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후한)
후한 관료, 삼국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2:03
후한 말 청렴함과 인자함으로 백성들의 깊은 신망을 얻은 관료. 장거·장순의 난을 평정하고 백만 유민을 구제하는 등 뛰어난 민정 능력을 보였다. 황제 추대를 완강히 거부한 충신이었으나 공손찬과의 끊임없는 대립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의 죽음은 공손찬 몰락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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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 유주목 부임 및 장거·장순의 난 평정]
조정은 유우를 유주목으로 임명하여 장거, 장순의 난을 진압하게 했다. 유우는 은혜와 신의를 바탕으로 사절을 보내 오환을 회유하고 반란 세력에 상을 내리는 등 강경책 대신 온건책을 펼쳐 반란을 성공적으로 평정했다.
유우가 계에 도착하자, 먼저 주둔한 병사들을 물리게 하고 은혜와 신의를 넓게 펼치는 것에 힘썼다. 사절을 보내 이해를 설명하고 장순의 수급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오환의 대인 구력거 등이 유우에게 귀순해 왔으며, 장거, 장순의 무리에게도 상을 내리며 회유책을 펼친 결과 그들은 세력을 잃고 선비에게 달아나다가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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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 대사마로 승진]
장거, 장순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태위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고, 이후 조정을 장악한 동탁에 의해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대사마로 임명되었다.
조정에서는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유우를 태위로 임명하고 양비후로 봉했으나 유우는 이를 사양하고 다른 인물들을 천거하는 겸손함을 보였다. 그 후 조정을 장악한 동탁은 유우를 대사마로 임명했다(중평 6년 9월 을유일, 태위 유우를 대사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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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 황제 추대 제의 완강히 거부]
원소와 한복을 비롯한 제후들이 동탁이 옹립한 헌제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했으나, 유우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발해태수 원소와 기주목 한복을 비롯한 산동의 여러 제장들은 헌제가 동탁이 시해하고 옹립한 괴뢰군주이며 멀리 변방에 유폐되어 존재 의의조차 상실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황실의 웃어른이며 현명하고 인망 높기로 이름난 유우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유우는 이를 참람한 짓으로 여겨 즉위하기를 거부하였다. 원소는 거듭 유우에게 존호를 바쳤으나 유우는 이를 받아들이느니 흉노의 땅으로 달아나 모든 관계를 끊고자 했으므로 결국 원소는 이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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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과의 갈등 격화 및 군사 충돌]
평소 강경책과 약탈로 백성을 괴롭히던 공손찬을 유우가 제지하고 녹봉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자, 공손찬은 대노하여 백성들을 노략질하고 살해하는 등 유우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며 양측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본디 하북에서 장거·장순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손찬은 강경책으로 일관하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공손찬은 조정으로부터 오환과의 싸움을 명을 받고서, 이를 빌미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급급하여 백성들을 노략질하고 마음대로 사병을 늘리며 이로써 심히 강한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유우는 부임한 후 이를 제지하고 백성들을 보호했으므로 공손찬은 유우를 증오하게 되었다. 난이 평정된 뒤에 오환은 모두 국경 밖으로 떠났고, 유우는 조정에 주청하여 각 처의 주둔병들을 파하고 단지 공손찬이 보병과 기병 만 명만을 거느리고 우북평을 지키게 했다. 이에 공손찬은 더욱 유우에게 앙심을 품었으며 양자의 관계는 물과 불처럼 악화되었다. 공손찬은 원소에게 패한 후 유우가 있던 계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그곳에 주둔했다. 유우는 대화를 시도하며 공손찬과 거듭 만나려 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공손찬이 장차 난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한 유우는 공손찬의 군세가 흩어져 있던 틈을 타 선공을 펼쳤으나 유우의 군사 지휘가 서투른데다,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지나치게 신경 썼기 때문에 성을 점령하지 못했다. 도리어 공손찬의 역공에 대패하고 거용으로 퇴각했으나 곧 가족들과 함께 공손찬에게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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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에게 비극적인 죽음]
대립이 격화된 끝에 유우는 공손찬에게 붙잡혔고, 공손찬은 사자를 협박하여 유우에게 원소와 결탁하여 황제를 칭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유우와 그의 가족들을 처형했다.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다.
때마침 조정에서는 단훈을 사자로 보내어 유우와 공손찬의 벼슬을 높였는데, 공손찬은 단훈을 협박하여 유우가 원소와 결탁해 황제로 칭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계의 저자에서 유우 일가족을 처형하게 하고 유우의 머리를 장안으로 보냈다. 백성들은 유우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며, 몇몇 관리들은 일부러 유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공손찬을 비난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전에 관리였던 미돈은 공손찬의 사자에게서 유우의 머리를 빼앗고 장사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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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의 죽음과 공손찬의 몰락]
유우가 죽자 유비 등 많은 이들이 공손찬에게 분노했고, 원소는 유우의 아들을 이용해 공손찬을 공격하며 민심을 잃은 공손찬의 패망을 가속화했다. 황족을 살해한 공손찬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공손찬이 유우를 죽이자 공손찬과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던 유비는 자기 친척인 유우를 죽인 일에 대해 크게 분노하여 공손찬과 절교했다. 또한 유우의 죽음으로 인해 공손찬의 인망은 크게 추락했으며 원소에 의해 공손찬을 죽일 명분이 확실해졌다. 황족을 살해한 공손찬은 공공의 적이 되었으며 이후 패망하고 가족들을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죽인 뒤 공손찬 본인은 자살했다. 유화는 원술에게서 달아나는데 성공하지만 북으로 향하던 중 원소에게 억류되었다. 유우가 죽자 원소는 유화를 공손찬과의 싸움에서 대장으로 내세우는 등 선전공작에 이용했다. 결국 공손찬은 민심을 잃고 참패하여 대부분의 세력을 잃게 된다.