벌들과 연합하여 그들의 총수가 되었으며, 계양에 주둔하며 이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성장했습니다.

195

[망명자 수용과 소건 격파]

조조 부장 서흡과 모휘가 반란 실패 후 자신에게 망명하자 이들을 받아주었고, 낭야상 소건을 공격해 격파하며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진궁과 장막이 일으킨 반란에 가담했던 조조의 부장 서흡과 모휘가 반란 실패 후 장패에게 의탁해왔고, 장패는 이들을 보호했습니다. 또한, 서주의 여포에게 굴복했던 낭야상 소건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군수 물자를 빼앗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197

[여포와의 화해 및 조조에 대한 저항]

자신을 공격했던 여포와 화해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조조가 여포를 정벌할 때 여포와 함께 조조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낭야상 소건 격파 소식을 들은 여포가 자신을 공격했으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장패는 여포와 화해했습니다. 이후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기 위해 서주로 진격했을 때, 장패는 여포와 협력하여 조조의 군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습니다.

199

[여포 사후 조조에게 항복과 관직 임명]

여포가 조조에게 패사하자 장패는 조조에게 항복했고, 조조는 그를 낭야상에 임명하고 청주와 서주 일대를 위임하며 중용했습니다.

여포가 서주의 하비성에서 조조에게 패해 죽자, 장패와 그 휘하의 소규모 군벌들은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조는 이들을 모두 용서하고 태수나 국상에 임명하며 회유했습니다. 장패는 낭야상에 임명되었으며, 특히 청주와 서주 일대의 군권을 위임받아 조조의 동방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의리를 지키며 망명자 보호]

조조의 요구에도 자신에게 의탁한 서흡과 모휘를 내놓기를 거부하고 용서를 요청하여 조조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조조는 유비를 통해 장패에게 과거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서흡과 모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장패는 자신에게 의탁한 자를 해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유비를 통해 조조에게 두 사람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조조는 장패의 이러한 의리를 기뻐하여 서흡과 모휘를 태수로 삼았습니다.

[청주 침공 작전 참여]

조조의 명령을 받아 청주를 침공하여 조조의 세력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건안 4년(199년) 8월, 조조는 장패를 비롯한 장수들에게 청주를 침공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조조가 원소와의 관도대전을 준비하면서 후방을 안정시키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였으며, 장패는 이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

[관도 대전 중 후방 교란 활약]

관도 대전 기간에 서주와 청주 군을 이끌고 원소령 청주를 침공하여 조조가 연주 전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조조와 원소의 관도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장패는 자신이 통솔하는 서주와 청주 군대를 이끌고 자주 원소의 지배 아래 있던 청주 지역을 침략했습니다. 이러한 교란 작전은 원소의 후방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조조가 주력 병력을 연주 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5

[원담 멸망 후 충성 맹세]

조조가 원담을 멸망시킨 후 조조를 축하하고, 자신의 자제들과 부장들의 가족을 업으로 이주시켜 충성을 보였습니다.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멸망시키고 북방을 평정하자, 장패는 조조에게 찾아가 축하 인사를 전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자제들과 부장들의 가족들을 조조의 본거지인 업으로 이주시켜 조조에 대한 확고한 충성을 보였습니다. 이는 장패의 안정적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6

[동방 평정 공로와 작위/관직 수여]

동방 지역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해대 지방을 평정하여 열후에 봉해지고 도정후와 위로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원담 멸망 이후에도 장패는 계속해서 동방 지역에 주둔하며 크고 작은 반란들을 진압하고 해대 지방의 안정화에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열후에 봉해졌고, 도정후 작위와 위로장군 관직을 수여받으며 조조 진영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207

[창희 토벌 작전 참여]

우금과 함께 창희를 토벌하는 데 참여하여 조조의 영토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장패는 조조의 명을 받아 우금과 함께 창희를 토벌하는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이 토벌은 조조가 북방을 평정하고 남하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208

[황건 잔당 격파와 서주자사 임명]

하후연과 함께 황건적 잔당 서화를 격파하는 큰 공을 세워 서주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장패는 하후연과 함께 황건적 잔당인 서화 등을 격파하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서주자사에 임명되며 지방의 최고 행정 및 군사 책임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09

[거소 전투에서의 승리]

손권 정벌 작전에 참여하여 거소에서 적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장패는 조조가 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남정했을 때 참전하여, 거소에서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조조의 남방 공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진란 토벌 지원과 한당 격파]

장료의 진란 토벌을 지원하며 우금과 매성을 공격하고, 오나라 장군 한당을 협석에서 격파하여 손권의 구원 시도를 좌절시켰습니다.

건안 14년(209년), 장료가 진란을 토벌할 때 장패는 우금과 함께 매성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후 별도로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장군 한당과 싸워 그를 협석에서 격파했습니다. 이로써 손권이 진란을 구원하러 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장패는 밤중에 손권군을 추격하여 많은 수군을 물에 빠뜨려 죽였고, 결국 손권은 진란을 구원하지 못하게 되어 장료의 진란 토벌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217

[유수구 전투에서의 선봉 활약]

유수구 전투에서 장료와 함께 선봉에 서서 용맹을 떨쳤고, 양위장군과 가절에 임명되었습니다.

장패는 유수구 전투에서 장료와 더불어 선봉에 서서 오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그의 용맹함과 공로를 인정받아 양위장군과 가절(假節)의 권한을 수여받았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하후돈과 함께 거소에 주둔하며 동방 방어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20

[조비 즉위 후 관직 및 작위 승진]

문제(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진동장군과 무안향후가 되었고, 이후 황제가 되자 개양후, 양성후로 작위가 계속 승진했습니다.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장패는 진동장군에 임명되었고, 작위가 올라 무안향후가 되었으며 양주의 제군사를 동독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후 조비가 황제(문제)가 되자 작위는 다시 개양후에 봉해졌다가 양성후로 이봉되는 등, 조위 정권 초기에도 꾸준히 높은 지위와 권한을 유지했습니다.

222

[동포 전투에서의 오군 격파]

조휴와 함께 동포 전투에서 오나라 대장 여범의 군대를 폭풍우를 틈타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장패는 조휴와 함께 동포(동구)에서 오나라 대장 여범이 이끄는 군대가 폭풍우에 휩싸여 혼란스러운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기습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오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224

[중앙 관직 임명과 황제의 신임]

중앙으로 소환되어 집금오와 특진의 지위에 올랐으며, 황제(조비)가 군사 업무에 대해 자주 조언을 구할 정도로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동포 전투 이후, 장패는 중앙으로 소환되어 집금오(執金吾)라는 높은 관직에 임명되었고, 그 지위는 특진(特進)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군사 전문가로서 황제(조비)의 깊은 신임을 받아, 중요한 군사 업무가 있을 때마다 황제가 직접 그의 의견을 물을 정도로 중용되었습니다.

227

[명제 즉위 후 식읍 증가]

명제(조예)가 즉위하자 식읍 5백 호가 추가되어 총 3천 5백 호에 이르는 큰 봉록을 받았습니다.

명제(조예)가 제위에 오르면서 장패는 그 공로와 충성을 인정받아 식읍 5백 호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총 식읍은 3천 5백 호에 이르렀으며, 이는 당시 매우 높은 대우로, 그가 조위 정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줍니다.

230

[태위 대행 직무 수행]

명제(조예)의 동쪽 순행 시 태위를 대행하며 제사를 올리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태화 4년(230년) 8월, 명제(조예)가 동쪽으로 순행하게 되자, 장패는 황제의 명으로 태위(太尉) 직을 대행하며 국가의 중요한 제사를 올리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는 그가 최고위 관료로서 국가 의례에 참여할 만큼 큰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231

[사망 및 위후 시호 추증]

230년 이후에 사망했고, 사후 위후(威侯)의 시호가 추증되었으며 아들 장애가 작위를 계승했습니다.

태화 4년(230년) 이후 장패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공로를 기려 위후(威侯)라는 시호가 추증되었고, 그의 아들 장애(臧乂)가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의 몰년은 최후의 기록이 남아있는 230년 이후로만 추정될 뿐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본 연혁에서는 임의로 231년을 등재해둡니다.

243

243.07 사후 12년

[태조 제묘 앞 정원 안치]

정시 4년 7월, 조진, 조휴 등 고인이 된 명장들과 함께 태조의 제묘 앞 정원에 안치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정시 4년(243년) 7월, 장패는 조진, 조휴, 하후상 등 조위의 명망 높은 고인 된 장수 및 관료들과 함께 태조(조조)의 제묘 앞 정원에 안치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조위 건국에 기여한 공로와 충성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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