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
중국 삼국 시대 인물, 위나라 관료, 서진 관료, 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09
-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청빈한 삶과 깊은 학문으로 위나라 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 유학뿐 아니라 제자백가에도 박식했으며 특히 예의와 율령 정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위나라의 사공 사도 태보 등 최고위 직책을 두루 역임하며 국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서진 건국 후에도 태부(太傅)를 지내며 두 왕조에 걸쳐 중용된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정치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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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사공 취임]
정충이 위나라의 최고위 관직 중 하나인 사공(司空)에 임명되며 명실상부한 고위 관료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미천한 가문 출신임에도 학문적 능력과 청렴함으로 이 자리까지 오르며 그의 뛰어남을 증명했습니다.
256
[위나라 사도 승진]
사공에서 더 높은 직위인 사도(司徒)로 승진하며 위나라의 핵심 권력 중추에 자리했습니다.
이는 그가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의미합니다.
263
[진 문제의 정책 자문 역할]
촉나라 평정 후, 진 문제(사마소)는 가충, 양호 등에게 예의와 율령을 정하게 했는데, 이들이 먼저 정충에게 자문을 구해야만 시행할 정도로 그의 학식과 식견이 깊이 존경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고위 관료를 넘어, 서진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위나라 최고위 태보 임명]
정충이 위나라에서 3공(사공, 사도, 태위)보다도 높은 지위인 태보(太保)에 올랐습니다.
이와 함께 수광후(壽光侯)에 봉해지며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학식과 덕망, 그리고 조정을 장악하는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265
[서진 태부 및 수광공 임명]
위나라가 서진으로 교체된 후, 정충은 서진의 최고위 관직 중 하나인 태부(太傅)에 임명되고 수광공(壽光公)으로 작위가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위나라에 이어 서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하며, 흔들림 없는 그의 지위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73
[무제의 은퇴 요청 거부]
정충은 노환을 이유로 은퇴를 요청했으나, 무제(사마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황제가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중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그는 노년에도 국정에 필요한 인물로 인정받았습니다.
274
[정충의 서거와 추증]
정충이 세상을 떠나자 무제는 그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며 조당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부를 추증하며 '성(成)'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아들이 없어 조카 정휘가 뒤를 이었으며, 그의 학문과 업적은 후세에도 깊이 기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