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조위)
장수, 정치가, 삼국시대, 위나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06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의 기틀을 다진 핵심 인물. 탁월한 외교술과 설득력으로 마등 세력을 조조에게 끌어들이며 관중 지역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 고간 마초 등의 반란을 진압하며 전공을 세운 뛰어난 군사 지휘관. 경조윤 상서 옹주자사 양주자사 등 요직을 역임하며 민심을 수습하고 이민족을 토벌한 유능한 행정가. 위나라의 안정과 확립에 크게 기여한 문무 겸비의 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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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잔당 세력과의 전투에서 조조군 지원]
원소 사후, 원상(袁尙)이 조조를 공격하려 하자, 장기는 종요의 명을 받아 관중의 유력자 마등(馬騰)을 설득했습니다. 마등은 아들 마초와 방덕에게 1만 군사를 주어 조조를 돕게 했고, 이로써 곽원이 죽고 호주천 선우는 조조군에 항복하며 조조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원소(袁紹)가 죽은 후, 원상(袁尙)은 여양(黎陽)에서 조조(曹操)의 공격을 굳게 지키는 한편 하동태수(河東太守) 곽원(郭援)과 병주자사(幷州刺史) 고간(高幹)과 남흉노의 선우(單于)인 호주천(呼廚泉)에게 평양(平陽)을 공격하게 하였으며, 관중(關中) 지방의 군벌들과 연합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장기는 사례교위(司隷校尉) 종요(鍾繇)의 명으로 관중의 유력자인 마등(馬騰)을 설득하였고, 마등은 자신의 아들인 마초(馬超)와 방덕(龐德)에게 1만 군사를 주고 조조를 돕게 하였습니다. 종요는 파견된 원군으로 곽원을 죽였고, 호주천을 조조군에 항복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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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의 반란 진압 및 무시정후 봉작]
고간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기는 의랑(議郞)으로 임명되어 종요와 함께 이를 진압했습니다. 마등을 다시 아군으로 끌어들여 위고를 무찌르고 고간을 형주로 도주하게 만들었으며, 이 공적으로 무시정후(武始亭侯)에 봉해졌습니다.
고간이 반기를 들고 하동(河東)의 관리인 위고(衛固)와 내통하자, 조조는 장기를 의랑(議郞)으로 임명하여 종요와 함께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장기는 마등을 다시 합류시켰고, 위고를 무찌른 뒤 고간을 형주(荊州)로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세워, 장기는 무시정후(武始亭侯)에 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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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의 반란 진압 및 경조윤 승진]
마초와 관중 지방의 군벌들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조조의 명을 받아 화음(華陰)에서 마초를 격파하고 관우(關右) 지방을 평정했습니다. 이후 경조윤(京兆尹)으로 승진하여 달아난 유민들을 불러 모아 진정시키고 현과 읍을 재건하는 데 힘썼습니다.
마초와 관중 지방의 군벌들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장기는 조조의 명령을 받아 화음(華陰)에서 마초를 무찌르고, 관우(關右)를 평정하여 경조윤(京兆尹)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이후 달아난 유민들을 불러 모아 진정시켜 현(縣)과 읍(邑)을 추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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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黄初) 4년(223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